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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윤가은 <우리집>, 김현정 <나만 없는 집>
어린 시절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떼 한 번 쓴 적 없었고 학습지 한 번 밀린 적 없었다. 조부모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으며 공부도 제법 잘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우리 가족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했는지 반추해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난 그냥 귀염둥이 막내였지 집안일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가족 내 의사결정에서는 항상 빠져있었고 그게 자연스러웠다. 어린이니까.
▲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집>(2019) 중에서 |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어린이
윤가은 감독님의 <우리집>(2019) 속 주인공 하나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계속 문을 두드린다. 반찬을 만들고 식사를 차리는 가사노동에 참여를 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하나의 노력을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한다. ‘네가 부엌일을 왜 해’라며 어린이가 왜 집안일에 참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가족이니까 가족의 일을 하는 것인데 어린이는 때때로 가족에서 배제된다.
이는 사회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배제하는 방식과 똑 닮아있다. 귀엽거나 공부를 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그 외의 모습을 지운다. ‘카페에 있는 어린이’라는 모습 역시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며, ‘감성적인 청소년’은 중2병이 되어버린다.
하나는 굴하지 않고 집안일에 참여한다. 가사노동만 아니라 집안 내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찾아 가족들을 설득한다.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아지자 이전에 바다로 가족여행을 갔던 사진을 바라보며, 사이가 안 좋았던 부모님이 여행을 통해 회복되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제안한다. 먼저 엄마에게 가족여행을 가자고 말을 한다. 하지만 바쁜 엄마는 웬 여행 타령이냐며 무시한다. 술에 취해온 아빠는 지금 가자고 장난을 치고, 그 모습이 보기 싫은 엄마는 아빠와 또 언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토록 쉽게 발생하고 해결은 이토록 어렵다.
하나는 가족 내 문제 해결 방법으로 가족여행을 제시하지만, 가족들은 단순한 어린이의 조름, 떼씀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는 이 제안에 오빠를 참여하게 한다. 처음에는 무시하지만 하나에게 책이 잡힌 오빠는 하는 수 없이 여행 제안 팀에 끼게 된다. 답사를 가야한다며 아빠에게 제안을 한다. 어린이 하나에, 청소년 오빠까지 합류했지만 아빠와 엄마는 끄떡도 없다.
▲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집>(2019) 중에서 |
하나는 동네에서 자매 유미와 유진을 만나게 된다. 유미와 유진의 가족 또한 그들만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 가족의 문제가 부모님의 불화라면, 유미와 유진 가족의 문제는 잦은 이사다. 어느 날 유미와 유진은 부모님도 아닌 집주인에게 이사를 ‘통보’ 받는다. 이미 어른들끼리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가족 의사결정에서 어린이는 항상 배제되고 통보를 받는 식이다. 어른들은 이미 정해놓고, 그나마 나은 경우는 추후에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한다. 설득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의사는 신혼부부 차에 달린 깡통처럼 어른들이 달리는 대로 덜그럭대며 쫓아가야만 한다.
유미와 유진은 이사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와 함께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이사를 막는다.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건물 앞을 정리하고, 방을 보러 손님들이 올 때마다 집에 대한 불평을 하거나 집을 엉망으로 어지른다. 그리고 셋은 함께 상자, 계란판 등으로 종이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과연 그 종이 집에서는 어린이들이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집안일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까.
하나가 처음 동네 골목에서 유미, 유진이네 가족을 마주쳤을 때, 삼촌과 부모님, 유미, 유진이 어디론가 놀러 가는 뒷모습이었다. 다투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밥을 먹자고 겨우 입을 열며 첫 컷을 뗀 하나네 가족과는 비교되어 보였다. 그러나 하나가 보았던 것은 유미 가족의 뒷모습이었다. 이후 영화에 유미, 유진 집의 어른들인 부모님, 삼촌은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으로만 등장한다. 영화는 어른들을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방치를 표현한다. 이를 통해 그들의 무책임함과 어린이를 무시하는 태도가 그대로 담긴다.
가족은 인간이 태어나 가장 처음 만나는 사회다. 여기서부터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를 당한다면, 이 실패의 경험을 가진 어린이는 자라나 어떤 어른이 될까.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또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가 소외당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때 쉽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원하는 참여와 존중은 1년에 한 번 이뤄지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뭐 받고 싶어?’가 아닐 것이다. 세 어린이는 유진, 유미 가족의 이사를 막기 위해 직접 부모님을 만나기 위한 먼 길을 떠난다. 이 여정은, 세 어린이가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여정, 그들은 결국 분열하고 종이 집을 발로 밟기에 이른다.
배는 고프고 날은 어두워지는 그때, 운 좋게 빈 텐트와 음식을 얻게 된다. 그날 밤 이들은 텐트에 몸을 누이고는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 진짜 좋다. 언니 우리 여기서 살까. 근데 우리 뭐 먹고 살아. 아니면 언니가 요리해줄게. 셋 모두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할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뭐 먹고 살 지가 정말 문제다. 어린이에게는 그래서 어른이 필요하고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보살핌의 담보로 의사결정권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의 고독
집에서 어린이는 알게 모르게 소외를 받고 고독을 느낀다. 어른들은 이를 단순히 ‘덜 놀아줘서’로 치부한다. 어린이와 의사결정, 어린이와 가족 구성원으로의 역할, 어린이와 고독 등 어린이 뒤에 붙는 여러 단어에 쉽게 이질감을 느끼고 양립시키지 못한다.
▲ 김현정 감독 영화 <나만 없는 집>(2017) 중에서 |
김현정 감독님의 <나만 없는 집>(2017)의 주인공 세영은 고독하다. 세영은 많은 시간을, 홀로 집에서 보낸다. 홀로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지루한 나머지 언니의 책상을 건드린다. 세영이만, 나만 ‘있는’ 집인데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만 없는 집>이다. 그만큼 어린이의 존재감이 집에서 지워지기 때문이다.
감독은 어린이의, 세영의 고독을 맞벌이 부부의 문제, 현대사회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오롯이 어린이의 고독에 집중한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아빠도 바쁠 텐데, 하며 불가피한 맞벌이 사회를 연민하기보다는 관객 각자 어린 시절의 고독을 떠올릴 수 있다. 어린 시절 나 역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하루는 드라이버로 온 집안의 나사를 풀었다가 다시 조였다. 건전지를 옆집에 던져 버리는 이상한 행동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외로워서 그랬다. 나만 있는, 아니 나만 없는 우리 집은 남들 보기엔 다른 집처럼 가득 차 보였을 것이다.
세영은 걸스카우트에 관한 가정통신문을 받는다. 처음에는 딱히 하고싶진 않지만 친구들이 한다고 하자 세영도 하겠다고 한다. 세영은 걸스카우트가 되고 싶었던 걸까, 어떠한 소속감을 갖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세영의 부모님은 허락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세영의 언니는 걸스카우트임에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 결국 세영은 언니의 단복을 훔쳐 입고 입단식에 참여한다. 단원들과 손을 잡고 빙빙 도는 씬이 세영이가 웃는 유일한 씬이다.
<우리집>과 <나만 없는 집>에는 주인공의 오빠와 언니가 나오는 공통점이 있다. 언니와 오빠는 연애를 시작하고 어린이와 선을 긋는다. 네가 뭘 알겠냐며 가족 문제에 있어서 어린이를 또 한 발 떨어뜨려 놓는다. 하지만 <우리집> 속 오빠도 의사결정을 통보받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하나보다 조금 빨리 통보받을 뿐이다.
두 영화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어린이를 하이 앵글로, 부감으로 잡아 작은 존재 혹은 귀여운 존재로 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영화 속 카메라는 꿋꿋이 아이레벨로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한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아이의 질긴 고독을 응시한다.
▲ 김현정 감독 영화 <나만 없는 집>(2017) 중에서 |
<우리집>에서는 가족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식사가 등장한다. 하나는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요리하지만 아무도 함께 먹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나만 없는 집>에서는 고독의 상징으로 식사가 나온다. 세영은 홀로 반찬 뚜껑을 열어 식사를 한다. 첫 장면에는 엄마와 언니가 등장하지만 식사하는 세영을 한 번 제대로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가족들은 세영의 눈을 보지 않는다. 그러니 고독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마지막 씬, 언니가 세영에게 비빔면 2개를 사 오라며 심부름을 시킨다. 두 개라니. 설렜다. 하지만 엔딩은 세영과 나의 설렘을 무너뜨렸다. 세영은 또다시 홀로 식탁에 앉는다. 앉아 있는다. 그 자리가 영원한 자신의 자리인 것마냥.
우리 집은 ‘우리집’이 될 수 없었다. 우리와 집 사이에는 큰 띄어쓰기가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린이를 말한다. 어린이는 처음 겪는 사회에서부터 이렇게 떨어뜨려지기 일쑤다. 어린이가 그저 어리고 나약하고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집에는, 세계에는 어린이가 있다
2003년생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의 환경운동가로 세계의 기후 위기에 경각심을 울리고 있다. 2018년 그는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위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어린이, 청소년 환경운동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새카맣게 잊은 사람들은 건방지다고 핀잔을 늘어놓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그들은 고개 하나 끄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레타 툰베리의 운동으로 인해 세상은 움직였다. 전 세계가 동맹휴학 운동에 참여했다. 이 시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란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그는 2019년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목되었다.
이 세계에는, 이 사회에는 어린이가 있다. 생각하고 결정하고 주장하고 판단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어린이가 있다. 인형을 갖고 논다고 해서 인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랬듯이. 어린이만 없는 세계는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잊어선 안 된다. 그때의 고귀한 능력과 외면받았던 고독을. 그것이 어른의 책임이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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