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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엄마’역이 아닌 중년 여배우들의 세계
영화 <물물교환>(조세영 감독, 2015) 안민영 배우, <공명선거>(박현경 감독, 2019) 김금순 배우, <나의 새라씨>(김덕근 감독, 2019) 오민애 배우, <기대주>(김선경 감독, 2019) 김자영 배우.
세상에는 멋진 배우가 정말 많다. 그 멋진 배우들 중에는 백인 배우가 아닌 배우도 많고, 남성 배우가 아닌 배우도 많으며, 젊은 배우가 아닌 배우도 많다. 우리는 이 멋진 배우들을 통해 영화 속으로 가 새로운 세계를 체험한다. 이번 글은 반대로, 4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독립,단편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는 멋진 중년 여성배우들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 영화 <기대주>(김선경 감독, 2019) 중 |
영화 속에는 수많은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그 수만큼 다양한 사람이 나오지는 않는다.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자 형사, 남자 범죄자, 남자 조폭, 청순한 여대생, 엉엉 우는 어린이 등등... 그 고정된 틀은 성별과 연령대, 외모 등에서 오는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렇다면 중년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엄마’다. 시나리오와 크레딧에도 종종 배역의 이름 없이 그저 ‘엄마’로 적히기도 한다. 시나리오에 주인공 엄마의 이름 석 자를 그대로 적는 것보다는 ‘엄마’라고 적어야 투자자들의 감흥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다.
사회의 고정관념은 호칭에서 드러난다. 10대 20대로 보이는 사람에게 ‘학생’하고 부르는 것, 중년 여성에게 ‘어머님’하고 부르는 경우가 그러하다. 영화에서는 그 호칭이 배역 명이다. ‘엄마’는 본디 관계성을 드러내는 상대적 표현인데 영화에서는 종종 절대적 호칭으로 쓰인다. ‘엄마’는 젊은 연령대를 표준으로, ‘나’인 1인칭으로 상정한 뒤, 상대가 나에게서 어떤 역할을, 어떤 거리를 갖는지 표현한, 주체성이 결여된 언어다. 모든 엄마 역이 수동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에게 분명한 이름이 있다는 뜻이다.
여성 배우들의 역할은 남성에 비해 더 틀에 박혀있다. 특히 연령과 외모에 따라 납작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정해진 버스노선 같다. 10대 청순한 첫사랑 여학생 정류장에서 출발해 20대 젊고 예쁜 여자 정류장을 거치면 돌연 엄마 정류장이다. 여성 배우들은 일정 나이를 지나면 모두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정류장이 있지 않을까? 엄마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외의 노선도 있지 않을까?
물론 전보다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자본의 개입이 덜한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은 젊은 여성, 주체적인 어린이, 그리고 엄마가 아닌 중년 여성이 등장하여 그간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삭혀주고 있다.
▲ 영화 <물물교환>(조세영 감독, 2015) 중 |
<물물교환> 속, 안민영 배우는 남성 중심의 건설 노동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년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 여성은 긴 쇠막대기를 들고 공사장으로 오는 차나 사람을 막는 일을 한다. 남성인 관리소장의 성추행이 연일 이어지지만 일을 해야 삶을 지속할 수 있다. 폐자재를 주우러 수레를 끌고 오는 노년 여성을 막는 과정에서 갈등은 배가 된다. 노년 여성은 소장에게 폐자재를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담아 한라봉을 주고 소장은 그 한라봉을 중년 여성에게 임금 대신 준다.
<물물교환>은 중간중간 소장의 차 블랙박스 영상으로 추정되는 컷들이 나온다. 영화의 시작도 블랙박스 영상으로 시작한다. 소장의 추행이 점점 심해지는 극 중간에는 길을 지키는 중년 여성을 바라보는 것 같은 블랙박스 영상도 나온다. 가해자인 소장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불쾌한 샷이었다. 후반부 이 시선은 여성의 분노로 파괴가 된다. 중년 여성은 약자끼리 더 갈등하게 만드는 잔인한 구조, 남성의 시선을 부수고 노년 여성과의 연대를 선택한다. 노인빈곤을 대변하는 손수레에 노년 여성을 태우고 마치 산타와 루돌프처럼 어둠 속으로 간다. 시종일관 쓰고 있던 안민영 배우의 인상이 마지막 쇼트에서 풀린다.
두꺼운 옷을 꽁꽁 싸매고, 쇠막대기를 들고 우뚝 서 있던 여성은 여전히 옷을 싸매고 쇠막대기를 들고 있지만 함께 가는 사람이 생겼고, 이동하며, 웃는다. 마지막 쇼트의 안민영 배우의 미소는 약자들끼리의 갈등을 부추기는 권력의 유치한 이간질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힘을 보여준다.
▲ 영화 <공명선거>(박현경 감독, 2019) 중 |
<공명선거>에 또 다른 중년 여성 노동자가 있다. 마트에서 해고되고 무소속 구의원 선거캠프에 돈 벌러 간 예선이다. 예선은 선거운동 불법행위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는다는 조항을 보고는 후보를 면밀히 지켜본다. 당장 돈이 급한데 이 후보는 하필 청렴하다. 살짝 조항을 어겨서 신고하려 하는데 규정이 독소조항임을 깨닫고 분노한다.
<물물교환>, <공명선거> 속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저임금에, 돌연 해고를 당하는 상황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2021년 새해 첫날,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전원이 집단해고를 당했으며(관련기사: 여성 청소노동자 집단해고가 이렇게 쉽나요? https://ildaro.com/8928), 재작년 6월에는 1,500여 명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가 해고되기도 했다.(관련기사: 145일의 점거농성 ‘도로공사에 우리 존재 보여주려고’ https://ildaro.com/8714) 그들이 투쟁했던 것처럼 영화 속 여성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부당함에 맞선다.
영화 속에서 예선은 마트에서 해고된 처음과, 선거법의 과한 규제를 인지한 마지막, 두 번 언성을 높인다. 예선 역을 맡은 김금순 배우는 이 두 화를 철저히 다르게 드러낸다. 나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한 처음보다 오히려 나보다 더 권력 있는 자가 겪을 수 있는 부당함에 더 크게 분노한다. 이 차이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더 앞장서는 선심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부당함을 연이어 목격한 자의 이제는 못 참겠다는 한계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부조리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매번 다르고 그에 따라 감정도 매번 다르다. 그 결을 무시하고 단순히 억울한 일로 퉁칠 수 없다.
하지만 아예 다른 일로 규정할 수도 없다. 어쩌면 예선은 앞서 부당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기에 타인이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공명선거> 속 김금순 배우의 연기는 이 모든 결을 담는다. 타인의 부당함에 공감하되, 온전히 내 경험의 틀로만 해석해 다 아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을 것.
▲ 영화 <나의 새라씨>(김덕근 감독, 2019) 중. |
<나의 새라씨>에는 새라 역의 오민애 배우를 비롯하여 전소현 배우, 김자영 배우 등 멋진 여성 배우들이 등장해 오래 갈은 장검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새라는, 사실 정자다. 서울에서 여러 실패를 겪고 ‘새라’라는 가명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와 도축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도축공장의 노동자들은 대체로 중년 여성이고 관리인, 실장 등은 남성인 전형성을 띤다. 신입인 새라는 기존 직원들의 텃세에도 쉽게 굴하지 않는다.
영화는 한 여성이 인생에서 겪은 실패를 남성의 부재로만 설명하지 않으며 극복 또한 남성에 의한,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라가 과거의 자신인 정자와, 겪었던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현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주체적으로 이뤄진다.
오민애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실패를 겪는 인물을 나약하게 그리지 않는다. 인생의 실패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며, 그리고 그 실패와 변화를 서툴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나약함의 문제가 아님을 명시한다. 새라의, 정자의 얼굴이 앵글 가득 찬 마지막 클로즈업 쇼트에서는 심장이 쿵하고 떨어진다. 인생의 굴곡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던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순간을 포착한다. 그 순간의 힘은 미래의 어떤 고바위도 넘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전한다.
앞의 세 영화 속 중년 여성 배우들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엄마‘만’이지는 않다. <물물교환> 속 여성은 부엌이 아닌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공명선거>의 예선은 앞치마 대신 마트 조끼와 선거운동복을 입으며, <나의 새라씨>의 정자는 앞치마와 고무장갑도 입지만 노동자로서 일을 위한 착용이지 자식 밥 차리는 엄마의 전형성을 위한 복장이 아니다.
▲ 영화 <기대주>(김선경 감독, 2019) 중 |
<기대주>에서 김자영 배우가 연기한 명자는 부엌으로 간다. 요리도 하고 밥도 차린다. 하지만 ‘엄마’와의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가족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하여 차리는 밥이다. 명자는 중학생 지규와 함께 아마추어 수영대회 팀원을 뽑는 최종 엔트리에 올랐다. 시합을 앞두고 명자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한 상을 준비한다.
명자는 끝내 실망하게 되지만 그 결과가, 기대주가 아닌 자리가 원래 제자리였던 것처럼 울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뿐이다. 헌데 그 맵고 짠 음식을 먹는 모습이 자신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을, 잠깐 품었던 정성을 다할 미래가 없어졌음을 통렬하게 전달한다.
사회는 중노년을 미래가, 기대가 없는 대상으로 치부한다. 젊음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계속 바꾸면서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그들 스스로가 무용함을 느끼게 강요한다. 가족의 부속품인 엄마가 아니라 개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기대주> 속 현실에서도 다들 명자가 자리를 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억척스럽고 유난인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한다.
다시 명자의 식탁 앞으로 돌아가 본다. 정성스레 차려진 한 상 앞에서 김자영 배우는 살짝 웃는다. 좀체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소다. 누구든 새로운 도전을 앞둔다면 내가 발전하게 될 미래를 상상하며 설렐 터인데 왜 중노년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오히려 그들은 도전을 싫어하고 안주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쉽게 판단한다.
2019년, <기대주>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탔을 때, 김선경 감독님의 수상 소감 첫마디를 잊을 수 없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른데.”까지 말씀하시고 호흡을 가다듬으셨다. 맞다. 저마다 방식이 다르고 리듬이 다르다. 정해진 버스노선 같은 것은 대체 누구 우울하라고 만든 허상일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역할이 다른 역할보다 덜 중요하며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만 있다면 문제다. 부딪히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기대하는 중년 여성의 다양한 모습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기대주’, ‘라이징 스타’라고 하면 흔히 10대, 20대의 배우를 떠올릴 것이다. 사실 저 단어들은 이미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으며 엄청난 필모그래피와 연기력을 가진 네 배우들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다. 헌데 이 멋진 지금보다 더 멋질 내일이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947년생 윤여정 배우가 계속 새로운 내일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민영 배우는 GV(관객과의 대화)에서 단편영화는 주로 젊은 감독들이 많이 찍는데 중년을 주로 딸의, 아들의 입장에서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시며, 올려다보는 시선이 아닌 그대로의 중년 캐릭터의 필요를 언급했다. 김금순 배우는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손수현 감독, 2020)에서 수트를 입고 총을 쏘는 멋진 느와르 연기를 선보였다. 오민애 배우는 직접 촬영과 편집까지 하며 유투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정치인, 장관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자영 배우 또한 수동적이고 소모적이지 않은 중년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네 배우를 비롯한 위대한 중노년 여성 배우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울 미래가 기다려진다. 그 미래를 당기기 위해서 관객은 이 배우들을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제작자들은 편견과 보수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연출부들은 시나리오 글자 포인트를 12 이상으로 조금 더 크게, 모아찍지 말고 한 면 인쇄를 해야 한다. 나의 기대주 김금순, 김자영, 안민영, 오민애 배우님, 그리고 모든 중년 여성들에게 존경과 사랑, 응원과 감사, 연대와 포옹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한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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