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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의자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21. 9. 13. 09:49

<여성과 오브젝트> 의자: 움직이는 여성성의 거처

 

<들어가는 말> 그동안 사물/객체/대상으로 인식되어온 여성과 오브젝트의 만남은 우연하고 필연적이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여성과 오브젝트가 연결되고 욕망하고 합일하고 분열되어 결국 각각 아름답게 존재하게 되는, 세계가 잠시 오작동하는 순간들의 재구성이 될 것이다. 둘 사이에는 뚜렷하게 실감되는 슬픈 힘이 있다.

 

▲ 의자: 움직이는 여성성의 거처 (출처: 플리커)


여성과 오브젝트: 의자

 

볕이 사나왔다. 걸어서 20분 거리라고 가볍게 의자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한여름, 한낮, 쨍쨍하게 퍼붓는 햇살 아래 두 팔을 번쩍 들고 벌서듯 의자를 들고 있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쿡, 웃음이 났다.

 

K의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걸 알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몰랐다. 내가 든 의자와 내 얼굴을 일별하는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왜 저래? 그러게나 말입니다. 개중에는 1970-1980년대 초등학교에서 쓰던 낮은 의자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모습이 어딘지 친숙해서 시선을 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긴 사다리를 잘라서 뚝딱 조립한 것 같은, 가끔 못이 튀어나와 엉덩이를 찌르던, 항상 삐걱거리던, 걸상이라 부르던 의자를 들고 교실 뒤에서 벌을 서보지 않았더라도 추억은 방울방울 시대물들이 재현하는 교실에는 그런 모습들이 흔했다.

 

요즘도 저런 의자가 있어? 누군가 지나가면서 그랬다. 지역의 한 폐교에서 가져온 거예요, 라고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이걸 굳이 굳이 가져와서 친구에게 갖다 주느라 이 고생을 하고 있지요, 라는 말은 알아서 삼켰다. 그보다는 내 자세며 마음이 어쩐지 내가 자꾸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롱이 할머니는 그게 다 태어나 받은 자기 자리가 내내 불편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했다.


지역 예술인들의 작업실로 사용 중인 폐교에서 그 마을의 여성노인들이 그림 수업을 받고 있었다. ‘여성노인과 예술’이란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듣는 게 취재의 목적이었다. 원래 일을 진행하던 기자가 모친상을 당해 내가 급히 대신하게 된 자리였다. 수업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도롱이 할머니라고 부르던 노인은 마을의 반장이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손을 끌어 곁에 앉히고 연신 손등을 쓸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나는 비교적 노인들의 젖은 시선을 잘 받아내는 편이었다.

 

열 명이 넘는 여성노인들의 눈을 보며 일과를 묻고, 아침 반찬 종류를 묻고, 그리고 싶은 얼굴을 물었다. 그들은 뭐 그런 걸 다 묻느냐 하면서도 막상 대답 전에는 골똘했다. 그들의 남편과 아이들이 이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대부분이 결혼 후 마을에 들어와 평생을 살고 있었다. 드문드문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질문을 잇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여성노인들의 대화가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반장님은 이 학교 출신 아니던가?”

“학교는 다니다 말다 했지. 그때도 일하느라 바빠서.”

“요즘도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다잖아.”

“내일 쑥 캐러 간 김에 무덤 파든가.”

“아, 그 송가네 무덤 앞에 의자는 누가 갖다 놓은 거래?”

“그 여편네가 무릎 수술하고는 쪼그려 앉질 못한대.”

“의자가 세 개던데?”

“나하고 저 여편네하고, 송가 여편네 셋이 앉아 노느라.”

 

무슨 넉살로 남의 남편 무덤가에서 셋이 앉아 노느냐, 쑥 다듬느라 그랬지 꼭 놀았다고는 할 수 없다, 막걸리 마셨으면 논 거지 뭘 우기냐… 로 흘러 흘러 그러니까, 내 첫 질문이 뭐였더라 나도 잊고 그들도 잊고 다 잊었으나 끝에는 웃음이 터졌다. 무덤 앞에 의자라니. 어떤 의자요? 내가 묻자, 도롱이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1층 복도 끝으로 데려갔다. 옛날 신발장, 사물함, 책걸상 몇 개가 거기 쌓여 있었다.

 

짝꿍이 넘어오지 말라고 그었을 선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의자 하나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갖다 놓을 무덤 생기려면 한참 멀었을 텐데 뭐 하러?”

 

그렇게 말하면서도 도롱이 할머니는 개중 제일 멀쩡한 거, 튼튼해 보이는 거, 깨끗한 거를 고르고 골라 내게 내밀었다.


삶이 잡동사니 가득 든 가방 같다. 내가 사는 모양새가 그렇다는 거다. 거기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쑥 들어오는 바람에 ‘커다란 가방, 하얀 고양이, 그리고 나’ 이렇게 조금 다른 구성의 세트가 되었다. 삶에 툭툭 끼어드는 것들에게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편이지만 그 의자는 둘 곳도 넣을 데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걸 모르지 않았는데 대체 왜.

 

그때, 노인들이 무덤 곁 의자 세 개 이야기를 했을 때, 여성 노인 셋이 앉아 쑥을 다듬는 상상 옆으로 강가 잔디밭에 오도카니 놓여 있던 낡은 의자 하나가 지나갔다. 그게 내가 계속 살아가게 되어서 마침내 닿을 시간이 얼굴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변 풀숲에 의자를 내놓았던 사람이나 무덤 곁에 의자 세 개를 갖다 놓은 이들은 내가 언제고 도착할 여성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저기에도 있었다. 여기 거울 속에, 거기 지역의 폐교에, 저기 다뉴브 강가에도.

 

대략 유럽 10개국, 19개 도시를 지나는 다뉴브 강은 꽤 오래 나를 설레게 했다. 말하자면 나는 다뉴브 강의 팬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 시원에서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 2,850km는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의 직선거리다. 그것은 잠비아와 카메룬 간의 거리이자, 미국 시애틀과 오스틴의 구간거리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다뉴브 강에 대한 내 애정을 증명하는 데에만 유용한 것이긴 하다.

 

팬으로서 애정하기와 증명하기는 중요한 일이다. 독일의 검은 숲에서 흑해 합류점까지, 강이 지나는 유럽의 도시들을 성지순례하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도 팬이라면 흔히 갖는 애정의 표현이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던 그 바람을 친구의 초대로 처음 실현하게 된 날, 독일 울름을 지나는 다뉴브 강가에서 내가 결국 여기에 왔구나 감회에 젖어 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의자를 봤다.

 

강을 따라 걷기 좋게 다듬어진 좁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앞을 봐도 강이고 옆을 봐도 강이어서 좋았다. 간혹 강의 유속에 호흡과 시야를 맞추면서 그날은 그냥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었다. 의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다른 시공간의 입구에서 뚝 떨어져 어쩌다 거기 있게 된 것 같은 의자의 앞뒤 사정을 모르는 채로는 이곳에 있는 걸로 충분하지 않은 기분이 갑자기 들었다. 처음에는 강가의 조형물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의자에 박힌 못 자국이 어렴풋하게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나는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내가 모르는 과거 언젠가에는 전 세계의 초등학교 교실 의자가 모두 같았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한 게 볼수록 내가 초등학교 때 앉았던 의자와 흡사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뉴브보다 의자였다. 솟은 어깨 부분에 가방을 걸어두면 꼭 한 번씩 무게를 못 이기고 뒤로 발라당 넘어지던 그 의자가 다뉴브 강변의 잔디밭에 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자로 다가서는 한 여자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의문을 안고 후다닥 달려가 거기에 앉을 수도 있었다. 의자에는 앉아봐야 알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자 옆에 서서 강가로 시선을 두는 것 같던 여자가 내 쪽을 바라봤다. 곁을 내어주는 표정이 부드러워서 여자의 나이가 보였다.

 

의자의 어깨쯤에 손을 올리고 노인은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오늘은 강물이 시끄럽네요. 인사는 그렇게 왔다 갔다. 영어가 느렸지만 정확한 편이었다. 나도 조금 느리게, 그러나 문법은 엉망인 채로 말했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썼던 의자와 똑같이 생겨서 보던 참이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요.”

“그럼 생각하던 의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한국에서 가지고 온 거예요?”

“나 말고 원래 의자 주인이요.”

“당신 의자가 아니었군요.”

“원래 친구 것이었어요. 죽었어요. 내게 이 의자와 고양이들을 남겨줬지요.”

 

독일 동화가 유명해진 이유가 있겠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게 영향이 적지 않을, 여운이 짧지 않을 이야기가 도착하기 전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나는 그런 식으로 밀어내곤 했다. 비틀기, 꼬기, 냅다 도망치기. 노인의 이름은 안나. 죽은 친구의 이름도 안나였다고 했다. 얼핏 한나로 들리기도 해서 나는 그들을 안나와 한나의 중간쯤인 발음으로 기억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의자에 앉기가 점점 어색해졌다. 안/한나는, 살아 있는 안/한나는 의자를 지팡이처럼 쓰며 서 있었다. 그가 앉기에는 좀 작아 보이긴 했어도 앉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의자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강을 향해 나란히 있었다.

 

“한국에 세 번째인가 다녀오면서 안/한나가 이 의자를 가져왔어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미 의자에는 일면식도 없이 죽은 안/한나가 앉아 있는 것이다. 한국 방문이 잦았다는 건 직업과 관련이 있거나, 불행히도 그의 남편이 한국인이었거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랬다. 의자 옆에 선 안/한나의 말이 내 상상의 폭을 넓혔다.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어서 독일에 왔다고 했어요.”

 

나는 입양아 안/한나가 독일에 도착한 날을 떠올렸다. 그가 요람에 눕혀지고, 모빌이 바람에 흔들리고, 우유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언어를 배우기 전까지,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기 전까지 세계는 오붓하다. 안/한나 둘은 언제 만났을까. 아주 가끔 언어 이전의 세계에서처럼 자신의 주변이 오붓해지는 순간에 그들은 서로를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이건 오래된 이야기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에게 잘 순응하지 못하는데 예외적이게도 처음을 선사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한시적이나마 그게 가능해진다. 처음이었다고 했다. 안/한나처럼 이상한 사람은. 나는 그 지점에서 마음 놓고 웃었다.

 

“이상한 여자들은 이상해요. 잠깐 본 것뿐인데도 잊기 힘들어요.”

“자기 의자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니까요. 이상한 여자들은 자기 의자에 나를 꼭 한 번씩 앉게 해줬어요.”

 

이상한 여자들의 의자와 그 의자에 앉아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졌지만 나는 안/한나의 저 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상한 여자들은 자기 의자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라는 말. 그 의자에 다른 여자를 한 번은 앉게 해주었다는.


송가네 무덤은 학교 운동장에서도 보였다. 무덤을 등지고 의자 세 개가 학교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쩌다 얻게 된 옛날 의자를 들고 폐교를 떠나면서 그 풍경을 보았다. 도롱이 할머니는 교문 앞까지 나를 배웅해주면서 간간이 내 손에서 의자를 빼앗아갔다. 고작 몇 걸음을 대신 들어주려고 힘을 쓰다가 아이고, 좀 쉬자, 하면서 의자에 털썩 앉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교문 가까이 와서는 도롱이 할머니가 나를 거기 앉혔다. 타고 갈 차가 코앞에 있었는데도 그는 의자를 학교 쪽으로 돌려놓고 내게 잠시 앉았다 가기를 권했다. 들어오면서는 보지 못한 폐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교실 창문에 붙어 선 노인들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 위로 무덤이, 의자 세 개가, 안/한나의 모습도 잠깐. 모든 이야기가 다뉴브처럼 이어지다가 오직 빈 의자 하나로 남게 되는 삶에 대해서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던 것 같다.

 

안/한나는 처음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 다른 안/한나의 품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어쩌다 울게 될 때마다 문득 그랬다. 혹시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긴 시간 상상했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그 상상 속의 사람들과 자신을 다 잃었다고, 파편만 남았다고 나처럼 울었을까. 그러면 강가의 의자가 눈앞에 선명해지곤 했다.

 

이상한 여자들이 오고 갔다. 아, 내가 아는 최고 이상한 여자도 의자를 기다리고 있지 참. 기다리라지. 한여름, 한낮 뙤약볕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내게 떨어졌다. 도롱이 할머니에게 배우지 않았나. 힘들면 의자 내려놓고 쉬었다 가면 된다. 내 의자가 없으면 다른 여자 의자를 빌리면 되고, 그 의자는 다른 여자에게 갚으면 된다.

 

K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거기 의자에 앉아 있는 이상한 여자가 너니?”

나는 벌떡 일어나 의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 애정결핍과 공동의존의 회복 『남은 인생은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588266

 

남은 인생은요?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인 저자 성sung의 첫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아동기에 한국을 떠난 저자는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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