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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문소리 감독 <여배우는 오늘도>, 손수현 감독 <프리랜서>

 

여배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드레스, 레드카펫, 도도함, 풀메이크업, 예쁨, 젊음? 이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여배우’라는 단어가 주는 틀을 깨부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영화 속 여성 배우들은 납작한 ‘여배우’가 아니다. 단단하고 부딪히는 여성 연기노동자이다.

 

▲ 손수현 감독, 주연의 <프리랜서>(2010) 중에서

 

연기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연기의 노동성을 가볍게 여긴다. 연기도 엄연한 기술의 한 종류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 스태프에는 기술팀이라고 불리는 팀들이 있다. 주로 남성들이 많이 종사하고 무거운 장비를 다루는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그립팀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연출팀, 제작팀, 미술팀, 분장팀은 기술이 없는가? 기술이 없으면 대체 무엇으로 그들은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슬레이트를 치고, 일일 촬영계획표를 짜고, 현장을 통제하고, 진행하고, 시나리오 속 이미지를 시각화하고, 특수분장을 포함, 시나리오에 맞게 배우들을 메이크업하는 이 직군들을 기술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연기 또한 기술팀이 아닌 쪽으로 분류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관여해도 되는 영역으로 생각해 한 마디씩 얹기까지 한다. 영화의 촬영, 조명, 음향에 대해서는 다들 쉽게 말을 얹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누구나 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드러나는 이 직업은 그 드러남의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만 응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촬영을 못하는 촬영자가 있듯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발촬영이라는 말은 없지만 발연기라는 말은 존재한다. 현재 연기는 노동으로서 정당한 평가와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밴 밖의 삶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2017)는 총 3편의 단편영화 묶음으로 이뤄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소리’, 맞다. 그 문소리다. 1막, 2막, 3막은 모두 음악과 함께 밴 안에서 시작한다. 답답하고 좁은, ‘여배우’라는 단어 같은 밴 안에서 문소리는 캐스팅 실패 전화를 받기도 하고, 뛰쳐나와 소리 지르며 달리기도 하고, 옛 동료 감독의 장례식에 가기도 한다.

 

▲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2017) 중에서

 

함께 흐르는 기묘한 음악의 느낌은 한 마디로 ‘갸웃거리는’ 느낌이다. 우리가 문소리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갸웃거리게 하는 음악으로 1막은 시작한다. 민낯의 문소리가 등장해 캐스팅 실패 전화를 받는다. 1막은 산으로 간다. 문자 그대로 산으로 가는데 거기서 만난 남자들 때문에 정말 산으로 가게 되어버린다. 1막은 여성 배우의 외모에 집착하는 사회를 풍자한다. 산에서 만난 한국 아저씨들은 술자리에서 또 만나 외모 품평을 하고, 성형 여부를 묻고, 장애인을 비하한다.

 

2막은 부와 명성에 대한 편견을 지적한다. 유명한 여자 배우는 모두 잘살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뒤집고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으러 소리는 은행에 간다. 명성 때문에 소리는 오히려 피곤하다. 대출 연장 서명을 하고 은행 직원들을 위해 사인을 해야 하며, 어머니의 임플란트 할인을 받기 위해 치과로 가서 사진을 찍는다. 작품은 들어오지 않고 특별출연 제의만 온다. 거기다가 육아까지. 삶은 소리의 얼굴처럼 날 것이고 이따금씩 분칠을 하지만 이내 지우게 된다.

 

분칠하는 것들 믿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주로 여자 배우들을 대상으로, 여자 배우가 흔히 말해 여우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편견을 담은 말이다. 이 얘기는 수많은 사고를 친 남자 배우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문소리는 <오아시스>(이창동 감독, 2002)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 배우조차 시나리오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자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과 서사로 주목받을 때 한국 최고의 여성 배우는 나이에 태클 걸린다. 여성 서사가 이제 막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한동안의 조폭, 형사 영화 쳇바퀴는 더 여성 배우들의 설 자리를 앗아갔다. 

 

▲ 문소리 감독, 주연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2017) 포스터

 

영화 속 소리는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실제 배우의 이름와 배역명이 일치하여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주며, 관객은 실제 문소리와 영화 속 소리를 이어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소리가 처한 현실이 허구가 아님을 영화는 명시한다. 남편도 실제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등장하고, 딸아이의 이름도 같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인물에 의한 인물을 위한 영화다. 카메라는 칼같이 인물을 쫓아간다. 씬을 넘어 갈 때도, cut to를 표현할 때도 인서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쪼그라든 소리의 어깨에 집중한다. 하지만 보고 나면 인물이 아니고 현실과, 현실에 따르는 의문이 남는다. 대체 왜 문소리 배우가, 영화 속 소리가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걸까.

 

3막은 그런 소리가 예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예술가는 아니라는 법, 이 말을 들으면 묘하게 ‘그러니 하물며 나쁜 사람은 어떻겠느냐’ 하는 말이 따라 들린다. 예술은 뭘까. 배우는, 연출은 질문을 던지면서 오래 된 무명배우와, 예술에 환장한 신인배우와 함께 무덤가를 걷는다. 그렇게 3막은 끝이 난다. 1막, 2막과 다분히 다른 3막은 관객의 예상을 또 한 번 뒤엎는다.

 

형식적인 반항

 

문소리 감독, 주연의 <여배우는 오늘도>가 한국 영화계에 내용적으로 반항을 표출했다면, 손수현 감독, 주연의 <프리랜서>(2010)는 형식적으로 반항한다. 전자가 여성 연기노동자에 대한 편견에 돌을 던졌다면, 후자는 노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관객이 보는 것 중 무엇이 진짜인지 알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동명의 주제곡 “프리랜서”로 시작한다. 손수현 감독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가 통으로 나온다. 뮤직비디오인가 싶은데, 컷 소리와 함께 슬레이트가 등장하고 ‘플레이백’(촬영장에서 배우와 스태프가 촬영한 컷을 돌려보는 행위)을 외친다. 다큐멘터리인가 싶은데 플레이백 화면에서 ‘액션’ 사인이 나자 극영화로 바뀐다. 화면비도 바뀌고 화면도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뀐다.

 

▲ 손수현 감독, 주연의 <프리랜서>(2010) 중에서

 

수현(손수현 배우)과 수지(정수지 배우)는 각각 ‘연수’와 ‘현지’라는 프리랜서를 연기하게 된다. 연수는 흔한 프리랜서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여유가 없다. 현지는 프리랜서의 이상이다. 돈 잘 벌고 시간 여유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 극 안에서는 프리랜서의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고, 극 밖에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뮤직비디오와 극영화, 흑백과 컬러, 그에 따라 다른 화면비가 충돌한다. 무엇이 진짜일까. 우리는 배우를 볼 때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허투루 짐작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가 들린다.

 

“프리랜서”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배우의 삶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평소에 뭐하냐 물어보지 말고 일 좀 시켜주세요. 굶어죽을까요. 벽보고 독백만 계속할까요. 현장에 가보니까 재밌는 것 많던데 기회 좀 나눠 쓰면 안 될까요.” 그러게 그 기회 좀 균등하게 나눠 가지면 안 되는 것일까. 문소리 감독이 자신의 삶을 부끄럼 없이 나눴듯 손수현 감독도 당차게 공유한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지 개인의 능력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수현 감독은 <프리랜서>가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후 나눈 인터뷰에서 택배, 육아 아르바이트를 연기 생활과 병행했음을 말했다. 프리랜서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인데, 한 기사에서는 ‘유명 여배우’의 생활고처럼 타이틀을 뽑았다. 다들 유명 여배우와 생활고는 연관시키지 못하니까 뽑은 자극적인 타이틀이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이 문제될 것은 없다.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음은 비극이지만, 다른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비극으로 보고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것은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이 일도 저 일도 똑같이 노동이다. 그러니까 그 삶의 화려함만 보고 노동의 가치를 잊어선 안 된다.

 

손수현 감독은 나눠쓰고 싶은 ‘기회’를 본인이 만들었다. 본인이 연출을 해 본인을 캐스팅함으로써, 시나리오를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갖고 오는 능동적인 입장으로 바꾸었다. 여성 서사 시나리오가 많고 응당한 대가가 주어진다면 더 이상 여성 배우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성 배우가 설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경력이 많은 여성 배우도 훨씬 경력이 적은 남성 배우보다 출연료를 적게 받는 것이 현실이다. 관객들은,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간과할수록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여배우는 오늘도 프리랜서다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솔직함이다. 배우가 연출을 함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껏 한다. 배우로서의 책임과 연출로서의 소임을 다 한 셈이다. 그 솔직함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솔직함은 부끄러움을 벗어야만 등장한다. 일찍이 두 연출은 알았을 것이다. 두 배우가 처한 상황 속 ‘소리’와 ‘수현’이 아니고 그 ‘상황’이 부끄러운 것임을. 이제 관객들이 이들의 과감함에 대답을 해야 할 차례다.

 

우리는 여성 연기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두 영화의 제목을 이어 붙이면 답이 나온다. ‘여배우’는 오늘도 ‘프리랜서’다. 단지 프리랜서.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화려함 이면에 진짜 삶이 존재하는 프리랜서다. 문소리 감독은 서사로, 손수현 감독은 충돌로 반항하며 표현한다. 이 이유 있는 반항에 동참하며 두 감독의, 두 배우의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출처: 여성 연기노동자의 삶, 프리랜서는 오늘도 - 일다 - https://ildaro.com/9191

 

≪일다≫ 여성 연기노동자의 삶, 프리랜서는 오늘도

여배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드레스, 레드카펫, 도도함, 풀메이크업, 예쁨, 젊음? 이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여배우’라는 단어가 주는 틀을 깨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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