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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평화는 처음이라>를 통해 만난 평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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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에선 군가산점 부활 및 여성 징병제와 모병제 등 군대 관련 이슈가 뜨거운 감자다. 여성 징병제나 모병제에 관한 논의는 더 다양해질 필요성이 있다 치더라도 이미 22년 전 위헌 판결까지 받은 군가산점이 다시 언급되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새삼 ‘군대가 대체 뭐길래?’ 라는 생각이 든다.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얹는 사람은 굉장히 많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도 갔으니 너도 가야 된다’는 식의 논의가 대다수다. 왜 군대를 가야 하는지, 이 사회와 시민들에게 군대와 징병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기 어렵다. 정녕 우리는 군대에 대해, ‘누가’ 군대를 가야 하는가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순 없는 걸까?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으며 평화운동가인 이용석 작가는 책 <평화는 처음이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군대가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 누가 군대를 갈 것인가를 질문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공포보다도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재난과 공포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2021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군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안보와 평화를 보장하는지.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이고, 평화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 출판사 빨간소금에서 펴낸 책 <평화는 처음이라>(이용석 지음, 2021)

 

거창하고, 쉽지 않은 주제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말하는 질문과 논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평화는 처음이라>는 우리 함께 그 첫발걸음을 떼자고 제안한다.

 

평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평화라는 말 자체가 낯선 사람은 없을 거다. 어렸을 때 받았던 교육에서도 등장했고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많이 접하는 말이다. 평화로운 사회, 평화로운 삶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언급되기에, 평화는 굉장히 좋은 것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한편으론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가 저항의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 ‘에이, 왜 시끄럽게 소리 내고 싸우려고 하냐, 그냥 평화롭게 살자’는 식의 장벽처럼 등장하기도 하는 탓에, 평화란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용석 작가도 그런 ‘혼란’에 수긍한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도, 공공연하게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연달한 침공한 조지 W. 부시도 평화를 말했”다. 또 “군대를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도 평화를 말하고,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외치는 참전용사도 평화를 말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체 평화란 뭘까? 많은 사람이 막연하게 떠올리는 개념과 달리, “평화는 고정불변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굉장히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가치”라는 설명은 조금 놀랍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가 말하느냐, 어떤 의도로 말하느냐에 따라 평화의 사회적인 의미와 개념이 달라진다. 평화는 다양한 해석이 충돌하고 논쟁하는 개념”이라니 말이다.

▲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평화롭게 풀어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노력과 저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이용석 작가는 말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평화가 어떤 개념으로 쓰이는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평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긴 어렵다. “1987년 호헌(당시 대통령 전두환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개헌 논의를 중단시킨 4·13 호헌조치)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것도 평화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것도 평화를 위한 일이며,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도 평화”다. “세상 모든 일이 평화”와 관련이 있다.

 

평화운동을 해 오면서 평화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 온 이용석 작가는 질문을 바꿔 보기로 한다. “평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평화는 무엇을 봐야 하나?” “평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로.

 

“페미니즘이 여성의 문제만 언급하는 게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세계관인 것처럼, 세상의 모든 문제에서 평화의 문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시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건 “평화의 사전적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평화로운 곳으로,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작가의 설명을 접하고 나니, 비로소 평화운동의 윤곽이 보인다.

 

▲ “모든 전쟁은 인륜에 반한 범죄”다. <전쟁없는세상>의 병역거부 캠페인 사진. (출처: 전쟁없는세상 withoutwar.org)


전쟁을 만드는 힘, 평화를 만드는 힘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만들자는 평화운동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질문이 남는다. 폭력과 전쟁은 정말 멈춰질 수 있는 것인가? 지금도 팔레스타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비롯해 세계곳곳에 끔찍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전쟁이 없는 세상이란 과연 가능한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생각들을 간파한 듯, 먼저 전쟁과 평화를 논의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 네 가지를 꼽아 정말 전쟁이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설명한다.

 

그 네 가지 질문은 ①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요? ②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나요? ③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④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지 않나요? 이다. 과연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논의임에도, 작가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 등을 예시로 들며 차분히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이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꼽은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세 기둥”은 “전쟁으로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안보팔이 정치인, 전쟁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군수산업체와 정치인은 전쟁 책임을 묻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지만 ‘보통 사람들’까지 포함되다니 과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가 왜 ‘보통 사람들’까지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세상은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서만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 시민들에게도 분명히 힘이 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의 “혐오와 차별”이 전쟁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나치당이 유포한 인종주의에 기반한 혐오와 차별을 독일인들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형성된 파시즘이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는 배경이 되었다.

 

“혐오와 배제, 차별 같은 속성은 전쟁을 일으키는데 아주 좋은 토양”이 되며 “혐오와 배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군수산업체가 조금만 선동해도 전쟁 찬성 여론이 일어나고, 안보팔이 정치인들이 손쉽게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 이제 좀 더 와 닿는다. “전쟁이 시작되고 유지되는 데에 우리의 책임이 분명 있다”는 말도.

 

또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거대한 전쟁을 멈추긴 어려울 것 같지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건 조금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함께하자고 주변인들을 독려하는 건 지금 당장 가능하니까 말이다.

 

▲ “군사비를 줄여 사람과 지구에!” 4월 26일 용산 전쟁기념관 조형물 앞에서 경계를넘어, 개척자들,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평택평화센터, 피스모모 등 평화운동단체들이 공동으로 2021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 캠페인을 개최했다. (출처: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withoutwar.org)


혐오와 차별 부추기는 정치…지금이야말로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책의 3부는, ‘우리의 책임과 권리’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다룬다. 시민이 할 수 있는 평화운동의 형태는 어떤 것이 될 수 있고, 비폭력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하며, 어떻게 비폭력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제시한다.

 

작가의 제안을 통해 ‘평화운동이니까 당연히 비폭력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나아가,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가 한 말처럼,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의미를 곱씹게 된다. 이는 평화운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한 다른 사회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홉 살, 여섯 살 된 조카들이 몇 년 후에 읽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평화는 처음이라>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굉장히 익숙한 듯하지만 막상 얘기해보라고 하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평화와 평화운동을 이렇게 설명해낸 작가의 내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부록처럼 붙어있는 ‘한국의 병역제도’에 관한 글도 우리 사회가 논의를 확장해 나가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준다.

 

지금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전쟁이 없는데 평화운동이 왜 필요할까?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질문이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안보팔이”로 모자라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정치인들이 활개치는 요즘이야말로 평화운동이 필요한 때니까 말이다.

 

사회 내 불균형을 직면하지 않는 ‘우리 서로 싸우지 말아요’ 식의 무늬만 평화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고, 더 큰 폭력과 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흐름을 끊어 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처음이라>를 추천한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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