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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무고죄 피의자가 된 피해자를 변론하다 上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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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대한민국 안팎을 뒤흔든 성폭행 사건이 보도됐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그룹 JYJ의 멤버이자 배우 박유천이 술집 종업원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됐다. 당시만 해도 #MeToo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이었다. 성폭력 사건 뉴스가 가십으로 소비되던 시절이었다. 박유천의 첫 고소 사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추가로 3건의 고소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피해자들이 술집 여종업원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유명 한류스타가 가해자인 사건은 빠르게 가십이 되어갔다.

 

거기에 처음 고소했던 여성이 거액의 피해 배상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자, 당초 문제가 되었던 성폭력에 대한 판단은 저만치로 멀어졌다. 돈을 목적으로 한 무고 사건이라는 낙인이 진즉에 새겨졌다. 그렇게 성폭행 피해자의 신분으로 첫 고소를 했던 여성이 고소한 지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무고 피의자가 돼서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형사재판 1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모든 소식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개업한 후 꼬빡 2년을 성폭력 사건을 다뤄왔지만, 직접 이 사건을 맡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아직 병아리 삘 진동하는 청년 변호사였고, 사건은 너무 유명했다. 현실에 발 딛고 서서 당사자 외에 알 일이 없는 사건들, 당사자 외에 누가 알아서도 안 되는 사건들을 맡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심지어 나는 JYJ 팬이었고, 박유천이 첫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애청자였다.

 

사건을 맡게 된 것은 첫 번째 고소 여성에게 실형 2년이 선고되어 법정 구속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두 번째 고소를 했던 피해자가 무고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었다.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지원하고 있었지만, 담당 변호사가 계속 바뀌어오다가 종래에 나에게까지 흘러들었다. 

 

▲ 2017년 4월 3일 서울지방법원 앞,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사건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및 무고죄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공대위에는 3백 개가 넘는 단체들이 함께했다. ⓒ일다

 

세간에 알려진 언론 보도나 낯선 당사자에게서 처음 받은 인상만으로 실제 사건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2년 정도 성폭력 사건들을 중심으로 형사사건을 많이 접하면서 ‘사건은 기록이 말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잡혀갈 무렵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 전에 수사기록을 보기로 했다. 수사기록을 보고 난 후, 대체 이 사건들이 성폭행 사건이 아니라 무고 사건이 되어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건을 수락했고, 그 후 피해자를 만났다.

 

수사기록도 보았겠다 나름 피해자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연일 신문지상에서 사건이 한류스타, 성폭행, 텐카페, 술집 여종업원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로 도색되는 동안 내 시야도 얼룩졌던 것 같다. 피해자를 처음 만난 날,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너무나도 작고 어린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냥 느낌 자체가 하얀 이였다. 대체 나는 뭘 예상했던 것일까. 여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과 하나도 다름없는 모습에 당황했는데, 그보다는 그것을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더 당황스러웠다.

 

내게 이 사건의 출발은 특별한 정의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과 ‘당황’이었다. 수사기록을 읽고 나서, 이런 정도의 수사기록을 두고도 피해자의 억울함이 소명되지 않는 정도를 넘어 무고로 몰리는 현실이 참담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피해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또 다른 것이었다. 합리적이지도 온당하지도 않은 세상을 향해 답답해하며 개탄했는데, 내가 그런 세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 얼굴이 벌게지는 것 같았다.

 

서로 모르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동일한 형태의 피해를 호소하고, 그들이 전하는 상세한 이야기들에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여러 지점들에서 유사점이 많았다. 그러니 이들의 고소가 범죄행위로 인정되느냐와 별개로 다수가 성폭행이라고 느꼈을 만한 정황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사회가 피해자들의 각 고소에 대한 성범죄 성립 여부를 보다 진지하게 수사하고 그에 대한 법 적용을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설사 성범죄로서는 법규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다수의 피해자들로 하여금 고소에 이르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사회 전반이 가진 비뚤어진 성인식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런데 타인들로 하여금 성폭행이라고 느낄 정도의 일방적인 행위를 저질러놓고는 이를 미안해하는 대신, 거꾸로 가해자가 그 타인들이 그날의 일과 그날의 성적모욕감을 말한 것이 무고이고 명예훼손이라며 고소를 했다. 피해를 알리는 것이 범죄로 오인받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런 당연한 일이 가해자에 의해 무고로 몰리고 언론은 이를 흥밋거리로 취급했다. 그런 속에서 세상은 피해자들과 이들의 피해를 가십으로 소화하며 동조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흘러가야 할 것들이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그걸 본 이상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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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피해자를 만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첫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검찰이 피해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나는 줄곧 피해자 사건을 주로 해왔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구속 중인 피고인의 사건을 맡아와서 의뢰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처음이었다. 영장실질심사 전날, 출근해서 서면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오후에 피해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혹시 내일 바로 감옥에 끌려가나요? 신변 정리를 해야 할까요?”

“혹시 내일 제가 TV에서 본 것 같이 수갑을 차거나 포승줄 같은 거에 묶여갈까요? 그런 거면 지인들이 저를 보면 마음 안 좋을 거 같으니 안 부르려구요.”

 

피해자는 어려서부터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을 앓아왔고, 난생처음 고소를 해봤고, 고소를 당했다. 구속영장 같은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질문들이었다. 문제는 내가 영장실질심사에 가서 영장 청구가 부당하다는 것을 말할 준비만 하고 있었을 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점이다. 지금 같으면 알아보고 답해주겠다고 했을 텐데, 그때는 아는 게 너무 없으니 무식한 답변을 했다. 가뜩이나 공황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자기 변호사가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면 더 불안해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럴 리 없어요. 내일 구속 안될 거야. 그렇게 안 만들어요.”

 

무슨 생각인 건지 저런 말들을 거창하게 읊어대며 피해자를 다독였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영장실질심사 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의자가 통상 인근 구치소에서 대기하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설마 수갑을 차고 줄에 묶어가랴 싶은 마음에 따로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래서 피해자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말은 멋졌지만 맘은 쫄아서, 피해자가 돌아간 후 걱정이 창궐해 서면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느라 밤새 퇴근하지 못했다.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피해자를 데리고 검찰에 갔는데, 검사실에서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바로 피해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을 둘렀다. 공황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패닉에 빠져 통곡했다. 누가 봐도 법원까지 걸어갈 만한 상태가 아니라서 검찰 지하에서 차량으로 이동했다.

(계속)

 

 

≪일다≫ 박유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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