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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크림프, 퀴어 예술의 지평을 넓히다 

 

이미지 페미니즘

페미니즘 연구자가 문화이론으로 읽어주는 시각예술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들미학과 정치, 윤리적 쟁점 사이에서 깊게 들여다 보다이 책에 실린 글들은 페미니즘 문화 연구자인 저자가 지난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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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미술이론/비평가이자 에이즈 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2002년에 펴낸 저서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이 드디어 한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한국 대중에게 ‘더글러스 크림프’라는 이름은 언뜻 낯설 수 있으나, 현대미술 현장에서 그의 이름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이후 서구미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으로 가까이해야 할 비평가들 중 하나이며, 특히 그의 에세이 「그림들Pictures」(1979), 「미술관의 폐허 위에서On the Museum’s ruin」(1980), 「전유를 전유하기 Appropriating Appropriation」(1982) 등은 미술학도들의 필독서 목록 중에서도 중요한 텍스트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미술현장에서든 아카데미에서든 그의 이름이 “에이즈”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언급된 경우는 흔치 않다. 유력한 미술비평 계간지 『옥토버October』가 크림프의 공들인 기획 하에, 역사적 제호로 손꼽히는 ‘에이즈 특집호’인 43호(1987년 겨울) <에이즈: 문화적 분석/문화적 행동주의>(AIDS, Cultural Analysis; Cultural Activism)를 발간했다는 사실 역시 국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적은 없다.

▲ 더글러스 크림프가 쓴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김수연 옮김, 현실문화, 2021)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폐관했지만 삼성 소유의 미술관이자 서울 시내 중심가인 세종대로에 자리했던 ‘갤러리 플라토’에서 성황리에 열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s-Torres, 『애도와 투쟁』의 표지에도 그의 작품 이미지가 실려 있다)의 첫 한국 개인전 <더블>(Double, 2012년 6월 21일~9월 28일)이나 ‘엘름그린과 드라그셋’(Elmgreen&Dragset)의 인기 높았던 전시 <천 개의 플라토 공항>(2015년 7월 23일~10월 18일)에서조차 ‘에이즈’라는 이슈는 그 시각적/개념적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그것에 대해서라면 절대 함구하기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조용했다.

 

불과 두어 달 전, 호황을 이룬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lesophe)의 개인전 More Life(2월 18일~3월 28일, 국제갤러리 서울, 부산)은 또 어떠한가? 정확히 에이즈의 시대와 동행했던 그의 ‘퀴어한’ 삶과 예술은 이제 주류 미술제도와 자본의 내부로 안전하게 포섭되었음에도, 한편에서 여전히 그의 작업은 ‘금기와 외설의 예술 되기’ 정도의 낡고 지겨운 언술에 반세기 가까이 갇혀 있다.

 

‘퀴어’,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혹은 혐오스럽고 감춰야 할

 

하지만 활발히 논의되지 않았을 뿐, 한국 미술계 역시 에이즈 관련 주요 담론과 전시, 작가들을 꾸준히 유치해왔다. 근래에는 한국 내 상당수의 젊은 퀴어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성적 경험이나 욕망을 드러내고, HIV 감염인으로서의 삶을 작업의 중심에 두는 등의 예술실천을 이어가고 있다.(그중에서도 감염인으로서의 삶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사유하는 두 명의 작가, 이정식과 김재원을 언급하고 싶다.) 조금 호들갑을 더해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한국 문화예술계는 ‘퀴어 재현’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퀴어아트’의 양적·질적 성장이 도드라진다.

▲ HIV 감염인으로서의 삶을 사유하는 두 작가의 개인전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열렸다. 이정식 개인전 <이정식>(d/p, 2020.10.13~2020.11.14) https://bit.ly/3xg8qHK 김재원 개인전 <그때 벨이 울리지 않았더라면>(Room 806-2, 2020.11.5~2020.11.21) 포스터 https://bit.ly/35ertGa


그런데 이 상황은 또 다른 갈등과 양가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한 극단에서는 ‘퀴어’를 현대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것으로 소비하거나 그 자체로 이미 혁신적이고 정치적인 것인 듯 신격화하는 반면, 다른 한 극단에서는 배제와 혐오의 언어를 쉬지 않고 조직해 퀴어 삶의 구체성을 노골적으로 박탈하고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퀴어성queerness’이 ‘특권’이 되기도 하고 ‘혐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면, 지금 우리에게는 그러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적절한 언어와 방법론이 있는가 묻게 된다. 혹은 이 당대적 퀴어 재현에 대해 진지한 이론적·비평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가. 이같은 혼란 속에서 “퀴어 재현/퀴어 윤리”에 대해 성찰적으로 사유하도록 이끄는 독보적 저서인 『애도와 투쟁』의 발간 소식은 더없이 반갑다.

 

더구나 전례 없이 장기화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 직면해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가 에이즈로 인한 공포와 분노의 시간을 통과하며 긴급히 써내려 간 ‘감염’, ‘윤리’, ‘인간’에 대한 생생하고도 날 선 통찰은 독서의 가치를 모처럼 삶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게 한다. 소수자의 삶의 질이 과거에 비해 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위기 상황에 닥치자 순식간에 본색을 드러내는 차별과 배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실과 고통 속의 삶,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견고한 혐오 앞에서 우리는 번번이 무너지고 만다. 이 책은 나를 매 순간 명징한 지성 및 날카로운 비평언어들과의 접촉으로 가슴 뛰게 했지만, 과거의 여러 경험과 슬픔, 분노 같은 상념 속으로 자꾸만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다.

 

작년 5월, 코로나19의 유행이 점점 고조되던 차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 발 감염 확산 소식과 함께 우리는 수십 년 전 에이즈 시대를 위기로 몰아가던 상황과 거의 유사한 광경을 목격했다. 소위 ‘게이 클럽’이라고 알려진 장소가 감염병 유행의 진원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대중의 질타와 분노는, “호모들의 병”으로 호명되던 오랜 에이즈 괴담과 게이혐오를 고스란히 상기시켰다.

 

이에 대한 퀴어 커뮤니티의 대응은 놀랍도록 신속하고 성숙했다. 이전의 집단감염을 야기한 몇몇 단체가 보인 무책임한 태도 및 대응과는 너무나 상이했다. 이는 분명 오랫동안 퀴어운동과 에이즈운동을 조직해온 공동체의 내공과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라고 할 만했다. 우선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 본부’가 빠르게 조직되었다. 이들은 질병관리본부의 방역정책과 공조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대중을 향해서는 특정 집단에 가해지는 혐오가 성공적인 방역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임을 분명히 하였고, 성소수자에 대한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를 연일 보도하는 언론을 향해 혐오와 불안을 조장하여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에게는 낙인과 감염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빠른 검사와 안전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모두에게 있음을 명료하게 전달했다.(‘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 본부’ 웹페이지에서 활동 백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queer-action-against-covid19.org)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www.queer-action-against-covid19.org:443

 

에이즈 시대의 예술실천, 퀴어아트의 가능성을 확장하다

 

『애도와 투쟁』이 상세하게 스케치하고 있듯, 에이즈 위기 당시 미국의 대응과 보건정책은 에이즈를 특정 집단이 야기하는 감염병이라고 주장하는 등 게이에 대한 낙인과 혐오로 일관했다. 이는 결국 훨씬 더 심각한 감염의 확산을 초래했다. 그러한 대책 없는 상실과 공포를 경험하면서도, 퀴어 인구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건강권을 지킨 것은 정부가 아니라, “세이프 섹스”(91p)라는 개념과 구체적인 방법을 발명해낸 퀴어 커뮤니티였다.

 

크림프 자신이 HIV 감염인 당사자이며 ‘액트-업’ 운동에 참여한 에이즈 활동가이기도 했지만, 그의 일터는 ‘현대미술 현장’이었다. 그는 에이즈 위기에서 문화예술계가 스스로의 소임을 제한하거나 방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문화예술의 실천 차원에서 에이즈 시대에 마주서기 위한 방법론을 고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책에도 실린, 에이즈 재현과 그 정치를 향한 역사적 선언이 된 『옥토버』 43호의 서문 <에이즈: 문화적 분석/문화적 행동주의>를 통해 크림프는 “에이즈 위기와 관련해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광대하게 확장”(64p)해야 하며, 이 위기 상황에서 “예술은 비판적이고, 이론적이고, 행동주의적이어야만 한다”(64p)고 주장한다.

 

‘예술은 모든 삶에 앞서며, 오직 순수하고 숭고할 뿐’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거슬러, 그의 주장은 “에이즈의 현실이 먼저 있고, 그 위에서 에이즈의 재현, 에이즈의 문화, 에이즈의 정치가 구성”(46p)되고 있음을 쫓는다. 당대 미술계에서 통용되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세밀화하고 정식화함으로써, 그간의 인식론을 지배해온 근대성의 신화들을 반박하고, 실천과 이론의 교차와 예술실천 내부의 저항성과 정치성을 예술비평의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한 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감염병의 위기 앞에서 생생하고 긴급한 투쟁의 장을 열어젖히고, 예술실천과 운동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언어를 누차 담금질하는 그의 비평적 태도가 이 책을 단단히 묶어내고 있다.

 

『애도와 투쟁』은 당대 퀴어/에이즈 재현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퀴어이론과 퀴어아트의 가능성을 확장함으로써 퀴어예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는 식의 국가정책을 넘어서는 실천으로서 존 그레이슨(John Greyson)과 아이작 줄리안(Isaac Julien)의 영상작업에 드러나는 퀴어문화에 대한 옹호 및 퀴어 친족성에 대한 긍정을 공동체의 삶과 문화에 헌신하는 태도로서 읽어낸다.(112~117p) 그리고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인 재현을 반복 재생산하는 일각의 시도를 집요하게 심문하며, 언제나 ‘구성된 재현’일 수밖에 없는 이미지와, 그것이 생산하는 사회적 효과에 주목해 스타슈 키바르타스(Stashu Kybartas)의 1987년 작, <대니>(Danny)에 나타나는 ‘대항재현’의 양상을 신중하게 살피기도 한다.(118~152p)

 

또한, 저자는 동성애자들이 동일시하는 존재를 재현하는 여러 방식에 대한 해석을 통해, ‘동일시’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방식’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논증한다.(251~257p) 그는 이러한 실천과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퀴어 정체성’이란 단지 성적 실천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켜 나아가는, 결코 고정되지 않는 수행적 실천 속에 있음을 규명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퀴어 재현’ 역시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하고 드러나는 것만으로, 혹은 온건하고 평범한 인정 내에서 기능하는 식의 단순한 방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한다.

 

성적 실천, 동일시, 수행성 등을 포함하는 ‘정체성’의 재개념화를 통해 그간 퀴어 공동체가 벼려온 ‘공동체성’과 ‘정치성’의 고유한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는 그의 비평적 문제의식은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1987)나, 액트-업의 캠페인 포스터와 같은 정치적으로 “옳은” 재현에도 가차없이 개입하며, 그에 대한 나이브한 동의를 거부한다.

▲ National AIDS Memorial 웹사이트. 1987년 10월 11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 몰 공원광장에 에이즈 희생자를 추모하는 초대형 퀼트가 펼쳐졌다. https://aidsmemorial.org/interactive-aids-quilt

 

퀴어 공동체의 ‘애도’와 ‘진정한 책임감’에 대하여

 

이처럼 에이즈 시대의 예술재현과 문화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기함과 동시에, 또한 저자는 에이즈 활동가들의 운동전략 및 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불안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서술한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애도와 우울증』(1917)에서 강조한 ‘애도’ 작업의 중요성에 동의하면서, 이 사회가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해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왜 이토록 폭력적이어야 하는지 묻는다.(194p) 그에 의하면, 이 사회는 반복적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동성애자들의 애도를 무시하고 방해하며, 떠나 보낸 이들에 대한 기억을 악의적으로 훼손한다. 이어, 그는 이러한 방해와 무시로 인해 완료되지 못한 애도는 고통과 분노를 지나 ‘투쟁’으로 변한다고 쓴다.(195p)

 

대개 에이즈 활동가들은 세상을 떠난 친구와 동료들이 신속하게 ‘지워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때 활동가들의 슬픔과 분노는 ‘부당하게 지워진 이들’로 인해 생겨난 정동(affect)일 수 있다. 하지만 애도 작업을 완료했다 하더라도, 먼저 떠난 이들과의 동일시, 혹은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196p)

 

저자는 ‘비난 받는 애도’와 ‘비난 받지 않는 애도’가 각각 존재하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감정도 서로 다르리라고 본다. 가령, 애도하고자 하는 상실의 대상이 ‘사랑하는 이’만이 아니라, ‘(동성애자의) 성적 쾌락’이기도 하다면, 이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비난과 호된 질책이 따를 것이다. 저자는 이를 도덕적 불경함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는 동성애자에 대해 이미 제도적으로 견고하게 굳어진 혐오의 결과라고 본다. 동성애자는 끊임없이 도덕적 심판을 받으며, 사회화·제도화된 퀴어혐오를 스스로에게 투영함으로써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크림프는 이러한 내부로부터의 우울을 부인하기 위해 오히려 애도를 거부하는 행위가 활동가들의 덕목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우리 내부의 억눌린 슬픔과 두려움, 죄책감 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투쟁’만큼이나 ‘애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201~215p)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오랜 기억이 있다. 수년 전, 내 친구는 HIV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원가족은 빈소를 차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도의 시간을 가질 틈도 없이, 사망 확인과 동시에 곧장 화장터로 보내질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나와 몇몇 동료들은 기어이 그 화장터가 있는 도시로 향했다. 하필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이라 대중교통 차편을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나는 귀향 차량에 섞여 밤새도록 운전해 이른 아침 간신히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

 

그의 혈족이 장례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분노의 감정을 만들어냈지만, 달리 어찌할 수 없었던 나의 무력함에 더 화가 났다. 화장 절차가 모두 끝난 후에 나와 동료들은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준비하는 작은 분식집을 발견해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해 허락을 받고,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와 떠난 친구를 위해 음복했다. 그건 혈육도, 동반인도 아닌, 다만 그를 사랑했던 동료로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애도의례였다. 그 작고 무력한 ‘장례의식’으로, 우리의 애도는 완결된 것일까?

 

『애도와 투쟁』을 읽어나가면서 머릿속에서 웅성대던 우울과 분노의 상념들은 아래 문장에 닿아 조금씩 사그라들며 차분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홀로 숨죽여 버티고 있는 우리의 퀴어 친구들이 있다면, 혹, 그들에게 긴 독서의 시간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잠시나마 이 문장들 앞에 멈출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리 서로 “진정한 책임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우울에 빠져 있었기에 동성애자 문화의 상실을 그저 간단히 애도하고 놓아버리지 않고, 도덕주의가 아닌 다른 윤리적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준 그 문화를 계속 숙고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문화가 가르쳐준 진정한 책임감을 놓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 […] 하지만 나는 설리번이 말하는 윤리적 진공 상태라는 조건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진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설리번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 위기 때문에 성숙해지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다. 에이즈 위기로 동성애자들이 그 이전부터 얼마나 윤리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는지가 드러났을 뿐이다. 동성애자이기만 하면 자동으로 윤리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이 키넌이 진정한 책임감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한, 삶의 기준이 부재하는 조건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이 진정한 책임감을 퀴어한 것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내가 에이즈 위기 이전 동성애자의 성적 문화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활력과 생명력도 바로 우리의 공동체가 지고 있던 진정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믿는다.”
(더글러스 크림프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 28-30p)

 

[필자 소개] 정은영. 미술작가. 주로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형식을 통해 페미니스트-퀴어 미학, 정치학, 방법론을 타진한다. 성별 규범에 불응하는 존재들을 작업 안으로 불러 모으는 일에 관심이 있다. 대표작으로 <동두천 프로젝트>(2007~2009), <여성국극 프로젝트>(2009~현재) 등이 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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