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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 라라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라라의 모습. ‘성소수자 부모모임’ 전 운영위원이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이 제공 사진)

 

너를 위해 시작한, 나를 위한 싸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2021)을 보면 세상에 존재할까 싶은 유니콘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성소수자인 가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이들을 차별하는 세상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부모들.

 

처음 인터뷰를 기획할 때는 ‘자식의 삶을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세상엔 다양한 싸움이 존재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나’를 위해 ‘누군가’와 함께 싸우는 사람이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도 그러하다. 시작은 ‘너’를 위해서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제각각 세상과 ‘나’의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그’들의 싸움이 ‘당신’의 싸움이 되길 바라며 인터뷰를 기록했다.

 

“저는 이제 오십 세를 넘어서 우리 엄마가 내 흰머리를 보고 울기도 하는, 아주 흰머리가 백발처럼 많이 나는 라라입니다.”

 

라라는 수줍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전 운영위원이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라라는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당사자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가족을 둔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인큐베이션으로, 자녀의 성정체성을 알게 돼 고민하는 부모님들의 자조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독립된 인권단체이다.

 

내 꿈은 부자가 되는 거였어요

 

라라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만나기 전까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1989년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얼렁뚱땅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직후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그 뒤로도 남편은 직장을 계속 옮겨 다녔다. 조직 생활을 힘들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IMF 외환위기가 다가오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우리 동기 중에 지정성별 남성인 친구들은 한국전력, 담배인삼공사, 공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같은 공기업엘 들어갔어요. 지방국립대여서 대기업보다는 시험 치는 데에 들어갔는데, 여자 동기들은 눈높이, 장원학습지 같은데 취업했어요. 여자들은 왜 그런 거 준비하고, (남자 동기들처럼) 시험 보고 이럴 생각을 못 했을까. 나중에서야 그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 2017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성소수자 부모모임’ 멤버들과 함께 참가한 라라의 모습. (인터뷰이 제공 사진)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라라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별다른 기술이나 재주가 없었던 라라는 당시 유행하던 비디오대여점을 차렸다. 6년을 이어왔지만, 아이가 셋이 되자 더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가게를 정리하고 남편과 ‘죽을 때까지 자영업은 하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그만큼 고생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기억도 많았다.

 

“그때는 20대 초중반 정도니까, 세상물정 모르니까 영화도 내가 좋아하는 거, 이런 것만 잔뜩 들여놨어요. 한 달에 그거 사느라 200만 원을 투자하면 제대로 뽑지를 못하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책이랑 영화는 실컷 봤죠.”

 

비디오 가게를 정리하고, 아이 셋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서 어린이집 놀이방을 차렸다. 어린이집 운영이나 부모 상담에 대한 경험도 없이 시작했지만 3년은 잘되었다. 그러다 뉴스에서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다 아이가 숨졌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 무렵 원생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가 활발해서 집에서도 자주 다친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학부모는 말했지만, 라라는 아이들이 다치는 걸 보며 무서워졌다. 그 해 연말 어린이집을 정리했다.

 

그 후로도 라라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파트단지 내 새벽 우유배달을 6개월 하다 학습지 강사를 시작했다. 비디오 가게를 하던 때, 퇴사한 남편에게 가게를 맡기고 학습지 강사 연수를 받아놨던 게 도움이 됐다. 2000년대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면서 학습지 기업들의 경쟁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구인광고도 많고 면접도 까다롭지 않아 쉽게 시작했지만, 영업은 힘들었다.

 

“점심 먹고 수업을 시작하면 사람들 눈치 보고… 일정이 촘촘한데 조금씩 밀리면 계속 죄송한 마음이 생겨요. 내가 맨날 오그라드는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월말에는 실적점검을 해서 회사로 부르거든요. 마치면 선생님들이랑 불평불만 늘어놓고 회식하고 노래방도 가요. 그때 음주가무를 배웠어요.”

 

두 번의 자퇴, 세 번의 가출

 

학습지를 하는 동안 라라는 매일 밤 11시에나 집에 들어갔다. 남편이 퇴근 후 아이들을 돌봤다. 한번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 가방에서 알림장이 떡처럼 뭉쳐 나왔다. 쇄골이 부러져 병원에 간 둘째 몸에선 시커먼 때가 나왔다. 그 무렵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첫째 지수(가명)가 자퇴를 선언했다. 그제야 라라에게 아이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지수가 등교를 거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친했던 여자 친구들과 흩어지고 중학교를 남녀공학으로 갔는데 남자 교복 입고, 머리를 깎아야 했어요.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그것부터 싫었던 거야. 맨날 학교를 그냥 가기 싫다고 우니까,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왔어요.”

 

라라는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였다. 그런 까닭에 동생들에게 영향을 줄까 걱정돼 처음엔 지수의 자퇴를 반대했다. 하지만 지수는 인생계획표를 만들어서 가족을 설득했다. 라라는 자퇴한 지수와 함께 도서관에 다녔다. 와중에도 라라는 돈을 벌 궁리를 했다. 도서관에 있는 재테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식투자는 어려웠지만 경매는 해볼 만했다.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넷 카페도 가입하고 서울에 강연도 들으러 다녔다.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아이를 설득해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지수는 적응하는가 싶었지만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교 그만 다니고 싶다’는 메모를 남긴 채 가출을 했다. 중학생 때 긴 머리를 자르기 싫어 가출한 적이 있던 아이였다. 소방서에서 위치추적을 해주었다. 아이는 대전을 벗어나 남쪽으로 계속 가고 있었다. 부산 해운대에 도착한 아이에게 ‘엄마도 왔어’ 문자를 보냈다. 깜깜해지자 답이 왔다. 밥을 사 먹이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돌아오는 길에 대화는 없었다. 지수는 고등학교도 자퇴했다.

 

라라는 성소수자에 대해 몰랐지만, 상담을 하고 지수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존중하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이 ‘아이가 많이 여성스럽다. 바꾸려고 하지 마시라. 아이의 소중한 특성이고 자산이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성별이 뚜렷하지 않은 시대다. 그래서 특성을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말했어요. 어릴 때부터 이쁜 거 좋아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았어요. 나도 표현은 안했지만 내심 걱정이 있었지. 근데 선생님 말을 듣고 안심했어요. 내가 그때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생각도 못했어. 나도 여성스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그 무렵 온라인 경매카페에서 활동명이 ‘라라’였다. 라라는 반지하 매물을 경매로 샀다. 도배와 타일도 배워서 직접 수리했다. 전문가는 일주일이면 끝낼 일이었지만, 라라는 한 달을 꼬박 혼자 집을 수리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몸도 움직이니 활기가 생겼다.

 

“종잣돈이 없으니까 반지하를 샀죠. 도배 장판을 내가 직접 하니 비용도 아끼고, 힘들었지만 금방 부자가 될 거 같았어요.”

 

지수도 자기 길을 찾고 있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미용학원에 다녔다. 미용학원 강사가 서울에 미용실을 차렸는데, ‘지수는 지방에 있으면 살기 힘든 애’라며 데려가고 싶다고, 서울로 가면 살기 편할 거라고 했다. 라라는 17살 아이를 혼자 서울로 보내는 게 가슴 아팠지만, 지수가 너무 가고 싶어 했다.

 

사실 당시에 라라는 아이에 대한 실망감과 상실감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직면해야 할 사실을 외면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여 소원을 빌었는데 지수의 소원은 ‘예뻐지고 싶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다’였다. 다음 해 여름, 라라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지수의 남자친구까지 알게 되었다. 화가 난 라라는 지수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지수는 세번째 가출을 했다. 라라는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도, 대화하는 방법도 몰랐다. 수소문 끝에 남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무작정 기다렸다. 그러나 집에 가지 않겠다는 지수를 억지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잘 지내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이후 지수는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삶을 끝내버리려고까지 했다.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그 사이 호르몬제를 맞아 체형이 변해버려 남자 병동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1인실 비용이 없어, 24시간 보호자 관찰을 조건으로 남자 병실을 배정받았다. 라라는 둘째와 번갈아 병원을 지키며 지수를 돌봤다.

 

▲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차량에 타고 손을 흔드는 라라의 모습 (인터뷰이 제공 사진)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만나다

 

지수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고 라라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동성애자’를 쳐보니 동성애자 부모모임 카페가 있었다. ‘성소수자’나 ‘게이’라는 말은 몰랐다. 남자친구를 사귀니까 동성애자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가입하고 지수와 함께 모임에 나가보았다. 부모와 함께 오거나, 부모에게 말하지 못해 혼자 온 성소수자들이 있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울기도 했다.

 

라라는 부모모임에 나가서야 지수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았다. ‘우리 애는 게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성적 지향이 다른 것보다 성별 정체성이 다른 것을 사회에서 인정받는 게 더 험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라라는 부모모임에서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다. ‘성소수자’나 ‘퀴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대화했다. 지수도 부모모임에 다녀온 후,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수가 핑크색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어릴 때부터 핑크색 방이 갖고 싶었는데 이상해 보일까 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수가 퇴원하면 지낼 방을 핑크색으로 도배했다. 라라는 핑크색 벽지와 침구세트를 장만하고 지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지수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라라는 그렇지 못했다. 지수를 잃을 뻔한 충격에 불면증이 생겼다. 이왕 잠이 오지 않는 거, 물류센터 야간근무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니 잠이 왔다. 야간에 일하는 동안 퀴어나 페미니즘 팟캐스트는 모조리 찾아 들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더 많은 걸 알고 싶었다.

 

“밤에는 일하면서 이어폰 들을 수 있거든요. 그때 이제 팟캐스트 재미 들려가지고, 퀴어 팟캐스트는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방송을 다 들었어요. 레즈비언 두 분이 방송하는데 엄청 그걸 따라가면서, 지금 성소수자 운동의 현안들을 주제로 다뤄준단 말이야. 거기서 불거진 사건들. 그러니까 이제 그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거지. 그 야간에 팟캐 들으면서.”

 

어느덧 라라는 팟캐스트에 게스트로도 출연했다. 2016년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세상에 등장했다. 라라도 퀴어문화축제에 나가고 인터뷰를 많이 했다. 성소수자인권단체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야간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낮에는 기자회견이나 회의에 참석했다.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나가서 많은 성소수자를 보고 반가웠고, 가족과 불화를 겪는 성소수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떠밀려서 이렇게 간 것 같아요. 배 물살에 따라서, 뭐 자발적으로 투쟁 의식이 있다거나 제가 사회운동가 출신도 아니고 돈만 벌려고 했던 사람인데, 부자가 꿈인 사람이었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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