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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몸들, 『질병과 함께 춤을』(아프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질병을 가진 내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한 서사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질병을 가진 여성으로서 반복적으로 겪게 될 폭력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들이 나와 당신들 사이의 ‘대화’를 포기하게 만들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내가 ‘함께’라고 생각했던 공간들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 아픈 몸들의 공동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진행한 워크숍 중에서. (촬영: 사진작가 혜영)

 

아픈 몸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몸을 없애고 싶었다

 

처음엔 감기처럼 잠깐 아팠다가 다시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몸으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 삶이 어떤 삶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는 몰랐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평생 이 끔찍한 통증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설명하지 못했듯이, 가족들에게도 이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질병을 얻은 후, 친밀한 관계는 내게 작은 감옥이 되었다.

 

“2012년 류머티즘 진단을 받고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내 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단은 받았지만 정말로 류머티즘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틴 적도 있었다. 내가 언젠가 지나가듯 한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엄마의 발목을 잡았다. 엄마는 내 병의 완치를 위해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침에 버릇처럼 기지개를 켜다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는 것을, 발을 바닥에 디딜 때마다 뼈들이 으깨어지는 느낌이어서 발을 오므리고 걷는다는 것을, 문고리를 돌리는 일이 어려워져서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둔다는 것을, 변기 레버를 내릴 수 없는 아침은 변기 뚜껑을 열어두고 출근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은 포기한 지 오래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혜정, 『질병과 함께 춤을』 중에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유발시킨 나의 몸을 원망하고 혐오했다. 몸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외면하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몸과 나를 분리시켰다.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에도 화를 내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없애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자가면역질환과 성폭력의 관계

 

나는 운동 사회 내 성폭력 피해생존자다. 운동 사회 내에서 반복해서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으로 인해 사건 해결을 위한 시간, 피해 회복의 시간, 후유증을 치료하는 시간 등 아주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2차 가해와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매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의심들에 대한 해명도 내 몫이다. 그 ‘해명’과 ‘증명’의 과정은 너무도 손쉽게 나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멀어지려고 애썼던 그 ‘하루’들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다시 그 일들과 멀어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일상’ 유지는 전쟁과도 같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 회복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게 어느 날, 피해자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혹은 일상을 유지하지 못해 운동 사회에서 사라진다.

 

▲ 다른몸들 지음, 『질병과 함께 춤을』(아프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푸른숲, 2021

 

나 역시도 운동 사회를 벗어난 이후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운동 사회 내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들은 함께 활동하는 ‘동지’에 대한 신뢰를 잃는 과정이었다. 어느 날 그들은 나를 ‘몸’으로 치환하여 폭력을 가하고, 나는 혹은 우리는 그렇게 동지를 잃게 된다. 그 경험을 사건화하여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동지를 잃는다.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사법 시스템 내로 사건을 가져가는 경우들이 많은데, 나 역시도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로 인해 2년간의 기나긴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가해자는 내게 가능한 모든 민형사상의 고소고발을 진행하였는데, 가해자가 내게 걸었던 민사소송 재판에서 판사가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왜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 빨리 소송 마무리하고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나는 이 소송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가 진행한 것이며, 누구보다 사건에서 벗어나서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나라고 항변했다.

 

내가 가해자에게 건 형사소송의 경우, 수사관은 내게 ‘가해자가 몇 차례나 위해를 가하겠다고 했는지, 그 표현 중에 이를테면 어떻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지, 실제로 물리적인 행동을 어떻게 가했는지’를 모두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성폭력은 폭력 경험 그 자체로도 당사자에게 고통을 유발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경험이 법적인 용어로, 때로 가해자의 언어로 치환되고, 가해자의 공격을 방어하는 언어로 제한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 과정에서 나의 모든 기억과 경험이 낱낱이 흩어지고 분절되는 경험을 했다. 그것을 다시 ‘나’라는 존재로 모으고, 추스르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이 질병을 야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공황발작, 자살 충동, 수면 장애, 면역력 저하, 면역 질환 등 이 경험으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질병들이 있다. 실제로 2018년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자가면역질환 발병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결과가 보고됐는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할 위험이 30~4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국립대 아이슬란드대학과 스웨덴의 카론린스카연구소 연구진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30여년 간의 의료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한겨레 <마음의 스트레스와 몸의 면역질환 “연관 있다”> 2018년 6월 21일자 참조)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연구 내용이 여성의 성폭력 경험과는 연결되지 않고 있다. 나 역시도 의사로부터 이 연관성을 부정당했다. 여성 피해 당사자들의 발화에 대한 신뢰가 없는 이 사회에서, 그것이 의료계에까지 전달되는 일은 아직 먼 일인 것 같다.

 

“의사는 자가면역질환이 원인 불명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경험들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인 불명은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것이지, 원인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질병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와 같거나 유사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몸의 위치만 다를 뿐, 그들은 모두 자신의 면역세포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병을 앓고 있었고, 여성들의 경우 대개가 극심한 스트레스 경험 후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폭력적인 경험에 맞닥뜨렸을 때 상대를 해하기보다 스스로를 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떠올랐고 자가면역질환의 기전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혜정, 『질병과 함께 춤을』 중에서

 

질병인들의 공동체, ‘우리’라는 공간을 만나

 

성폭력, 질병, 자살 시도,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 등 잇따른 사건들은 내 안에서 후회와 절망, 고통으로 뒤범벅되어 굳어져 버렸다. 그 이야기들은 꺼낼 때마다 항상 한 덩어리로 내 안에서 토해져 나왔다. 나조차도 나의 경험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또 엉킨 타래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풀어내고, 분리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라는 공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을 통해, 아픈 몸들이 만나 질병 세계의 언어를 탐구하고 만들어나갔다. (촬영: 사진작가 혜영)

 

먼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이 그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응원과 격려를 남겨주고, 나와 함께 가해자와 싸워준 그 여성들 덕분에 내가 지금 살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성폭력 경험 후, 나의 첫 번째 ‘공간’이었다.

 

그 다음으로 만난 공간은 바로 ‘질병과 함께 춤을’이다. 이 모임을 통해 성폭력 경험과 사건 해결에 대한 나의 강박, 자살 충동 속에서 직시하기 어려웠던, 회피하고 싶었던 질병과 직면할 수 있었다. 비로소 나의 삶의 서사는 온전해졌다. 나는 내가 잊었던, 혹은 잊으려 했던 삶의 장면들을 기억해냈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이 하나 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올 때 마음속에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떠올리라는 것이다. 둘이서 그 연습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 그 공간의 문을 찾고, 들어가 보고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공간에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나 스스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 누웠다. 그곳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는 나의 안전한 공간을 하나 더 찾았다. 바로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이다. 우리는 서로가 힘든 것들을 극복하길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지켜봐 주며 함께 눈을 맞춰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오래전 질병이 시작되던 시점으로부터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나는 아주 오래 화해하지 못한 나와 화해했다. 그리고 질병은 마침내 내게 삶이 되었다.” -혜정, 『질병과 함께 춤을』 중에서

 

나는 내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찾으려 했던 그 공간을 이제야 찾았다. 이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삶은 죽음을 회피하는 공간이 아닌 온전히 ‘살아감’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비로소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게 되었고, 그리하여 ‘미래’라는 시간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잘 아플 권리를 이야기하는 책 『질병과 함께 춤을』을 함께 펴내며, 나는 이제 ‘우리’라는 공간을 확장하고자 한다. 나는 아픈 몸과도,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나와도 오랫동안 화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당신과 ‘우리’로서 오래 대화하고 싶다. 우리는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 

 

[필자 소개] 혜정. 성폭력피해생존자이자 전업활동가. 2011년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다. 때때로 문고리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리곤 하지만,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질병인 탓에 아프다는 사실을 의심받곤 했다. 질병을 삶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는 느려진 삶의 속도에 맞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프다고 말하기를 포기하지 말자’.  [일다] 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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