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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괴물’ 아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12. 1. 13:08
편견과 차별로 고통 받는 정신장애인의 현실에 주목해야
                                                                                                             <여성주의 저널 일다> 차미경 
 
 
[편집자 주] 이 글은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발간한 장애여성 칼럼동인지 『Fly Pen』에 실린 “라스트 ‘커밍아웃’ 히어로”라는 글입니다. 『Fly Pen』에는 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뛰어난 글들이 가득합니다. 판매를 위한 문집이 아니라 소량만 발간되었으나,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이라 그 중 ‘정신장애인’ 문제에 대해 담고 있는 차미경님의 글을 옮겨 싣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적어도 장애인들에겐 이제 ‘당연’함을 지나 지극히 ‘평범’한 슬로건이 되었다. 장애인의 인권이나 진정한 요구에서 너무나 동떨어졌던 과거의 장애인 정책과 제도, 서비스들은 이제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제도, 서비스로 하나씩 바뀌어 가고 있다. 물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외칠 수조차 없는 최후(?)의 장애인들이 있다. 정신장애인이 바로 그들이다.
 
정신장애인, 영화와 현실 사이 
 
▲ 정신분열증을 앓는 천재수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샤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각각 정신분열증을 앓는 천재 수학자 ‘죤 내쉬’ 박사와 정신장애를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던 이 주인공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영화 밖으로 나와 우리 곁에 있다면 어땠을까. 스크린 속에만 있는 그들은 적어도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친근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야생의 맹수를 동물원에 가둬 놨을 때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영화와 현실 사이의 벽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영화가 아닌 우리사회 현실에서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총기난사로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낸 조승희나, 온 나라를 경악케 했던 대구지하철 참사의 방화범을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통제 불능의 위험한 존재이거나 격리시켜야할 잠재적 범죄자, 이것이 바로 정신장애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이미지다.
 
이런 그릇된 인식을 부추기는 데 일부 냄비언론들이 큰 몫을 했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언론 보도에 경악하고 애도하면서도 정작 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편견을 키워왔던 우리들도 그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정신장애인은 고작 10만 명 정도. 사회의 편견과 냉대 때문에 등록을 기피한 결과이다. 실재로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평생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경험하는 사람은 4명 중 한 명에 달한다고 한다. 결코 ‘정신장애’가 ‘나’와 전혀 동떨어진, 사전에만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 가혹한 편견의 희생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정신장애인들은 정말 위험한 괴물인가
 
우리나라의 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의 비율은 0.2%이다. 정신장애인 중 범죄자의 비율은 비장애인 중 범죄자 비율의 1/14 정도라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사회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정신장애인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더 경계하고 차별해야만 한다.
 
이런 통계결과만 보더라도 우리가 정신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근거 없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폭력성과 범죄가능성은 단지 그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에서 오는 것이지 그가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지금껏 격리되고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돼 왔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정신장애인에 대해 시설수용 위주의 정책을 펴왔으며, 정신보건법이 일부 개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을 본인동의 없이 시설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 강제입원은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명백한 조항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의 강제입원율은 EU 국가들에 비해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8배가량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되더라도 다시 병원에 입소하게 되는 현상을 ‘회전문현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회전문 현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대책이 얼마나 미흡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벼운 정신 병력조차도 일명 F코드로 분류돼 보험이나 직업선택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낙인이 된다. 정신장애란 이유만으로 그 증상이나 경중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보험과 직업 선택에 있어서의 차별조항이 상법 제 732조를 비롯해 조리사, 이발사, 약사, 한의사, 운전면허 취득 등 80여개에 달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은 정신장애인이 두려워서일까. 귀찮아서일까.
  
▲ 스스로를 긍정하고 살아가는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 사람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어촌에 위치한 이 공동체에서 정신장애인들은 창업을 통한 경제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페민

 
정신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기관인 클럽하우스를 찾아가 몇몇 정신장애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 두 사람을 빼고는 얼굴을 노출하는 것도, 심지어 이름을 밝히는 것조차도 꺼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정신장애인임을 알리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그 때부터 180도 달라지는 건 예사고 잘 지내던 사람들마저 경계심을 나타내거나 적대적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유 없는 욕설을 퍼부어대는 등 모욕을 가하기도 한단다. 굳이 사람들에게 정신장애인이라고 밝혀서 안 당해도 될 봉변을 당하느니 차라리 함구하고 사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이 그들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에게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당당히 당사자주의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어쩌면 차가운 벌판에 옷을 벗겨 내모는 일처럼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벽을 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던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전하는 당사자의 목소리
 
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 아니, 그 사람과 나는 전혀 일면식도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인터넷 상에서 그의 글을 알고 있고 그의 글을 통해 느끼는 친근함이 그를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 그는 조울증을 가진 정신장애인이고 한 학원의 강사다. 불현듯 심해지는 조울증상 때문에 생활이 불완전하고 가난하며 혼자만의 고통으로 외롭다. 그러나 글 속에서 만나는 그는 영화 속 ‘죤 내쉬’나 ‘데이빗 헬프갓’ 만큼이나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는 당당히 자신이 정신장애인임을 밝히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그가 정신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통들이 어떤 것인지 또 세상 속에서 어떤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이 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지도 그의 글을 통해 공감하게 됐다.
 
그는 당당히 얘기한다. 이제는 정신장애인들이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그래서 정신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차별과 불이익을 당사자 스스로가 나서서 바꿔야 한다고. 멋지지 않은가. 그 당당한 두드림이 나로 하여금 그의 동지가 되게 만들었다.
 
우리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따라 부를 때
 
우리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신나게 따라 부를 때 어떤 사람들은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참으로 미안했다. 장애인도 아니고 ‘장애자’라고 호칭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무시한다고 발끈하면서도 나와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한 나의 무심이 몹시 부끄러웠다.
 
이것이 ‘당사자주의’ 아니겠는가.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알려 주는 것, 불편한 것들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 정신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차별조항들을 고치고 부당한 F코드를 고발하는 것.
 
똑같은 행위를 했을 때 더 강력하고 더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것을 겪으며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냈을 때일 것이다.
 
드디어 지난 3월, 한국정신장애인연합이 창립됐다. 이제 정신장애인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의 첫 발걸음일 것이다. 세상의 견고한 편견과 수많은 차별에 당당히 맞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커밍아웃시대. 앞으로 더 많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그랬듯이 그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동지들이 생겨날 것이다. 바로 그런 것들이 모여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지 않겠는가. 하여 수많은 이 땅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 마지막 커밍아웃의 당당한 영웅들로 멋진 승리를 이뤄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차미경)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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