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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방귀쟁이 며느리

 

방귀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이다. 방귀는 누구나 뀌는데 유독 여성의 방귀만 오랫동안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더구나 젊은 여자가 주인공일 때가 많은 것은, 그녀들에게 유달리 방귀가 금기시되어왔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는 방귀를 항문에서 나오는 기체라고 했지만, 여성은 질에서도 방귀를 뀐다. 항문이나 질은 엉덩이 속에 깊이 숨겨진 구멍이며, ‘냄새를 피우는(放氣)’ 곳이다.

 

냄새는 누구나 나지만 아무나 피울 수 없다. 위계 사회에서는 냄새도 권력이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영토는 그의 냄새가 지배한다. 그의 사적 공간인 집안에서 씨족으로 보나 젠더로 보나 외부자인 며느리가 감히 냄새를 피울 장소는 없다. 억압받는 방귀는 가부장 사회에 포위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상징한다.

 

<방귀쟁이 며느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내고 냄새피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이야기이며, 시아버지가 대표하는 가부장 사회와의 대립과 공존을 익살스레 그리고 있다.

 

이전에 한 사람이 며느리를 하나 턱 보이, 며느리가 시집올 때는 복실북실하이 상(相)이 좋았는데, 시집을 포깨(조금) 살디마는 노랑 땡때이가 되거든. (한국구비문학대계: 김해군 2002년 김분임의 이야기)

 

주인공은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소녀였다. 남보다 방귀를 잘 뀌지만, 뀔 자리에서 뀌고 참을 때 참아가며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랐다. 사달은 혼인을 한 뒤부터 일어난다. 요즘 같으면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활개 칠 사적 공간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집으로부터 추방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남의 식구’가 된 열댓 살 소녀는 ‘집사람’이 되어 시집, 곧 그들의 집에 갇힌다.

 

그녀는 언제나 집에 붙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부를 때는 즉각 응답해야 하지만, 스스로 소리를 내거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귀 막고 삼 년, 입 닫고 삼 년, 눈 감고 삼 년’을 지내며 살림을 불리고 아들을 낳아 그나마 자리를 얻을 때까지는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 아직 소녀인 미성숙한 몸이지만 그녀가 키우고 가꿔야 할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니라 그들의 집안이다. 며느리에게 성장은 고려되지 않으며, 먹고 말하고 방귀 뀌며 성적 즐거움을 찾는 몸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녀의 에너지, 곧 생기는 소통할 길을 잃고 감옥이 되어버린 몸에 갇힌다.

 

시아버지가 가만 보이 걱정이라. 이래서,
“며느라, 저 니가 와 얼굴이 와 철색(鐵色)이 지노?” 이러카이,
“예, 아버지예 제가 방구를 몬 뀌서 그랬읍니더.” 카더란다.
“야, 야. 방구로 뀌라. (...) 방구로 안 뀌고 살 수가 있나 ? 방구로 뀌라.” 카이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복스럽던 얼굴이 오이꽃처럼 시들고, 쇠붙이처럼 파리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무언가 어긋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며느리가 방귀를 못 뀌어 그렇다고 하자, 시아버지는 그깟 방귀 따위가 문제냐며 선뜻 어려워하지 말고 뀌라고 한다. 방귀를 참을 일이 없는 시아버지로서는 며느리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 리가 없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아랫사람의 방귀가 유쾌할 리 없지만, 그에게는 집안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며느리가 어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그가 바라는 대로 응답하지 않는다.

 

“저거, 새이(올케)는 저 모퉁이 기둥 잡고, 아범은 앞기둥 잡으소.” 이래 카거든. 이 놈우 방구가 얼매나 크게 낄란지 그러 카이께네, 그 시아버지는 앞기둥 잡고, 신랑캉 모퉁이 기둥 잡고 있으이께, 마 이기 마, 방구를 한 대 펑 터자 놓이께, 마 집이 꺼떡하게 넘어 가뿌거든.

 

우레 같은 방귀로 온 집안을 뒤흔든 것이다. 그동안 눌러왔던 답답함과 분노가 단숨에 터져 나와 가마솥 뚜껑이 날아가고, 기둥이 흔들리고, 신줏단지가 엎어진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외부인인 며느리가 괴물 같은 힘을 품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서둘러 며느리를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낸다.

 

또 이쪽으로 끼노이까 이쪽으로 집이 꺼떡한다 말이지. 마 집을 이리 자빠치다가 저리 자빠치다가 그마 집이 다 찌그저 가거든. 어떻기(어찌나) 보골이 나는지 ‘에레이 빌어무을 거 이년을 데려주야 되쳤다.’ 인자 데리다 주러 간다.

 

▲ “소란 떨고 냄새피우는 여자”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방귀쟁이 며느리 (이미지: pixabay)

 

채록본에 따라 며느리가 쫓겨나는 데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하는데, 쫓겨나다 말고 도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녀가 다시 구명(?)되는 것은 시아버지의 목마름 때문이다. 며느리를 소박 놓아 돌려보내는 길이니 시아버지인들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속이 답답하고 입이 마를 터, 그런 시아버지의 갈증을 며느리가 방귀로 해갈시켜 준 것이다.

 

며느리 옷보따리 싸가 데리이고. 데리이고 가이께네, 어느 고개 하나 넘어이께네 배가 짜다라(매우) 많이.열려 있는데,
“하 목도 마르고 그 배 하나 따 무우면 좋겠구마는.” 이러 카이께네.
“하, 그 따 무을라 카면 뭐 따묵지요.” 카이 ,
“뭐 딸라 카이 뭣이야 있나?” 이러 카거든.
“저 방구만 한 차례 터자뿌면 뭐 다 떨어질긴데 뭐.”이러 카거든. 뭐 그래서,
“그라면 하나 터자 봐라. 기양이면 하나 주어 묵자,”카이께, 마 이기 마 배나무 밑에 가 방구로 마 ‘풍’ 끼이, 마 배가 막 쏟아지거든. 실컨 주(주워) 묵고 가온다. 가오면서러 가만 생각해이, 이기 방구가 씨할 방구다. 데리주야 안 돼겠다. 다부(다시)데리 오거든,

 

주역에서는 우레가 물구덩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해(解)라고 한다. 우레가 밖으로 나올 때는 천지를 놀라게 하지만, 봄을 부르고(해동), 아이를 낳고(해산), 세상을 촉촉이 적신다(해갈). 타는 목마름을 겪어 본 시아버지는 비로소 며느리의 고통을 알아챘는지 ‘씨할 방구’라며 걸음을 돌려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간 며느리는 그들의 집에서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온 세상을 먹이고 입히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왔다. 쫓겨난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소란 떨고 냄새피우며 억척스레 살아남아 그들의 집을 흔들어왔다. 그들은 아직도 며느리들을 가두고 작은 방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그녀들은 방귀를 멈추지 않는다. 얼음을 녹이려면(해빙) 갈 길이 멀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이미 심상치 않다.

 

[필자 소개] 심조원. 어린이책 작가, 편집자로 이십 년 남짓 지냈다. 요즘은 고전과 옛이야기에 빠져 늙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인 팥죽할머니의 회원이다.  [일다] ildaro.com

 

 

나의 살던 북한은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에 대해 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 경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북한의 마을과 가정, 직장문화와 노동,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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