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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와카 유사쿠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
부락민(部落民).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도 하에서 최하층에 위치한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분제가 폐지된 근현대에 와서도 부락민의 후손, 부락 출신자에 대한 차별이 암암리에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락 출신임이 알려지면 취업에서 불이익을 겪거나, 결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실 부락민 차별에 대해 일본 사회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크다. 피차별부락이라고도 불리는 ‘부락’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 미츠와카 유사쿠(満若勇咲)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私のはなし 部落のはなし) 포스터 |
영화감독 미츠와카 유사쿠(満若勇咲) 씨는 그런 부락 문제를 일본 사회에서 모두가 화제에 올리길 바라며,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私のはなし 部落のはなし)를 만들었다. 영화는 지금 일본에서 상영되고 있다.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날카롭고, 따뜻하고, 보는 사람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미츠와카 유사쿠 감독을 만나 이번 영화 제작의 계기와 생각을 들어보았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부락’
미츠와카 감독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소가 고기가 되어 팔리기까지의 공정에 관심을 갖고 2007년에 <고기 사람>(にくのひ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시켜 식육 해체 산업에 종사하는 부락 출신자들과 만났다. 독립영화 상영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전국 개봉 직전에 부락해방동맹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도축장이 부락을 노출시킨다는 이유였다. 그 후, 출연자의 이의 신청에 의해 작품은 봉인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인생을 걷기 위해서는 그 부락 문제를 다시 한번 마주할 필요가 있겠다고 결심했다. 과거에 취재했던 사람들에 대해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모색하면서 취재하고 촬영한 것이 이번 영화다.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에서는 피차별부락 출신 사람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지역사회와 가족,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이 영화의 취지를 이해해준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일본 사회에서 부락 출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은 상당한 결의가 필요한 일이다.
▲ 미츠와카 유사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이야기 부락의 이야기>(私のはなし 部落のはなし)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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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정말 많다. 결혼과 차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네 사람. 결혼해 교토의 피차별부락에서 살기 시작해 부락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나이 든 여성. 피차별부락 사람들이 설립한 유일한 은행을 자료관으로 보존한 사람.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 간의 화기애애한 대화….
일본 근현대사와 철학사를 연구하는 시즈오카대학 구로카와 미도리 교수가 메이지 시대 초기에 신분제도를 폐지한 ‘해방령’과 그 역사, 천황제와의 관계 등을 해설한다.
이 영화는 동료들 사이에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찍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미츠와카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하시라고 하면, 제가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서로의 관계성 속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안에 부락 문제의 중요한 관점이 드러나 있어서, 그러한 이야기의 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막연해서 잘 보이지 않던 ‘부락’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가령 취직할 때 부모님이 했던 말이나, 어릴 적에 친구에게 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말 등이다.
“부락은 과거에 다양한 이유로 여러 호칭이 붙은 채 차별이 잔존되어 왔습니다. 거기에 착목해서 ‘말’을 하나의 실마리로 삶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미츠와카 유사쿠 감독은 부락을 둘러싼 ‘말’들과 ‘이야기’를 더듬는다.
관객들 스스로 내면에 있는 차별의식을 돌아보길 바라며
2016년에 『전국부락조사 복각판』 출판을 계획해 부락해방동맹으로부터 기소를 당했던 당사자에게도, 감독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국부락조사』는 1936년에 일본 정부가 부락민 징집을 목적으로 조사한 자료로, 피차별부락의 지명과 인구, 호수, 직업 등이 기재되어 있는 내부문서였다. 그런데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이 문서가 2016년 인터넷에 게재되고 그 복각판의 출판이 예고되자, 부락해방동맹은 부락민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유발한다며 출판 및 판매 금지, 인터넷 상 데이터 삭제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였다.)
“부락 차별을 만들어온 측, 즉 차별하는 측의 시선도 담고 싶었습니다. 그걸 빼놓고는 부락 문제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묻길 바랍니다.”
미츠와카 유사쿠 감독은 단순히 ‘차별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부락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일본 사회가 침묵하지 않기를, 스스로를 돌아보고 대화하길 바라며, 이 영화가 그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차별의식을 방치해도 되는지,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지, 주변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시미즈 사츠키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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