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대법 판단의 의미와 한계
2017년, 해군 성소수자 여군이 자신의 상관인 A(김OO)씨와 B(박OO)씨를 성폭행으로 고발, 고소했다. 가해자들은 1심에서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군대 내 계급과 권력 관계, 함정 내에서 여군이 놓인 상황과 성소수자라는 취약한 위치 등을 간과한 채 ‘폭행, 협박을 입증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한 재판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관련 기사: 군사법원이 군대 내 여군이 놓인 현실을 모르나! https://ildaro.com/8355)
지난 3월, 대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고, 군인등강간치상죄의 폭행,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 반면, 피고인 B에 대해서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하는 선고”를 했다. 가해자 한 명에겐 유죄를, 또 다른 한 명에겐 무죄를 선고하는 반쪽 짜리 판결을 내린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 3월 31일 대법원 후문 앞에서 열린,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 모습 (출처: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
지난 5일,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법적 대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었다.
가시화되지 못한, 성소수자 혐오 범죄
이번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피해 여군이 성소수자였으며, 가해자들이 그 사실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피해 여군은 조직 내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자신의 직속 상관이 소문을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남자랑 관계를 안 해봐서 그런 것이다.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면서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했다. 또한 피고인 B(박OO)는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와 자신이 연인관계로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한 쟁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폭행·협박을 당했다는 점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 역시 이러한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피고인 B의 ‘네가 남자랑 관계를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는 발언 등은 “피해자의 성적지향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이른바 ‘교정’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루어진 것으로, 명백히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자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인데, 판결에선 이런 부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
동성애혐오 강간인 소위 ‘교정강간’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임과 동시에 피해자의 인격의 핵심적인 부분인 성적지향을 부정함으로써 인격권과 존엄성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다른 성폭력 범죄보다도 그 동기나 피해 정도를 더욱 엄중히 보아야 함”에도 말이다.
박 변호사는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 모두 이 사건이 갖는 '교정강간'으로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판결들은 큰 오류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널리즘 새지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고로 기소된 성폭력 피해자와 ‘함께’한 시간 (0) | 2022.07.24 |
---|---|
박유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 (0) | 2022.07.23 |
출입국관리소에 수용된 여성들에게도 생리용품을! (0) | 2022.07.21 |
비혼 친구들과 ‘돌봄의 관계망’ 만들기 (0) | 2022.07.18 |
너에게 가는 길, 나에게 오는 길 (0) | 2022.07.13 |
감추어진 ‘부락’ 차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0) | 2022.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