미국 교포 서사와는 다른, 이방인 ‘성’의 에세이현재진행형 트라우마 치유기 를 읽고 애인과 둘이 식당에 가면 나는 엉뚱한 곳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본다. 대개는 나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그에게 의사를 묻는다. 젊은 외국인 여성인 내가 독일어로 주문을 할 리 없다는 듯이. 계산을 할 때도 당연히 그가 지불할 것을 기대하는 모양새이다. 나는 그들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주문하고 지불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심지어 더치페이를 할 때도 그에게 미리 돈을 건네받아 함께 낸다. 내가 지갑을 펼치면, 그를 향해 45도 각도로 몸을 돌리고 있던 사람은 아, 하고 미세한 탄성을 내며 내 쪽으로 자세를 고친다. 나는 왜 이런 ‘불필요한 디테일’에 신경 쓰게 되었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자이니치, ‘한국인’의 기준을 묻다재한재일(在韓在日)은 잉여 주민인가? ※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돌아온” 낯선 동포들, 재한재일(在韓在日) 가시화하기 사람들이 보통 초면에 자신의 출생지나 자라온 환경까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자기소개를 할 때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나 학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학교 강의를 할 때도 그렇다. 부산이나 제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청진이나 연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는 많지 않는가. 나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