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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의 목소리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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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들게 일하다 떠난 사건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 싫었다. 열심히 일하다 돌아가신 아빠의 삶의 흔적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말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고민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런데도 내가 용기를 낸 건 아빠의 명예회복을 위해서였다. 아빠의 죽음을 과로사로 인정하는 건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의미였다.” -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중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잊을만 하면 과로로 인해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이용이 급증하자 택배 관련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이 연이어 들렸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끊임없는 노동을 요구하는 사회에 분노하게 되지만, 분노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해소할 수 없는 감정만 쌓이곤 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건 정말 분노뿐일까?

 

▲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나름북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를 쓴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도 그런 질문을 던졌다. 분노는 그들을 투쟁하게 한 원동력이긴 했지만 그게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고 변호사, 노무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협업하여 그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이 책에는 과로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건네는 조언과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의 A부터 Z까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당사자’들을 위한 내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과로사회’인 한국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장임과 동시에, ‘부재’(소중한 이가 이제 없다는 것과 과로노동 문제를 해결할 사회제도가 없다는 것)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노동 환경을 바꿔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서다.

 

과로사, 과로자살이 의미하는 것

 

한국사회에서 ‘과로사’와 ‘과로자살’은 어느새 익숙한 말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 자체에 익숙해졌을 뿐, ‘일을 많이 해서 죽었다는 것’ 이외에 그 개념이나 정의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차근차근 짚는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라고 소개하며, 1969년 12월 23일 아사히신문 발송부에서 근무하던 다케바야시 카츠요시 씨의 죽음이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얘기한다. 또한 1991년 일본의 유명 광고회사인 덴츠에 근무했던 24세 청년의 과로자살이 어떤 논의를 불러왔는지도.

 

이후 일본 시민사회의 오랜 운동의 결과로, 일본에선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과로사는 크게 ①과로로 인하여 발생한 뇌심혈관계 질환과 그로 인한 사망 ②과로로 인하여 발생한 정신장애와 그로 인한 자살이 포함된다.”

 

하지만 개념만 겨우 정의되었을 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과로사 인정 기준, 과로자살 인정 기준이 법령에 명확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의학적 진단명도 아니다. 과로죽음으로 추정되어 부검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과로사가 아니라 아니라 ‘급성심근경색’, ‘뇌출혈’ 등으로 나온다. 과로사로 인정되기 위해선 ‘급성심근경색’, ‘뇌출혈’ 등의 원인이 과로로 인한 것임이 밝혀져야 한다.

  

▲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은 과로죽음을 양산하는 사회를 비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다. 사진은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가족 장향미 님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https://kilsh.tistory.com/1531)


이야기는 결국 과로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 일본과 한국 모두 일단 ‘장시간 노동’을 “과로의 대표 양상”으로 본다. 하지만 “과로 여부는 노동시간만으로 따질 수 없다.” “업무와 관련해 큰 심리적 부담이 있는 경우도 과로에 해당”하고, “정신적 긴장도가 높거나,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책임과 부담이 높은 업무”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선 학생 지도에 심리적 부담을 느낀 교사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를 ‘교사들의 과로자살 문제’로 보았고, 한국에서도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업무와 관련된 자살은 과로자살로 봐야 한다는 게 유가족모임의 주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과로사·과로자살을 “장시간 노동 등 과중한 업무 부담 및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사망 및 자살”로 정의한다. 이 때 ‘장시간 노동 등 과중한 업무 부담 및 심리적 부담’은 “일하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가족 및 사회생활을 원활히 유지할 수 없는 정도의 업무”를 뜻한다.

 

과로죽음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

 

이 책에는 과로죽음 이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만큼, 그 죽음 이후 유가족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며 어떤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남겨진 이들의 다양한 감정, 슬픔과 분노, 원망, 죄책감과 외로움, 고립감이 그들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서술하는 한편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퍼할, 아닐 화낼 시간조차 내겐 허락되지 않았다. 회사는 계속 전화를 걸어오고 경찰은 자꾸 조사를 하자고 한다. 유가족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정해진 업무를 빨리 끝내려고만 하는 경찰의 태도에 상처받는 것도 내 몫이었다.”

 

유가족이 겪는 문제는 너무 많고 다양하다. 죽음의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시작된 경찰 조사, 부검에 대한 결정 및 상황 파악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몰아친다. 순식간에 유가족이 되어버린 이들은 준비 없이 이 현실을 마주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고인의 죽음 이후 어떤 행정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지, 왜 필요한지, 과로죽음을 인정받기 위해 이 절차에 어떻게 임해야 유리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온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인다.

 

▲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에서 소개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청구서 양식


이들이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는 “고인이 나약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높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인해 사망했음을 밝히는 명예회복”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가 다는 아니다. 과로죽음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과로죽음에 관한 본질적인 이해와 인정을 거부하는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과로나 일중독은 우리가 해내야 하는 것, 또는 자발적인 습성으로 간주해 과로죽음을 개인의 몫으로 자연스레 넘기고 있”다. 하지만 과로죽음은 결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일중독을 당연시하는 기업, 과로를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개인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함께 인식”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그것을 위해 “과도한 성과주의와 일중독을 묵인하는 기업 행태, 정부 차원의 제도적 결핍을 끊임없이 말하고 이의 과정이자 결과로서 산업재해 신청 및 승인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로죽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남겨진 질문 ‘나도 저렇게 될까?’

 

과로죽음이 결코 어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건, 고인과 함께 일했던 혹은 같은 직종에 있어서 동질감을 느끼는 동료들에게 남은 트라우마에서도 드러난다.

 

“회사는 팀장님의 죽음에 대해 반성하거나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고인이 지병으로 사망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다. 관리자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우리 팀원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자의든 타의든 나도 열심히 일하다 죽는다면 똑같이 말하겠지. 회사에 대한 신뢰가 깨졌고 더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간호사의 과로자살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똑같이 일했지만, 마음속 울분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죽은 동료를 애도하는 마음 대신 나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장 슬펐던 건 같이 일하던 동료가 과로자살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결국 내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사했다.”

 

과로죽음을 목격하고 남겨진 동료들에게도 분명히 상처가 남는다. 공포와 충격뿐만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물론 안타까움, 미안함 등으로 고통이 가중되며 회사를 향한 배신감과 좌절감”도 자리하게 된다. 그런 감정들은 고통을 주고, 결국 일이나 회사를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 그 고통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해소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로 해소하기 위해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남겨진 동료·친구들은 회사 안에서 연대를 도모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회사를 떠나더라도 “과로죽음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직접 행동에 나섬으로써 변화를 강구”하기도 했다.

 

책에선 그런 과정을 겪은 이들이 또 어딘가에 남겨진 동료·친구들에게 건네는 전하는 메시지들도 정리되어 있다.

 

▲ 2019년 9월 4일,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과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 대응, 경험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https://kilsh.tistory.com/2233)


과로를 멈추자

 

유가족과 동료, 친구들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소중했던 이의 과로죽음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는 산재 인정을 받고 누군가는 못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이후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비록 일상을 회복하기까진 시간이 걸리고 그 이전과 똑같아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후의 삶을 위해 조금씩 한걸음 내딛는다.

 

하지만 그건 과로죽음 이후 주변인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일 뿐, 과로죽음에 대한 해결이나 해답이 아니다. 과로죽음에 대한 해결은 “과로를 멈춰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외침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는 물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에서 과로를 멈추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부분은, 정부에 장기간 노동, 야근,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문제를 제대로 규제하고 관리하도록 요구한 내용이다.

 

“정부는 아직도 과로죽음이 개별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 산재 보상의 문제, 기업과 노동자가 원인을 다퉈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비판한 유가족의 목소리에 정부와 정치권은 얼마나 응답하고 있는가?

 

이 책의 마지막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언급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유가족모임은 “노동자가 건강히 일할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도, “정의당 및 시민운동본부에서 제안한 법안과 비교했을 때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많은 부분이 법안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고 꼬집는다.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는 부재(不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존재(存在)해야 하는지로 끝맺는다.

 

우리가 남았다. 더 이상의 과로죽음을 막기 위해서.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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