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서평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성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다는 데이트폭력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book.naver.com

 

기억하고, 정리하기를 선택한 피해자

 

저자 연아의 말대로, 세상에 피해자의 목소리는 드물다.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는 5월 중순에 출간되었고 나는 이 서평을 7월 초 작성 중인데, 그 사이 뉴스기사 검색 1페이지 상단에 뜬 제목들을 살펴 보면 이렇다.

 

-“감히 날 신고해?” 데이트폭력 신고한 여친 감금·폭행 20대 실형 (서울신문 2021년 6월 27일 기사)

-제주 이도2동 모 호텔서 데이트폭력 50대 입건 (제주의소리 2021년 6월 14일 기사)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가스라이팅에 가려진 데이트폭력(파이낸셜뉴스 6월 15일 전문가 코멘트가 들어간 기사)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 필요(광주매일신문 2021년 6월 28일 경찰공무원이 쓴 칼럼)

 

이 네 건의 기사 제목만 보아도 데이트폭력의 양상(연령·지역 등 피해자와 가해자의 조건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사랑’을 빌미로 벌어진다, 연인 둘만의 장소라 여겨지는 곳에서 벌어진다, 신고하면 보복한다)과, 현실(사건이 판박이로 벌어지지만 지겹도록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 방안(사회적 인식전환 및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동시에 통찰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장 제목 “그가 나를 사랑하는데 왜 나는 괴로울까”는 모든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공유하는 감각이다. 가해자들은 어디서 배워오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라고 말한다. 이 말의 터무니 없음은 페미니즘 운동에서 수없이 지적되었으나, 여태껏 가해자들의 바뀌지 않는 단골 멘트다.

 

또 위의 기사들을 뜯어 보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의 문제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에 현재의 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피해자는 사적인 괴로움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손에 넣었을 때, 크게 공감하고 각성한다.) 데이트폭력 피해와 같은 사건은 알려졌을 때 주목을 받기 때문에, 기사화되면 언론사에 트래픽을 벌어다 준다. 즉, 피해는 돈으로 변한다. 언론, 즉 사회 일반이 주목하는 것은 대개 가해자의 처분이다.(실형, 입건) 기사 속 피해자는 말이 없고, 의식 있는 다른 이에 의해 권리가 대변된다.(남성 경찰, 데이트폭력 ‘전문가’의 기고 및 인터뷰)

 

이런 맥락 속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경찰 신고를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건에서 가해자를 협박죄,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지속적 괴롭힘으로 처벌할 수 있고, 폭행죄에는 벌금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한다. 모욕죄는 ‘공연성’을 충족시키지 못해 가해 행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신고 과정에서는 재판부가 합의를 종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대면할 수 있다.

 

저자는 현실을 뜯어본 뒤 사건을 법정에 가져가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기사 속의 피해자로 등장할 수 없다. 그러면 그의 피해는 사회에 드러날 방법이 없나? 연아는 ‘기록’을 택했다. “피해 경험을 잊고 묻어버리기보다 기억하고 정리하기를 선택”(저자 소개글 중)한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 있다.

▲ 연아의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미디어일다, 2021

 

개인의 서사를 우리들의 문제로 다룰 수 있는 이유

 

우리는 이 책을 여러 위치에서 읽을 수 있다. 크게는 ‘피해자와 조력자’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 역시 독자 집단을 두 갈래로 상정하고 책을 구성했다. 저자는 연애 중의 경험을 기록한 일기와 각종 인용 자료들을 통해 심경의 변화와 데이트폭력을 해석해 낸 과정을 적었고, 행동 요령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폭력이 일어난 것이 본인의 탓이 아님을 알 것, 데이트폭력 개념을 공부할 것, 증거와 자료를 수집할 것. 덧붙여 조력하는 주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적었다. 그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임을 알려줄 것, 데이트 ‘폭력’임을 정확히 명명해 줄 것, 피해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 깔끔하고 알찬 전개다.

 

그러나 저자도 이미 사람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은 각각 다르다고 적고 있다시피, 나는 모두의 독서경험이 그리 간단하고 감격스럽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피해자는 저자의 경로가 나의 것과 완전히 포개지지 않음에 당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저자 연아가 꾸준하게 많은 기록을 남기고, 스스로 데이트폭력 개념을 경험에 적용해 비교적 이르게, 8개월만에 관계를 종료했으며, 매끄럽게 여성단체와 연결된 것이다.(많은 피해자가 사건에 대해 적절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폭력임을 알지만 관계를 끝내지 못해 장기 연애로 돌입, 결혼과 출산에 이르러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여성단체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고, 의료기관에 연결되지 못한다.) 저자는 연애 5개월이 지나는 시점부터 뚜렷하게 “혼자일 때가 훨씬 행복”했음을 깨닫고 이별을 원하는데, 이 서술에도 놀랄 수 있다.(많은 피해자는 겪은 일에 감각적으로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나 역시 이성애 연애 경험이 있고, 이 연애 관계 내에서 ‘여성’ 위치를 수행해 본 적이 있다. 페미니즘을 통해 ‘폭력’에 대한 이해의 저변을 넓히고, 구조적 통찰을 통해 경험을 재해석해 삶의 경로를 바꾼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똑같은 경험을 했어’라는 식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자와 내가 공유하는 인식이 있다. 가부장제가 결혼제도 안에 국한되지 않고, 이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젠더 규범이 작동하는 것이 자신이 겪은 폭력의 원인이라는 인식이다. 우리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그와 내가 살고 있다. 그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155쪽) 그리고 이 ‘무수히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 안의 차이를 다룰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통찰이다.

 

데이트폭력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책 전반은 피해 경험에 대해 떠오르는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여성들은 왜 가해자를 연민할까? 저자는 “문제아를 둔 보호자의 심정으로” 그를 품어야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그가 자신은 환자라고 한다. 자신에게 맞서 싸우지 말고 넘어가라고 한다. 자신이 화가 난 것 같으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 한다.”(88쪽)

 

저자는 처음에 가해자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모임에서 인정받는 사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고민이 담긴 발언은 자주”한 바 있으며, “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지닌 멋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어떤 남성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번듯해 보일지라도, 여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은 미숙하다. 그리고 그 미숙함은 여성의 사랑으로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이다. 이런 통찰이 바로 젠더를 축으로 구조를 뜯어 보는 페미니즘에서 왔다. 그래서 저자는 피해자들에게 “페미니즘을 공부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때로, 아니 자주, 여성주의자들도 피해를 다루기 난감해 한다. 피해를 통찰할 수 있게 되어서 피해를 말했다. 그 후가 문제다. “피해자 편을 들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목표도, 전망도 아니”고, “그것은 단지, 법치주의 국가의 상식일 뿐”(권김현영,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이다. 그러면 법치주의 국가의 상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둘의 차이를 여기서 본다. 오늘날 국가 형벌의 목적은 응보와 예방이다.(한국일보 2019년 5월 31일,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기고글) 종종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처분은 여성을 다시 ‘일상’으로, 즉 남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페미니즘의 언어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피해자는 종종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꺼이 그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게 되고 다른 식의 관계와 공동체를 엮어 나가게 된다.

 

저자는 책의 두 번째 장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는 소제목을 달고 이렇게 쓴다.

괴로울 때면 그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에 관한 모든 기억을 지우고만 싶었다. 때때로 그가 했던 말이나 당시 감정이 떠오르고 분노가 치솟았다. 내 영혼은 크게 상처 입어 회복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벗어난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본래 나는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여성폭력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 오히려 아내폭력이나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우울증은커녕 매사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편이었다. 혹시 이상한 사람을 만날지라도 단호하게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되고 보니, 내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기존에 내가 가졌던 편견과 오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 우리 사회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이제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인다. 데이트폭력, 성폭력 등 여성폭력에 관한 기사를 보며 내 일처럼 분노하고 아파한다.”(170-172쪽)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갈 수 없다, 가 아니라, 가고 싶지 않다. 이 둘은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억울하면 성공해라” 같은 말이 통용되는 사회다.  여성조차 성공한 여성의 서사를 보고 싶어 하고, 내세우고 싶어 하는 ‘당연한’ 마음들 덕분일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피해 경험을 말하는 쪽은 쉽게 소외 당하고, 세간의 ‘주목’ 자원을 얻기 위해 피해를 경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꺼이, 스스로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피해자는 연대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소개가 좋다. 모든 피해 경험이 글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어떻게 이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힌트가 거기 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 스스로 인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20대 여성입니다.” 책에는 주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친구, 사무실 동료, 여성단체 활동가, 상담 선생님, 같이 잘 지내고 있는 지인들…. 고립시키는 것은 가해자의 전략이다. 우리는 연결되어야 하고, 연결될 수 있다. 그러면 가해자의 존재가 축소된다. “그가 작아 보였다. 항상 그의 존재를 거대하게 느꼈는데 말이다.”(150쪽)

 

피해자, 소수자로 살아 오며 나 또한 고립감을 해결하려고 많은 시간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가 인복이 많아요”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삶이 조금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구나, 하고 깨달았다. ‘인복’이 날 때부터 주어지지 않아도, 내가 내 경험의 해석을 자원 삼아 삶을 다른 경로로 틀면서 가는 길에 받은 지지와 응원들을 헤아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게 바로 인복이라고 부르는 것이구나’ 생각하게도 되는 것이다.

 

▲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책의 말미에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저자는 거대한 돌 하나를 따로 조각해 자기만의 완성품을 만드는 식이 아니라, 오래 쌓아 올려진 돌탑 위에 돌을 얹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 그가 밑절미 삼은 기록들이 책 말미에 소개된다.(저자 입장에서 쓴 각 책의 소개글은 책 본문에서 읽을 수 있다.)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여성주의와 가정폭력』(교양인, 2016)

-로빈 월쇼,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미디어 일다, 2015)

-밀레나 포포바, 『성적 동의』(마티, 2020)

-한국여성의전화,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오월의봄, 2017)

-김영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 2020)

-김지은, 『김지은입니다』(봄알람, 2020)

-이아리, 『다 이아리』(시드앤피드, 2019)

-오사 게렌발, 『7층』(우리나비, 2014)

-로빈 스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알에이치코리아, 2018)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F언니의 두 번째 상담실: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한국여성의전화 2018년 발간 자료집)

 

앞으로 어떤 피해자의 독서 목록에는 연아의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연아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의 친절을 친절로 갚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된다.”(187쪽)

 

이 글은 저자가 발신한 메시지에 대한 나의 답신이기도 하다. 인복을 뒷배 삼아 적어 보낸 피해자의 메시지에 대한 더 많은 답신들이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이 적소에 가 닿길 바란다. (홍혜은/저술가, 기획자)

 

*책 상세정보 보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41234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폭력, 가스라이팅,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성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다는 데이트폭력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book.naver.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