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이가 없도록④ 질병과 성폭력 그 자연스러운 연결고리 (혜정) 죽음은 문득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신경정신과 약만으로는 나를 압도해버린 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수면제를 들고 한강으로 향하던 길은,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부인하거나 도망치려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선을 넘어버렸다 생각했고 문득,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여름이었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모임에서 (혜영) 성폭력, 데이트폭력 경험..
집을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사회를 만들자내 집 마련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으로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가령 나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무주택자’라는 항목에 체크를 해야 할 때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왜 내가 무주택자인가? 의문도 든다. 엄연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이 내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집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다니. 이렇게 사는 건 불완전한 삶이라는 의미일까? 혹은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살고 있지만 그 열악한 공간은 진정한 집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은근 전달하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집 아님’(비주택) 논의라도 실컷 해볼 텐데, 이 사회가 분명하게 구분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