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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경제적 사유’로 합법적 인공임신중절 가능 
 
프로라이프의사회의 고발로 촉발된 “낙태” 논란이 전해지면서, 일본 여성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여성의 재생산 권리 찾기’에 연대 의지를 밝혀왔다.
 
특히 인공임신중절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와 언론인, 관련 단체 활동가들은 일본의 상황과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한국 여성들이 안전하게 중절시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낙태’ 대신 ‘인공임신중절’ 용어 사용이 적절해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인 소시렌(SOSHIREN) 소식지

여성의 재생산 권리에 대해 연구해온 츠카하라 쿠미 교수(카나자와대학대학원)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에서도 ‘낙태’와 ‘중절’ 용어가 혼동된 채 사용되는 현실”을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은 형법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겼을 시에는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일본의 모체보호법)에서는 몇 가지 사유를 들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츠카하라 교수는 “‘낙태’란 형법으로 금지된 행위(범죄)를 칭하는 용어”이며, “반면 ‘인공임신중절’은 모체보호법(한국의 모자보건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행해지는 행위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유엔을 비롯해,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들은 형법 상 ‘낙태 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죄로서의 ‘낙태’가 아닌,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공임신중절’이 더 적합한 용어라는 것이다.
 
츠카하라 쿠미 교수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낙태’(형법)와 ‘인공임신중절’(모자보건법) 용어를 분리해서 사용하기를 권했다. 따라서 일본 여성들의 경험을 전달하는 이 기사에서는 중절로 표현한다는 점을 밝힌다.
 
다케우치 기자, 21살 때 자신의 중절시술 경험 들려줘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의 다케우치 아야 기자(31세)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전해들은 다음, 자신이 겪었던 인공임신중절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당시 21살이었던 그는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남자친구에게 그 소식을 알린 다음 병원에 갔다. “중절에 대한 파트너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서명하고서, 어머니에게도 전화로 임신 사실을 알렸다.
 
다케우치씨의 사례처럼, 일본의 경우는 모체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의사(지역 단위로 설립된 공익사단법인 의사회가 지정하는 의사)를 찾아 여성들이 ‘안전하게’ 중절시술을 받을 수 있다.
 
현법상 ‘낙태’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한국과는 달리 ‘양지에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공임신중절 허용조항 때문이다.
 
일본의 모체보호법에 의하면, 임신 22주 미만에서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에 의해 모체의 건강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자’는 ‘본인 및 배우자의 동의를 얻고 인공임신중절을 실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경제적 사유’ 합법적 인공임신중절 가능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인 소시렌(SOSHIREN)의 오하시 유카코씨는 “일본에서는 ‘경제적 사유’ 조항이 있어 실질적으로는 중절을 합법화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즉, ‘경제적 사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 여성들은 중절시술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
 
단, 인공임신중절시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0만엔(약 8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다케우치 아야씨의 경우 “파트너와 절반씩 부담”했고, 그 절반을 어머니로부터 빌려서 감당했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는 중절하는 것에 대해 비난도 하지 않았고, 나의 결단을 인정해주었다. 다만 내 몸을 걱정해주셨던 것 같다.”
 
다케우치씨는 “병원에서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과, 어머니한테서 돈(시술비용)을 빌릴 수 있었던 처지에 대해 고마웠다”고 말했다.
 
또한 다케우치씨는 친구들 앞에서나 ‘여성의 건강과 몸’ 관련한 모임 등에서 “몇 번씩이나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화제가 나온다”면서, 그럴 때마다 몇 번이나 “나, 중절했어”라고 자유롭게 말했다고 했다.
 
인공임신중절 경험을 이야기할 때 누구로부터도 “부정 당한 기억도, 비난 당한 기억도 없다”는 다케우치씨. 3년 전 룸메이트가 임신했을 때는 “내가 중절 경험이 있으니 염려할 필요 없이 상의”를 해와, 서로 “이것저것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고 덧붙였다.
 
합법적인 시술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
 
일본 여성들이 ‘경제적 사유’ 조항을 빌어 인공임신중절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엄격한 법 조항과 ‘묻지마’ 시술이라는 현실 간의 간극이 크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다 보니, 국내에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시술 중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이를 해결할 마땅한 방도를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이 병원에서 안전하게 중절할 수 있는 권리를 위협하게 된다.
 
일본은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가 나와있다. 후생노동성에 의하면, 2008년 행해진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24만2천292건이다. 15~49세 여성인구에 대한 비율은 0.88%, 출생 100에 대한 중절 수 비율은 22.2건(전체 임신 중 대략 5인에 1인)이다.
 
또한 모체보호법에서는 임신 22주 미만까지 인공임신중절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90%가 넘는 중절시술이 임신 11주 미만(초기 중절)에 이뤄진다. 12주 이후(중기중절)에 시술을 할 경우(유산도 포함), 태아를 사산했다고 하는 사산신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중절의 권리는 “여자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
 
소시렌(SOSHIREN) 오하시 유카코씨는 “‘프로라이프’라고 하면서, 정작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력들로 인해, 지금 한국에서 여성들이 안전하게 중절을 받기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우려했다.
 
오하시 유카코씨는 “(일본도) 저출산으로 위기감을 갖는 정치인들은 모체보호법의 허용범위를 좁혀서 ‘낙태 죄’를 적용시키자고 주장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피임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고 낳을 수 없을 때, 인공임신중절이 여자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중절을 비합법으로 해서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빼앗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오하시씨는 “한국 여성들이 안전하게 중절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여자가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가기 위해 함께 힘냅시다!” 하고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림혜영, 윤정은)

[관련 기사 보기] 낙태, 한쪽 문 닫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 “여성의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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