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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독립성 누가 흔들고 있나
[기자의 눈] 파국으로 치닫는 국가인권위 사태를 지켜보며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17일 오후 두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의 결의대회가 있었다. 지난 월요일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차별 조정위원으로 활동한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 대표는 그 자리에서 “인권위를 처음 만들던 때”를 회상했다.
 
“차가운 겨울 시멘트 바닥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이었다.”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의 사퇴로 촉발된 국가인권위 사태는 이후 조국 비상임위원과 전문위원, 상담위원, 자문위원 67명(월요일 61명의 집단 사퇴 선언 이후 추가로 6명이 사퇴의사를 더 밝혔다)의 줄 이은 사퇴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안팎으로 줄 잇는 ‘인권위 독립성 훼손’ 비판 
 

▲ 현 위원장 사퇴촉구 결의대회 참석자가 국가인권위의 파행적 운영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일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인권위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이 사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밝힌 것은, 현병철 위원장이 상임위 결의 없이 전원위원회에 위원장 단독으로 직권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상정한 일이다. 이는 ‘위원장 입맛에 맞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상임위원회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문제관련 경험이 전혀 없어 취임 전부터 자격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 위원장의 취임 이후로 인권위는 정부와 관련된 사안에는 침묵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임위 무력화 시도가 있기 전 이미 현 위원장은 8월 23일 이후 2달 동안 전원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추석과 해외출장 등의 사유를 댔지만, 인권위 설립 이후 그와 같은 이유로 전원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권위원회 운영규칙에는 위원장 부재 시 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한 규정도 명기되어 있다. 고의적으로 전원위원회를 열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문경란, 유남영 두 상임위원이 ‘사퇴’라는 초강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인권위 내부의 비판의 목소리는 사퇴한 위원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두 상임위원들의 사퇴 전날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의 사임을 접하며'라는 내부직원들의 성명서에서도 인권위의 위기를 우려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직원들은 "지난 1년여 간 인권위는 힘 있는 기관을 상대로 독립적 국가기관답지 못하게 처신했으며 오히려 위원장은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해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인권위 사태의 원인을 진단했다.
 
인권위 사태 ‘정치 쟁점화 하지 말라’는 현 위원장
 
그런데 현병철 위원장은 전혀 다른 입장이다. 16일 발표한 “최근 논란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장 입장”이라는 글에서 현 위원장은 인권위 사태가 “정치 쟁점화 되고” 있음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금의 사태를 “위원회의 독립성이 외부의 일방적 비난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권위의 독립성엔 문제가 없으며, 정파 간 갈등으로 인해 불거진 문제라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은 어딘가 낯익다. 안경환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내보낸 2009년 7월 2일자 조선일보의 사설은 인권위가 설립이후 “좌파 불만세력과 그런 성향의 평론가쯤 되는 사람들의 놀이터”로 기능해왔다고 적었다. “인권을 빙자한 좌파정치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기본권 무시되고 소수자는 위협받는 현실
 
▲ 결의대회장 옆에서 '맞불집회'를 진행하던 참가자들이 인권시민단체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     © 일다
 
사퇴한 문경란 전 상임위원은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고 상임위원이 되었다. 그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공식·비공식으로 문제 제기를 많이” 했지만 “위원장의 지시를 받는 사무처가 꼼짝달싹을 안” 해서 손댈 수 없었던 대표적 사안들로 꼽은 것이 “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 “MBC <PD수첩> 건, 박원순 변호사 건”이었다.
 
문경란 전 상임위원은 “MBC <PD수첩> 건, 박원순 변호사 건”의 경우 “표현의 자유에 관한 사안”이었다며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가장 기본 원칙이자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가장 원초적 방증이라는 말이다.
 
17일 인권시민단체의 결의대회가 있던 현장 바로 옆에는 소위 ‘보수단체’ 회원들의 ‘맞불 집회’가 있었다. 이들은 현병철 위원장의 입장을 옹호하며, 장향숙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장향숙 의원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납득할 수 있는 비판의 이유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대부분은 ‘동성애 혐오’와 관련된 문구로 가득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 동성애 혐오 광고에 실린 문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관련단체에서 허위 사실로 반박된 내용들이다.
 
현병철 위원장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경찰 저지선을 넘어 결의대회장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찰에 가로 막혀 삼십여 분이 넘게 이들이 뱉어낸 말은 거의 대부분이 ‘심한 욕설’이었다.
 
발언에 나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의 박기호 사무국장은 “요즘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며 운을 뗐다. 성소수자 혐오 피켓을 들고 욕설을 퍼붓는 현 위원장 지지자들을 옆에 두고 말이다. 그는 인권위 사태의 본질이 뭔지 선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누가 누구를 위협하고, 누가 이 문제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지 말이다.
 
 
▲ 현병철 위원장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 중에는 동성애 혐오 문구가 적힌 것들이 많았다.    © 일다  

비판 무조건 외면? 떼쓸 일 아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결의대회에 참석해 “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을 거론하며 “독재시대에도 큰 문제였을 일을 민주정부의 이름을 걸고 있는 시대에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앞서 문경란 의원이 지적한 대로 인권위는 “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을 외면했다.
 
이 의원은 “정치의 하수인이 된 검찰은 언제든지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으로 행사될 수”있으며 “독재시대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권위가 만들어진 것”인데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2009년 1월, 용삼참사가 일어났던 즈음 용산구청 앞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시민 대우는 생떼거리를 쓰건 말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의 기본 원칙이고, 국가인권위가 지켜야 할 명제인 것이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한나라당 추천’으로 상임위원이 되었던 문경란 위원이 한결같이 했던 말도 같은 말이다. “인권에는 좌도 우도 없다.”
 
G20정상회의가 열리던 11일, 대법원은 기소된 ‘용산참사’ 철거민 9명 중 7명에게 징역 4~5년의 실형을, 다른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가권력에 짓밟히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민주시민 대우를 못 받을 때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쓴 소리를 던지는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다.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작은 비판도 못 참아하고 제 말하기에만 급급한 사람은 그야말로 ‘떼쓰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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