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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오브젝트> 지도: 위치는 관계이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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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묻지 못한 말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아련한 프랑스 남부의 한 어촌 마을로 방향을 잡은 기차 안에는 오후 2시의 졸음이 가득 차 있었다. 햇살은 잔잔했고 기차가 풍경을 밀어내는 소리도 슉슉 부드러웠다. 초행길 여행자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자문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래, 그래서일 것이다 했다. 1시간 후면 K를 만날 수 있다. 만나면 묻지 못한 그 말이 완성될 수 있을까?

 

출발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지도를 펼치면서 나는 어쩌면 그가 역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잠깐 생각했다. 잠깐이었지만 불안이 끝점까지 내달렸다. 4년 만이었다. 우리가 서로가 알던 그 사람이 더는 아닐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유럽 통화가 통합되기 전. 프랑스 프랑과 독일의 마르크를 따로 환전해 떠난 그 즈음의 4년은 2021년을 전후한 4년과는 사뭇 다른 관계와 관성으로 유지되었다. 누군가와 질릴 만큼 가까웠다가도 죽은 듯 멀어지기 쉬웠다.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관계의 끝이 있어 좋았다. K와도 그렇게 되었구나 했다. 마음에 쏙 드는 바닷가 풍경 우표들이 잔뜩 붙은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어.

 

편지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공격적인 쓸쓸함이라고 해야 할까. 잘 누빈 바느질을 거칠게 뜯어내 바람을 부르고 마는. 그게 싫어서 나는 빠르게 대꾸했다. 그래, 나는 여기 있고, K 너는 거기 있지. 그러자 머리 위로 와르르 무수한 ‘나’와 ‘너’가 쏟아졌다. 무수한 나와 너가 나눌 수 없었던 몸, 닫힌 질문들, 위급했던 기억의 칼날, 해사한 외면도 함께였다.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과 배웅을 받으며 프랑스로 떠난 K는 이후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가끔 엽서나 편지, 작은 선물들을 자기 대신 보냈다. 친구들은 우리 중 유일하게 한국을 떠난 K가 빨리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유학도 취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한국에 한 번 오지, 많이 바쁜가?” 한 친구의 심상한 말에 다른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걔가 왜 떠났는지 몰라?”

 

나도 몰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K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고 있었다는 거다. 갑작스러운 자퇴와 프랑스행은 당시 K의 말버릇이었던 “그냥”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랬는데 나는 끝까지 묻지 않았다. 배려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아프게 저지르는 배반에 가까웠다. 그 대가다. 태어나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경험을 온전히 K에게 바치게 된 것은.

 

4년 만의 재회를 1시간 남짓 앞두고 나는 더없이 착잡해졌다. K의 편지와 내 답장이 들어 있는 겉옷 호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 넣었다.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면서 K가 정말 나오지 않는다면,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불안하지 않았다. 어디든 머물면서 그의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지도를 펼쳐 그가 살고 있다는 마을의 이름을 찾아냈다. 내가 있는 데서 여기까지가… 아,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를 실은 기차가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다음 역의 이름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왜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로 물으면 다 알아들어놓고 대답은 불어로 하는 걸까? 불어 말고 위대한 인류 유산인 손가락을 쓰라고, 지도를 쫙 펼쳐 자기를 프랑소와 어쩌구로 소개한 옆 남자에게 내밀었다. Where am I? 그는 역시나 불어로 대답하면서(야!)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꾹 누르는 걸 잊진 않았다. 1시간 후 나는 K의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 [여성과 오브젝트] 지도: 위치는 관계이다 (출처-pixabay)

 

“GPS가 저를 자꾸 바다 위로 데려다 놓아서요.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 전화에 수화기 저편 담당자가 바다가 보이냐고 물었다. 바닷가에서 바다가 보이냐고 묻는 건 길에 가로등이 보이냐는 말과 같지 않나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오른쪽이 전부 바다네요, 대답하자 담당자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 장소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어쩌다 새벽 KTX를 타고 부산 영도까지 오게 된 건지 정신이 멍한 중에도 나는 73세 해녀와의 만남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인터뷰 일정 때문에 이미 애를 먹을 대로 먹은 터였다. 겨우 일정을 잡아놓으면 날씨나 물때의 변수들이 훼방을 놓았다. 몇 번의 취소와 변경 끝에 드디어 영도까지 왔으니 이제 조금 수월해주면 안 되겠니 했지만 나는 30분째 해녀 좌판이 깔린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일상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걸 조금 감탄하며 보다가 언젠가의 기차역, 바닷가, 만나지 못한 얼굴이 잠깐씩 떠올랐다. 어쩔 수 없었다. 바닷가에서 길을 잃는 경험은 흔치 않고, 그게 친구를 만나려고 하루 꼬박 걸려 도착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잊기가 더 어려웠다. K는 정말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랬었지, 하는데 얼굴이 잔뜩 굳은 담당자가 정면에서 나타났다.

 

그를 따라 긴 계단을 내려가고도 한참, 자갈이 잔뜩 깔린 해변을 걸어 또 한참 후에야 해녀 한진자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꾸벅 인사를 하자 그가 말했다.

“하늘과 바다가 허락해줘야 할 수 있는 게 물질이라서…”

 

하늘과 바다의 허락을 논하는 삶에서 한낱 인간의 질문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어지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거 멋있게도 하시네, 하고 담당자가 끼어들었다. 그 주변으로 다소 심각한 얼굴의 몇몇 사람과 좌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멍게며 해삼을 씹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한진자 씨는 제주 방언이 많이 섞이지 않은 부산 방언을 썼다. 제주 방언 통역자가 나와 한진자 씨 사이에 앉았다가 내가 그럭저럭 알아듣는 것 같아서였는지 잠시 후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부산 영도 해녀들의 자료 아카이빙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단체 일원들이라고 소개받은 테이블이었다. 그들은 해녀들이 경험하고 몸에 이식한 ‘물 속 지도’를 가시화하는 작업에 한창 집중하고 있었다. 한진자 씨는 그들을 가리키며 “뭐 얻어갈 게 있다고 저렇게 자꾸 오네.” 했다. 썩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전 물질이 영 신통찮았는지 빨간 고무 대야 속 해산물들이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지도 앱 속 나의 위치는 여전히 바닷물 위였다. 긴장을 풀어볼 요량으로 한진자 씨에게 내 위치를 보여줬다.

“제가 여기에 있다고 나와요.” 

“거긴 내가 오전에 물질했던 곳인데…”

이 짧은 대화에 소소하게 붙은 한진자 씨의 웃음이 좋았다. 생각보다 길어진 인터뷰 내내 그 웃음이 따라다녔다.

 

바다는 열두 번도 더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아까는 험악하더니 날씨가 좋아지네요. 물질하기에는 영 버린 날씬데. 한진자 씨가 그래서 나는 노트에 “좋은 날씨의 기준도 특정 사람들에게 맞춰져 왔다”라고 썼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들에게 좋은 날씨가 해녀에게는 물질하기 궂은 조건일 때도 많다. 날씨가 좋다/나쁘다의 기준 역시 얼마나 임의적이고 사회적인지 급작스럽게 몸을 트는 바다 앞에서는 쉽게 이해가 됐다.

 

한진자 씨의 어머니도 해녀였고 언니 둘도 그랬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도에서 나고 자란 진자 씨더라도 영도 해녀들의 뿌리는 제주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부산 해안선을 따라 촌을 형성하며 하나둘 모이던 제주 해녀가 대거 이주한 게 4.3 사건 때다.

 

“그러니 거슬러 올라가면 죄다 피 냄새라 물에서나 겨우 숨을 쉬었나. 생각해보니 그래.”

 

한진자 씨는 자신이 속해 있는 어촌계 평균연령 78세보다는 젊고, “저 이는 한참 어려!” 할 때 그 막내 나이 66세보다는 많아서, 위아래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고 있었다. 물질을 생계수단으로 지속하는 이들과 건강 문제로 물질을 더는 하지 못하는 이들, 문화적으로만 물질을 잇고 있는 이들까지 해녀들의 삶은 제각각 달랐다. 영도 토박이 해녀들은 제주에서 이주한 해녀들 이야기를 내심 궁금해하지만 대화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귀와 입이 도통 연결이 안 돼. 말 걸기가 쉽지 않아.”

 

수압과 산소결핍을 견딘 결과로 고령의 해녀들 대부분이 청력이 손실되고 만성두통에 시달린다. 청력 손실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제주 방언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 서로 짧은 대화 몇 마디 나누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80대의 그들이 사라지면 아마 많은 말들의 세계가 바다 깊이 가라앉게 될 터였다.

 

나는 진자 씨가 그들에게 말하기나 얘기하기가 아니라 ‘말 걸기’라고 표현한 것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영화학자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논의했던 말 걸기(address)의 미학은 언제나 복수로 존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또, 한 여성의 교차적 정체성 사이에서 다양한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여성영화에 주목한다. 말을 거는 사람과 말을 받는 사람은 누가, 어디에서, 어디의,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를 통해 위치성과 신체성을 얻는다. 어드레스(address)는 주소이자 호칭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말 걸기의 주소와 호칭.

 

예전 K의 편지 속에도 비슷한 말들이 있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아. 나는 주소가 없어. 하루에 한 번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가 많아. 그래서 은행 잔고를 탈탈 털어 주저 없이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었다. K가 프랑스에서 한국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지. 그래, 그래서 가능한 일을 하자 하고. 그런데 K가 정말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 “Where am I?” (출처: 플리커)

 

내게는 K를 무작정 만나러 간 선택이 어떤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는 심정으로 혼자 떠난 숱한 여행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나는 빈번하게 물어야 했다. “Where am I?” 나의 위치성과 방향성이 내가 닿을 장소나 대상과의 관계를 결정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나로부터 그것들이 얼마나 먼지 아득해질 때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참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하는 표정으로 나와 지도를 번갈아 보다가 손가락으로 지도 위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그건 반복할수록 내가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나를 여러 번 다시 만드는 작업 같았다. 빈 국립도서관 앞에 있던 내가 바르셀로나 람블라 거리 어디에선가 해체되었다가 카탈루냐 광장 앞에서 재조립되는 식이었다. 그 시간은 레비 브라이언트가 말한 “자신이 갇힌 중력장에서 벗어날 탈출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세계의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시도는 좋았다. 나는 실패했고 자꾸 지도에서 사라지는 나를 지도 안으로 애써 잡아끌면서 종종 K를 떠올렸다. 한국의 K는 프랑스 어딘가에서 해체되었다가 또 프랑스 어디에서 재조립되며 자문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에 있나, 나는? 

 

진자 씨는 엄마와 언니들을 따라 바다속 지도를 익혔다. 물질은 가르치거나 배웠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보통 물질 실력이 좋은 이들의 경험담을 귀담아듣고 함께 물속에서 익히는 감각에 가까웠다. ‘물에 들어가는 데로 나오는 법이 없다.’ 그게 익혀야 할 첫 번째 감각이었다. 바다는 알 수 없고 하늘은 더 몰라서 들어간 길이 나오는 길이 되지 않았다. 물질해 번 돈은 저승에서 번 돈이라며, 해녀들은 저승에서 벌어 이승의 아이들을 먹이고 공부시켰다. 한진자 씨도 그랬다.

 

“해녀들 머릿속에는 바다 지도가 따로 있다던데요. 그게 저승 지도였네요.”

“지도가 있으면 저승도 한 번씩 갈 만하지.”

 

반대로 내겐 지도가 없어 디딘 땅까지 다 저승 같은 걸까. 20년 전 하도 접었다 펼쳤다 해서 접힌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지도를 들고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연신 물었던 낯선 길들에서 나는 내 세계 지도를 익히지도, 제작하지도 못했다. 그때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진자 씨와 나도 서로를 몰랐다. 이 낯선 타자들은 존재 자체로 내 위치에 대해 말을 걸어온다.

 

나를 설명하는 일은 그것을 수신하고 있는 ‘너’가 있기 때문이라고 버틀러가 그랬는데,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다는 K의 말 걸기는 차이와 동일시의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며 나에게 자신을 설명해보려는 어색한 시도이지 않았을까. 그가 자기 속도와 목소리로 말하게 두면 그만이었는데 성급하게 내 서사적 구조 안에서 화해와 포옹 장면을 만들어놓고 비행기를 탄 거였다. 우리는 오래 만나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K는 그 이후로도 한국에 온 적이 없다. 그가 거기 있고 내가 여기 있어서 생기는 질문들이 쌓이고 있다. 묻고 싶다. K, 넌 너의 지도가 생겼어? 저승도 한 번씩 갈 만한 지도가?

 

▲ 지도: 위치는 관계이다 (출처-플리커)

 

“해삼을 못 먹…”

이미 늦었다. 진자 씨가 일회용 접시에 담아준 해삼을 잘 못하는 젓가락질로 세 번쯤 놓쳤다. 물속에서 2분에서 3분. 물의 흐름을 감각하고 자기 호흡에 의지하는 그 시간 동안 물속은 저승이 되었다가 밭이 되었다가 하늘이 되기도 하는데 그걸 다 지도 속에 넣으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진자 씨는 웃었다. 그런 지도라면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 말 많이 걸어줘서 고맙네. 해삼 하나 더 썰어줘?”

받지 않겠다는 해삼 값을 태왁 밑에 끼워놓고 도망치듯 진자 씨에게서 멀어졌다. 자갈이 깔린 해변을 걸어 한참, 긴 계단 위에서 또 한참, 얼마나 이어질지 모를 고요함 속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 깊이 가라앉게 될 어떤 말들의 세계가, 일반적인 지도 밖의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지도 앱을 켜고 내 위치를 확인했다. 나는 바다 위에 있었다. 진자 씨가 물질했던 바로 거기.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일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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