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향해 걷기에 나서다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하천 길을 따라 걸을 때면 거의 언제나 ‘한강까지 23.5km’라는 작은 표지판 곁을 지나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부터 그렇게 계속 걸어 한강까지 꼭 가봐야겠다는 소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매번 마음만 있을 뿐 ‘날씨가 너무 추워’, ‘비가 오는 날은 곤란하지’ 하며 날씨 핑계를 대거나, ‘시간이 안 나서…’ ‘도시락도 준비해야 하는데’ 하며 일상의 리듬 탓으로 돌렸다. 또 몸 상태를 이유로 장거리 걷기에 대한 자신감을 미리 상실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더 더워지기 전에 한강에 가자’며 결심을 굳히고,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낮에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쉴 생각으로. 계획대로라면 7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하천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게 된..
내일 일을 누가 알겠나? 부처님 오신 날, 만날 사람이 있어 친구와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지난 겨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기다리는 동안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우산을 받쳐들고, 목도리도 동여매고 옷깃도 꽉 여민 채 절 마당을 서성거렸다. 잔뜩 찌푸린 저녁 무렵이었지만, 절 안은 마당 가득 매달려 있는 색색의 연등들로 오히려 봄꽃이 만발한 듯 화사하기만 했다. 그 사람은 월정사의 중심이라는 팔각구층석탑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건네면서 난 그의 안색부터 살폈다. 다소 지쳐 보였지만, 작년 겨울보다 더 나빠 보이진 않았다. 작년 겨울에 이곳을 떠나면서 올 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과연 살아서 서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벌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