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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의 정치] 산후우울증을 무사히 겪어내기 위하여 (김보영)
산후우울증에 관심을 처음 가진 건 10여 년 전이다. 지금보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덜 흔하게 사용되었지만, 출산 후에 시작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은 많았다. 그 고통의 이야기들은 죄책감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되곤 했다. 이러고도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 사람들의 글에는 본인이 이미 좋은 엄마가 되기에 실패했다는 절망이 있었다.
산후우울감을 증폭시키는 것
아이가 겪는 모든 문제를 양육자, 특히 엄마의 문제로 국한하는 문화 속에서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은 자신 때문에 아이가 혹여나 잘못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강한 죄책감을 경험하곤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우울증에 걸릴 수가 있냐고 책망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도 정당하게 자리잡을 수 없다는 절망을 경험한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이자 산후우울증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온 마우트너는 “여성들은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기와의 유대감이 바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아기를 돌볼 책임이 너무 커서 겁에 질릴 수도 있으며, 혼자 아기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럴 수 없거나 어머니로서 실패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출산 후 정신적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적지 않지만, 이 고통은 스스로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죄책감을 동반하곤 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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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 결과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산후조리 실태조사는 「모자보건법」 제15조의 20에 따라, 산후 산모‧신생아의 건강 및 안전 증진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 통계자료를 구축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실시되는 조사로 2018년에 처음 시행되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 중 52.6%가 산후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산후우울감에 영향을 준 요인은 양육부담감(88.6%), 환경변화에 따른 스트레스(82.4%), 산모의 신체 건강상태(81.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내 삶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돌봄이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져 있고 주변인들은 내가 훌륭하게 그 임무를 수행해내길 바라며, 그 역할을 거부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심대한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의 고통은 숨겨져야 하며 양육의 과정은 순조롭고도 매끄러워 보여야 한다.
마우트너는 여성들이 출산 후에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이 우울증으로 변화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침묵이라고 말한다.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거부당하거나, 내가 스스로 그 고통을 외면하고자 할 때, 그리하여 그 결과가 침묵으로 이어질 때 정신적 고통이 더욱 강화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비난하지 않는 주변 집단이 매우 중요하다. 지지적인 의료인이나 같은 경험을 한 출산 당사자들과의 대화가 도움이 되는 이유다.
당사자 중심의 지원체계가 필요한 이유
캐서린 조의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산후정신증을 겪은 작가의 가족과 성장기, 출산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겪은 일, 그 이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통 산후 단기간의 경미한 기분장애를 가리키는 산후우울감, 우울감이 지속되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을 기준으로 진단할 수 있는 산후우울증, 드물지만 환각과 망상 등을 동반하는 산후정신증이 있다.
캐서린 조는 출산 후 3개월 무렵에 망상, 환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을 앓았고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영국에 사는 작가가 미국에 방문했을 때 병의 증상이 나타났고, 미국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작가는 영국과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비교하며 영국에 있었더라면 다른 치료를 하게 되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퇴원 후 영국 런던에 돌아온 작가가 의료시스템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작가는 런던의 정신건강 위기 대응팀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임신 관련 증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했고, 위기 대응팀이 매일 아침 작가를 방문했다. 위기 대응팀은 작가에게 매일의 목표와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을 만들게 했고 작가는 침대에서 나오기, 차 한잔 끓이기, 피아노 연주하기, 전화하기, 아기 안아주기처럼 어떤 사람이 보기엔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의 목록을 적었다. 아주 짧은 방문이 매일 이어졌는데 그 방문이 매우 소중했다고 회고한다.
작가에게 도움을 준 위기 대응팀과 의료진, 그리고 주변인들은 작가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섣불리 ‘정상’으로 되돌려놓으려 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충분히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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