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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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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걸 떠올릴까? 부끄럽지만, 내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람들이 가득한 난민보트나, 보트를 타고 오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굉장히 단편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그것이 가장 자극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외엔 별로 아는 게 없는 탓이기도 하다.

 

2021년 한국에 살고 있는 시민들 다수가 평생 난민을 대면한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2018년 500명이 넘는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해 이들의 존재가 ‘가시화’되자 한동안 ‘난민 이슈’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작년, 유엔난민기구(UNHCR)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사람은 33%, 반대하는 사람은 53%다. 2018년에 찬성 24%, 반대 56%였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진 수치이지만, 여전히 과반이 난민 수용을 경계하고 있다.

 

▲ 서아프리카 가나에 위치한 부두부람 캠프 내 번화가 모습 (출처: 원더박스)


이런 한국 땅에 도착한, 의미 있는 책이 있다. 작년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에 발간된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오마타 나오히코 지음, 이수진 옮김, 원더박스)이다.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라는 설명이 말해주듯, 이 책은 서아프리카 가나에 위치한 부두부람 캠프에서의 생활과 그 안에서의 다양한 만남을 담고 있다.

 

일본인 인류학자는 왜 아프리카 난민캠프로 향했을까?

 

난민을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편견 중 하나는, 난민들의 대부분이 유럽 등의 ‘선진국’에 머물며 지원을 받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약 2,500만 명에 달하는 난민 중 대다수인 90%에 가까운 인구가 개발도상국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저자는 밝힌다. 유럽 등지에서 지내는 난민은 정말 적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을 쓴 오마타 나오히코 씨의 모국인 일본이나 한국에서 머물고 있는 난민의 수는 더욱 더 적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난민연구센터에서 ‘난민 경제 활동’을 연구하는 오마타 나오히코 교수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난민캠프에서 연구를 진행한 것도 그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가나의 부두부람 캠프는, 가나의 옆옆 국가인 라이베리아 공화국에서 14년이나 지속된 내전으로 집, 가족 등을 잃거나 죽음의 문턱 앞에서 탈출한 이들이 난민 신분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라이베리아 내전은 2003년 정전 협정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오마타 나오히코 교수가 부두부람에서 머문 2008년부터 2009년까지도 약 2만명의 난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일단 2008년~2009년 이야기라니 너무 오래 전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2017년까지도 난민들의 생활이나 난민캠프의 상황, 그리고 난민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난민은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유럽으로 난민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反난민’ 정서는 유럽의 극우파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저자는 이제서라도 10년 전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다.

 

▲ 옥스퍼드대학 난민연구센터 부교수로 역임 중인 인류학자 오마타 나오히코 씨가 쓴 책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이수진 옮김, 원더박스)


또 하나, 라이베리아의 내전이 2003년에 끝났는데도 왜 2만명이나 되는 난민이 난민캠프에 남아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이제 라이베리아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혹은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것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난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로도 연결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마타 나오히코 교수는 난민캠프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이 사례를 들며 반복해서 설명한다. 설사 내전이 끝났다 하더라도 가족이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한 경우나 그렇게 가족을 죽인 장본인이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사람도 있다는 걸. 난민의 수만큼 그들의 사연 또한 다양하다.

 

또한 난민캠프에서의 삶이 전부인 난민 2세대, 3세대에게 과연 모국이란 어디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 그들에게 ‘모국으로 돌아간다’는 건 갑자기 ‘해외로 이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끔찍한 난민캠프보다 낫지 않냐? 난민 정체성 때문에 차별 당한다고 하지 말고 너네 나라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라’는 말을 내뱉기 전에, 우린 난민캠프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난민들의 경제 활동, 같은 난민이라도 출발선이 다르다

 

저자가 난민의 경제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401일간 머문 부두부람 캠프는 1990년 약 3,000명의 라이베리아인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당시엔 난민의 수가 많지 않아 모두 다 생활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나는 난민으로 인해 캠프의 규모가 점점 커졌고, 주변 주거 지역과의 경계도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캠프에 머물 당시, 난민캠프의 면적은 약 100헥타르, 도쿄 돔 21개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약 20년 동안 난민캠프에서 지내다 보니, 난민들은 간이시설 대신 직접 집을 짓기 시작했고 경제 활동도 시작했다. 다만 캠프 주변은 농업이나 수렵 등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대부분의 난민들은 소매업에 종사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난민에겐 지속적인 지원금이 제공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정말 죽지 않을 정도의 식료품, 식수 등이 제공되는 ‘긴급구호’의 단계는 1년에서 2년 정도다. 특히 부두부람 캠프처럼 오래된 난민캠프의 경우, 지원했을 때 드러나는 성과나 효율성이 높지 않다고 여겨져 다양한 지원이 점점 줄어든다. 필자가 만난 많은 난민들이 “캠프에서 공짜는 하나도 없어”라고 외치는 데엔 이유가 있다.

 

▲ 난민들의 정치 활동은 금지되어 있지만, 부두부람 캠프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난민에 대한 차별과 모욕에 항의하며 난민 여성 그룹이 주최한 시위 모습. (출처: 원더박스)


공짜 없는 사회에서 난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경제 활동은 무척 제한적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증명은 난민등록카드가 전부이고, 은행 계좌를 열거나 대출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이들이 ‘선택’하는 건 캠프 내에서 음료,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다. 몇 달러의 현금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기에 장사를 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그들에게 남겨지는 건 초라한 이익 혹은 본전 찾기 정도다. 하지만 모든 난민이 노점상에 매달리는 건 아니다.

 

오마타 나오히코 교수는 난민캠프에서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외에도 캠프 내엔 미용실, 잡화점, 네일 숍, 레스토랑, 핸드폰 선불카드 가게, 치과 등 다양한 가게와 편의시설이 있다. 이런 가게들 또한 난민이 운영하는 곳이다. 다만 이들에겐 노점상을 하는 난민들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들 대부분이 해외에 머물고 있는 가족, 친지 등에게서 “해외 송금”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들에겐 든든한 경제적 버팀목/지원자가 있다. 같은 난민이라 할지라도 ‘출발선’이 다른거다.

 

“배가 부를 때까지 물을 마셔야 하는” 난민이 있는 반면(이런 사람들의 다수가 싱글맘 가족이라는 점도 눈 여겨 봐야 할 지점이다), “취미로 악기를 살 수 있는” 난민도 있다. 심지어 그는 투자 개념으로 땅도 살까 고민한다.

 

모든 것을 잃고/버리고 피난 온 사람들, 타국에 와서 많은 제한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되지만, 이들 사회에서조차 ‘노오력’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 다시금 공정사회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선진국’을 향한 열망, 과연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이렇게 제한된 삶의 조건 속에서 “해외 송금”이 삶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다 보니, 성별 상관 없이 청년들은 힘들게 노동을 하는 것보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린다. 바로 선진국으로의 ‘재정착’ 혹은 외국인 후원자 찾기다. “언젠가는 미국”에 갈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난민캠프 탈출’을 계획한다. 그 방법은 때로 무모하고 억지스럽고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필자 또한 자신에게서 어떤 기회를 얻으려는 난민들의 접근으로 곤란함을 겪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노르웨이 남성과 만나 결혼에 ‘골인’한 여성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퍼져나가고, 인터넷 후원자를 찾기 위해 프로필을 구성하는 방법,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컨설턴트도 등장한다. 이들은 누가뭐래도, 이것을 “우리만의 창조 경제”라고 할만큼 진지하게 임한다. 누군가는 이걸 “미친 짓이라는 한 마디로 쉽게 단정”할 테지만, 과연 그럴까? 무엇이 그들을 그런 ‘미친 짓’에 매달리게 하는지가 더 중요한 건 아닐까?

 

하지만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나 기관조차 그런 질문에 관심을 가지기보단 빨리 ‘가시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방안 중 하나이자 최선으로 여겨지는 건 “본국 귀환”이다. 난민이 본국으로 귀환한다면 그들은 더이상 난민이 아니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본국 귀환” 프로젝트에 많은 지원금을 쏟아붓기도 한다. 2009년 부두부람 캠프도 “(더 이상 이런 지원은 없을 거라는 당근과 채찍이 뒤섞인) 본국 귀환 프로젝트”로 술렁인다. 그런 혼란 속에서 결국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책 속에 등장한 수십 명의 난민들이 단지 난민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그들이 이제 ‘난민’에서 벗어났을까가 아니라 지금 그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지, 그들의 삶 자체가.

 

또한 깨닫게 된다. ‘누구든,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필자의 말의 의미와 함께 그들이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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