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가 우리의 삶에 처음 다가왔던 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우리를 감동시켰던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이 말해진 순간, 여인네들은 황무지와 같았던 자기 삶에 의미와 언어를 선사하기 위한 눈물 어린 시행착오와 피땀 어린 실천의 과정들에 박차를 가합니다. 여성주의에서부터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저를 포함하여 많은 경우 어느 한번쯤은, 너무나 오래되고 유명하여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이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문구를 가슴에 품고 각자만의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부당하게도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동질감과 연대감이 자신의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가 기억나십니까. 어쩌면 나 역시 소외된 인간으로서 의지 있게 삶을 개척해 가는 것이 곧 나의 여성주의..
상실을 애도하기, 새로운 신뢰를 형성하기 저는 어느 종합병원에서 일을 합니다. 건물의 가 측으로 계단이 나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여러 병실로 연결되는 입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계단은 꽤 비좁고 어두컴컴합니다.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그 차갑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잃은 듯한 슬픔을 왈칵 토해내지도 못한 채 소리 죽여 흐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 흐느낌은 텅 빈 계단에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돌아선 채 구부러진 등이 괴로움에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차가운 계단 위에 방석이라도 깔아주고 힘없는 어깨 위로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등이 너무도 외롭고 슬퍼 보입니다. 그 계단은 어느 정도까지는 슬픔의 시간을 허용해주기 위해 자리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