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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소설가이자 아키비스트 한정현 

 

남은 인생은요?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저자 성sung의 첫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아동기에 한국을 떠난 저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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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어느 날,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을 읽고 느꼈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 사람 뭐지? 이 작가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라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흔히 정사(正史)라 불리는 역사 속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수자들의 순간을 포착해 문학에 등장시키는 건 물론, 절묘하게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현실의 우리들에게 ‘지금의 이야기’로도 인식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거듭할 뿐.

 

이후에 그보다 먼저 출간되었던 장편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를 읽고서, 시대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을 오가는 와중에 이어지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올해 초 출간된 장편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를 읽는 동안엔 ‘추리’라는 장르까지 더해져 발휘되는 작가의 장기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 지난 달 출간된 책 <마고>와 한정현 작가의 모습  ©일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중편 소설 <마고>(현대문학)의 발간 소식을 들었다.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개 만으로도 기대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마고>엔 “불온의 상징이었으며 마녀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도 한 ‘달’을 활용한, ‘세 개의 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탐정과 세 여성 용의자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사람들이 미군정기를 겪어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라에 비극이 일어나면 “가장 위험해지는 건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이나 변태 성욕자, 길거리 노동자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바로 좌익으로 몰릴 만한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한정현 세계관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다.

 

소설가이자 아키비스트(archivist,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 기술하는 사람)인 한정현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사심 가득한 질문을 가지고 작가를 만났다.

 

-작가님 책을 처음 읽고 나서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자가 쓴 기록 같은데 그냥 기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거든요.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그동안 어떤 것들을 공부했는지 듣고 싶어요.

 

“뉴질랜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계속 거기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됐어요. 사실 대학원 갈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데, 문학창작 전공이라는 게 있다고 해서 가게 된 거죠. 근데 학교에 가 보니, 예술을 배우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권력 관계가 수직적이고 보수적이더라고요. 좀 놀랐어요. 그래서 석사 과정이 재미있진 않았지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더라고요. 석사 땐 꼭 소설을 써야 한다, 등단해야 한다 생각 했는데, 박사 과정은 소설 때문이 아니라 연구를 하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공부했던 건 문학 텍스트에 문화사적 의미를 분석하는 거에요. 한번은 문화사 연구를 하는, 제가 좋아하는 연구자와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그 분이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 실린 소설 중 하나인 「괴수 아키코」에서 언급된 이성욱 작가의 <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생각의나무, 2004)를 선물해 주더라고요. 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도 한번 이런 연구를 해 봐야겠다 싶었죠.

 

▲ 한정현 작가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와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 2022), <마고>(현대문학, 2022) 표지 이미지

 

그리고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사건(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대표적인 사건, 최초로 노조 여성지부장이 선출된 사업장이었으며, 농성 중 경찰이 투입되어 강제 해산시키려 하자 노동자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저항한 사건과, 사측의 사주를 받은 남성 조합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이 널리 알려져 있음) 있잖아요. 시위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벗어놓은 옷이 쌓인 사진은 있는데 반해 그들이 정말 상의를 탈의하고 시위하는 사진은 거의 없더라고요. 그렇게 비어있는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여성들을 노동자로 본 게 아니라 ‘여성의 몸’으로만 봤구나, 노동 시위로 본 게 아니구나’ 라고요. 이외에도 많은 여성 노동 운동들의 자료가 부재하죠.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된 김경숙 열사 이야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잖아요?(관련 기사 시리즈: 전태일은 알지만 김경숙은 모르는 당신에게 https://ildaro.com/8532) 이런 거에 좀 충격을 받아서, 관련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국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던 저의 경험들로 인해 여성 노동 운동 이야기에 공감 되기도 했고요.”

 

-<소녀 연예인 이보나>부터 퀴어, 빨치산, 기지촌 여성, 성폭력 피해여성, 데이트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어요. 이런 소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지 않은, 때로 ‘이상한 사람들’로 여겨지죠. 작가님도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요?

 

“빨치산 관련해 국가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는 집안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 집이 사회에서 이상한 집으로 낙인찍힌 게 있었어요. 근데 우리 식구들이 그런 말에 기죽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저도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가족들은 오히려 제 특이함을 ‘얘 천잰가봐’ 이러면서 칭찬해 줬고요. 근데 밖으로 나오니까 다르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항상 자퇴서를 품고 다녔어요.(웃음) 이상하지 않은 사람으로 연기도 했고, 친구도 잘 안 만났어요.”

 

-그럼, 학창 시절에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낸 건가요?

 

“아뇨. 그때 홈페이지 만드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블로그도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온라인에서 나이나 지역을 떠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공산주의자였으며 근대 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를 알려 준 것도, 일본 문화나 일본 영화 등을 알려 준 것도 그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나랑 맞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오히려 바빴죠.(웃음) 학교 끝나고 빨리 집에 가야했거든요. 학교에선 조용히 지냈어요. 학교에서 나를 이상하게 여긴다는 걸 본능적으로 좀 알게 된 이후론 거의 말을 안 했거든요. 학교 밖 활동을 많이 했죠. 타로 카드도 배우고.(웃음) 그렇게 어떻게든 잘 지냈지만, 그 ‘이상하다’는 말이 학생의 말을 막아버린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전 학창 시절을 좋게 그릴 수 없는 것 같아요. 뉴질랜드 갔을 때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그곳이 유일하게 나한테 이상하다고 하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선생님들도 ‘넌 이상한 게 아니라 독특하고 좋은 거’라고 했고, 친구들도 그랬고요. ‘이상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썩 좋은 말은 아니죠.”

 

-그런 경험들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정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겠군요.

 

“저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국가폭력 피해자인 가족들도, 나한텐 너무 좋은 사람들인데 사회에선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라 그랬거든요. 퀴어 이야기를 왜 많이 쓰냐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데, 그들도 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거든요. 또 팬픽을 쓰고 향유했던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사랑 이야기는 퀴어 서사였어요. 오히려 이성애 서사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퀴어인 친구들이랑 지내면서 나와 이들과의 관계엔 문제가 없고 서로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점점 커가면서 알게 됐죠. ‘사회에서 이들이 퀴어인게 드러나면 공격을 받을 수 있구나, 이상하게 여겨지는 구나’라고요. 이건 제가 어렸을 때 가족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해요. 소수자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공격 받는 특징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왜 이런 걸 숨겨야 할까?’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특별히 결심하고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인 거죠. 아직 이걸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계속...)

 

 

≪일다≫ 낙관하자,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2년 전 어느 날,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을 읽고 느꼈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 사람 뭐지? 이 작가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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