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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전화기 밖으로 나온, 콜센터 상담사의 목소리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21. 9. 28. 09:15

책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상담사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안내하는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객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이후,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이런 멘트를 접하게 된다. 이 멘트를 통해, 콜센터에 전화를 건 ‘고객님’들은 상담사가 마스크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것 말곤 상담사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 누구나 한번쯤은 콜센터 상담사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고객님’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고객인 우리는 과연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과 삶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진: pixabay)


일단 상담사가 업무 시간 내내 써야 하는 마스크를 제공해 주는 회사가 별로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기 어렵다.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금융노조우분투비정규센터가 함께 콜센터 상담사 3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0 콜센터 상담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무일마다 마스크를 제공해 받았다는 상담사는 14.9%에 불과했다.

 

작년 3월 구로지역 에이스 손해보험에서 약 170명의 콜센터 상담사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근무시간 내내 한 자리에 머물며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을 해야 하는 상담사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책상 너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집단감염 사태 이후 ‘콜센터 사업장 예방지침’ 등의 방안이 등장했지만, 상담사들은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 일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콜센터 상담사의 3명 중 2명은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이라 답했으며 거의 반에 해당하는 46.9%의 사람이 ‘우울감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는 직장갑질119가 2020년 9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19.2%)에 비해 2.4배 높다.

 

누구나 한번쯤은 콜센터 상담사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고객님’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고객인 우리는 과연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과 삶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알려고 한 적은 있을까? ‘콜센터상담원’이라는 트위터 계정으로 활동해온 콜센터 상담사가 쓴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코난북스)은 “10년이 넘도록 매일 100통 넘게 받은 전화. 그렇게 오간 말들, 사람들과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콜센터상담원'이 어떻게 콜센터 상담사가 되었는지 ‘놀랍게도 평범한’ 탄생 비화?!부터 시작해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상담사가 놓인 생생한 현실까지 담았다.

 

▲ 책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콜센터상담원’ 지음, 코난북스)


“이직이 정말 잦은 감정노동의 시장”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은 정말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있지만, 특히 자주 등장하는 건 콜센터 상담사의 취약한 위치에 대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콜센터 상담사는 ‘일하는 사람’이건만, 이 전제는 수시로 무너진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늘 ‘을’의 위치인 상담사들은 “끼인 존재”로서 고군분투한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고객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도록 교육 받고, 그렇게 응대하지만 일반화될 수 없는 고객의 다양한 행태(속된 말로 ‘진상’)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야, 너, 아줌마 등’의 말이 날라오는 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사극 대사도 아니고, “이 평민들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사는 그런 인격모독성 발언에도 대항할 수 없다. “네가 그러니까 콜센터 같은데서 일하지”라는 말을 내뱉고도 “상담평가에 ‘불만족’”을 찍어버리는 고객이 등장해도 상담사는 보호를 받기는커녕 ‘더 친절하게 설명하지 그랬냐’는 관리자의 말을 마주한다.

 

상담사 보호를 위한 제도나 법이 없는 건 아니다. 콜센터와 연결될 때 먼저 등장하는 “지금 고객님의 전화를 받는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상담원이 폭언이나 욕설로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산업안정보호법에 따라 상담원 보호 조치가 시행중입니다. 상담 내용은 상담사 인권 보호 및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녹음됩니다.” 등의 안내도 그런 보호 조치 중 하나다.

 

산업안전보호법 제41조에 따르면 고객응대노동자 보호를 위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문구를 게시·음성 안내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 ▲고객응대업무 매뉴얼과 건강장해 예방에 관련 교육 실시 등의 예방조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한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조치를 취하게 되어있다.

 

그에 따라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전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치료 및 상담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근로자가 고소,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하는데 필요한 지원도 요청할 수 있다. 사업주는 이런 요구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과 제도가 있다고 해서 콜센터 상담사의 노동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열 명을 새로 채용했다면, 2개월 후에도 그 중 여섯 명이 나가고, 3개월 후에는 나머지 네 사람이 옆자리 친구들이랑 손잡고 단체 퇴사를 하는 곳이 콜센터”라고 저자는 말한다. “콜센터는 이직이 정말 잦은 감정노동의 시장”이라는 점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상담사들이 맞이한 세상은…

 

책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사연들을 읽다 보면 ‘아니, 아직도 이런 고객이 있단 말이야?’ 놀라기도 하고 ‘이걸 상담사 탓으로 돌리면 안되지’ 하며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왜?’라는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왜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이 계속되는 걸까? 하청업체 콜센터 상담사가 아니라, 왜 ‘진짜’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걸까?, 왜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이렇게 화풀이를 하는걸까? 심지어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상담사들이 겪고 있는 “택배 대혼란의 시대” 등을 엿보게 되니 의문은 더 커진다.

 

콜센터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수십 차례나 겪었다. 정부도 세 차례나 콜센터 노동자 코로나 집단감염 예방을 위한 지침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상담사들의 업무 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20 콜센터 상담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5%가 ‘직장이 코로나19 감염 위기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절대 다수인 94.1%가 ‘비좁은 업무공간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동료와의 간격이 1미터 이상으로 늘어난 경우는 27.1% 밖에 되지 않았다.

 



▲ 올해 4월 초 기준, 콜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표한 <코로나19가 콜센터 노동환경에 미친 영향> 자료집 중


그렇다면 재택근무 환경은 어떨까? 예상과 달리 책에 등장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은 재택근무로 인해 ‘멘붕’에 빠진다. 누구는 “하루에 1만 5천원 더 받는 교통비가 사라지는” 사실 때문에, 누구는 “딸이랑 둘이 사는데 집에 컴퓨터는 한 대라 딸이 학교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심지어 재택근무를 위해선 “업무용 소프트웨어와 헤드셋을 각자 알아서 설치”해야 했다.

 

또한 이 재택근무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콜센터 상담사들, 대다수가 여성인 이들의 삶의 처지도 여실히 드러냈다. 혼자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재택근무는 “퇴근 후 시간”이 사라진 노동 환경을 조성했다. 일하는 도중에도 가사 노동을 해야 하고, 육아 등의 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출근을 하면 그나마 일하다 중간에 식사 시간, 휴식 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일에 일이 이어지는 재택근무는 그런 시간조차 가질 수 없게 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이후의 재택근무 환경은 고객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고를 겪거나 직장을 잃은 고객들도 있었다. 이들의 화는 종종 콜센터로 향했고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상담사들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간이 많아진 고객들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화를 낼 준비”또한 되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당장 확인하라는 고객도 당장은 어렵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 별수 없어서 전화를 끊어주었는데”, 이젠 “당장 처리하지 뭘 확인해서 나중에 알려주느냐며 더 크게 항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도 모자라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일반화되면서 콜센터 상담사들은 파견직이 아니라 아예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우디’ 외치는 콜센터 상담사들을 응원하며

 

이렇게만 들으면, ‘역시 콜센터 상담사를 하면 안 되겠어, 너무 힘든 일이야. 그런 일은 피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이야기는 어려움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콜센터 상담사 일이 즐거운 사람도 있고, 적성에 너무 잘 맞아서 탁월한 능력을 뽐내는 사람도 있다.

 

노동 환경도 마찬가지다.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영화에 나오듯 열악한 노동 현실을 견디는 끈끈한 연대”와 “궁중 암투 클리셰처럼 서로 이간질하고 뒷말하고 그런 골치 아픈 관계”의 “중간 어디쯤”이라 표현되는, 여성들이 많은 노동 환경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아우디 타는 상담사들의 모임도 아니고 아우디를 사려고 계를 하는 모임도 아닌. ‘아줌마들의 우정은 디질 때까지’”를 외치는 ‘아우디’ 모임도 있다. 임신, 출산한 동료를 돕고 경험을 나누려는 동료들도 있다.

 

문제는 “동료, 친구끼린 돕지만 회사에선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콜센터 상담사가 기피 직종이 되고 하대받는 직업으로 여겨진다면 그건 콜센터 상담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그저 소모품으로 쓰려고 하는 회사와 사회의 인식 때문이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은 그런 점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콜센터 상담사의 다양한 경험담을 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내가 몰랐던 콜센터 상담사들의 하소연이나 재미있는 ‘썰’을 접하겠구나 라고. 하지만 책에 담긴 건 변화를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콜센터 상담사들의 목소리가 전화기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화기 밖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건 많은 이들의 응원 없인 힘든 일일 테다. (박주연 기자)

 

*일다 기사를 네이버 메인화면에서 보기 https://media.naver.com/press/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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