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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엠네스티 등 국제기구 “낙태 처벌규정 없애야” 
 
한국사회는 지금 인공임신중절을 둘러싸고 법적 윤리적 정치적 논쟁이 불붙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죄’ 혐의로 병원과 의사들을 고발하면서 생긴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지금까지 병원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었던 여성들의 상황이 급작스럽게 바뀌어버렸다는 것.
 
인공임신중절은 여성의 건강과 인생이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안전한 중절시술을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은 탁상공론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당사자의 목소리보다도 오히려 임신중절시술을 하는 의료진의 입장이나,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특정 종교인들의 견해, 그리고 이 문제를 저출산 등 인구정책과 연관시키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우선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이 경제적인 지표에 비해 여성인권지수가 한참이나 낮은 이유를 실감케 한다.
 
‘중절 합법화’ 세계적으로 인권에 관한 기본적인 합의
 

2010년 2월 국제엠네스티 "2009 베이징 여성선언+15"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9년, 유엔 제34차 총회에서 채택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에 명시되어 있다.
 
이 협약은 여성과 건강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여성들을 처벌하는 법조항이 제거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형법 상 ‘낙태 죄’ 조항이 있는 한국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비준한 국가 중 하나다.
 
2009년 3월에는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가장 큰 규모의 회의인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15주년을 맞아, 인공임신중절 문제를 포함한 <베이징+15 선언>과 행동강령이 채택됐다.
 
“위험한 인공임신중절이 ‘공공 보건’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하며, 여성들은 국내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중절시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임신중절을 한 여성이 죄인으로 취급되는 법을 검토하라.”
 
이같은 기준을 토대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작년 말 일본정부에 대해 형법 상 ‘낙태 죄’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모체보호법(우리의 모자보건법에 해당함) 상에 ‘경제적 사유’ 조항이 있어서, 임신 22주 내에는 인공임신중절이 사실상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형법에서는 여전히 ‘낙태’를 범죄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여성운동은 꾸준히 ‘낙태 죄’ 폐지를 요구해왔다.
 
‘중절 금지’하면 많은 여성들이 생명을 위협받게 돼
 

니카라과 보건소 의료진이 여성환자를 면담하는 모습 ©Ipas

국제인권기구인 엠네스티도 인공임신중절을 “여성인권 침해”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에서 안전한 임신중절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엠네스티는 2007년 여름 국제대의원총회에서 ‘어떤 여성도 인공임신중절을 이유로 형사적 제재를 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지” 경고했다.
 
고은태 국제엠네스티 집행위원은 “엠네스티에서 현재 각 국가별 인공임신중절 정책과 사례들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며, “이미 ‘모성 사망’과 관련하여 많은 사례들이 모였고, 특히 가난한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이 불법화되어 있는 니카라과에서는 비밀리에 이뤄지는 위험한 중절시술로 인해 나이 어린 여성들의 삶이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엠네스티는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인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망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은 치명적인 임상 합병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고하며, “임신 중절이 합법적인 곳에서, 안전하고, 시의적절하며,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심각한 사태 이르러서야 대응할 것인가
 

2010년 3월 12일 발간 "치명적 출산 (미국)" 엠네스티 보고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임신의 횟수와 시기를 결정할 권리, 즉 ‘생식’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제적인 인권 규약들은 이미 30년 전부터 여성의 건강과 생식에 관한 권리를 천명하며, ‘형법 상 낙태 금지 조항’을 제거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형법 상 ‘낙태의 죄’ 조항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몇몇 의사들의 병원 고발조치로 인해 ‘안전하게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순식간에 빼앗겨버렸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벌써부터 시술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려온다. 비용의 문제는 여성들이 ‘안전한 시술을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차혜령 변호사는 “인공임신중절이 불법화되면 음성적이 되고, ‘모성 사망’ 등 여성의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이후에 겪게 될 과정은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서야만 대응할 것인가” 라고 반문했다.
 
한편, 여성단체들은 형법상 ‘낙태금지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인공임신중절 허용 범위를 넓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중절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일다>www.ildaro.com 조이여울 기자 (번역지원
: 배미정)

[낙태, 한쪽 문 닫는다고 문제 해결되나] [“한국여성들, 안전하게 중절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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