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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감독 3인 인터뷰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결성된 불꽃페미액션(약칭 불펨)은 ‘과격한’ 액션으로 알려져 있다. 천하제일겨털대회(2016)와 찌찌해방 퍼포먼스(2018)에 이어 총선에도 출사표(2020)를 던지는 등 다방면에서 ‘남다른’ 액션을 펼쳐왔다. 또한 불펨은 꾸준한 액션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불펨 단톡방엔 80여명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액션 아이디어에 화답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Free Our Bodies: Flaming Feminist Action, 2021) 스틸. (제공: 불꽃페미액션) |
지치지 않는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이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여성의 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로, 가슴해방 시위를 다룬 「찌찌친구들」,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인 타투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My body, My choice tattoo」, 여성 청년 정치인들의 솔직한 경험담을 담은 「300」, 이렇게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돼있다.
영화는 불꽃페미액션 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하고 유쾌했다. 각각의 작품을 연출한 류현아, 윤가현, 이가현 감독을 만나 영화에 얽힌 이야기와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상영 소감을 들어보았다.
Q. 불꽃페미액션이 워낙 다양한 액션을 하는 건 알지만, 영화까지 만드는 줄 몰랐어요. 옴니버스 형식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펼쳐지죠. 불펨의 가슴해방운동이 시작된 월경페스티벌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찌찌친구들」(류현아 감독)을 보니까 괜히 뿌듯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류현아: 제가 궁금해서였어요. 저도 물론 불펨 활동가이긴 하지만, 뭐랄까요. 이가현 감독은 막 뭘 하자고 제안하는 편인데 전 그럴 때마다 ‘와, 멋있다.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인생 어차피 짧은데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뭐.’ 이런 편이라, 이걸 왜 하는지 정말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겠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게 이렇게 욕먹을 일인지도 너무 모르겠고!
그래서 가슴해방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참여했는지 묻고 싶었어요. 그걸 통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역으로 탐구하고 싶었고요.
Q. 「찌찌친구들」 배경이 겨울이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패딩 입고 다니는데 이 추위에?!’ 싶었거든요.(웃음)
이가현: 남자들이 겨울에 옷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웃음) 근데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되게 추울 것 같잖아요? 근데 안 추워요. 땀이 나야 열이 증발되면서 추운데, 땀구멍이 안 열려요.(웃음)
류현아: 맞아요. 생각보다 안 춥더라고요. 막상 벗고 있으면 ‘아, 바람 괜찮네’ 이러면서…(웃음)
▲ 다큐멘터리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을 만든 이가현, 윤가현, 류현아 감독. 세 사람과의 이야기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일다 |
Q. 불펨 활동가들이 1인 시위처럼 가슴을 드러낸 채 피켓 든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장소도 여러 군데였고요.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제지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류현아: 국립현대미술관이랑 그 옆에 있는 문화유적 같은 곳에서도 촬영했고요. 홍대 거리에서도 찍고.
윤가현: 별일은 없었는데,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또 계절이 달랐다면 다른 반응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밖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 그랬으면 달랐을 수도 있죠. 근데 추운 겨울이어서.
이가현: 제지를 당하긴 했어요. 가슴을 드러낸 걸로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촬영을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류현아: 맞아요, 여기서 촬영하면 안된다고. ‘여기서만 안 찍으면 된다, 제발 딴 데 가라’는 마음이었을까요?(웃음)
Q.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가슴해방시위를 했을 때처럼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군요? (※불꽃페미액션은 여성의 가슴을 저항의 의미로 드러낸 사진을 음란물로 삭제한 페이스북의 태도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가슴해방액션을 벌였다. 이날 언론들은 카메라 세례를 퍼부었고, 경찰들은 활동가들의 상체를 이불로 가리는 등 헤프닝을 벌였다.)
류현아: 홍대 거리 걸을 때 전 속으로 좀 안달이 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냥 막 지나가더라고요? 요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가 심하잖아요. 만약에 가슴 안 까고 그냥 페미니즘 관련 문구를 쓴 피켓을 들고 있었으면 시비 거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저렇게 벗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웃음)
▲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스틸컷 (제공: 불꽃페미액션) |
Q. 영화에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특히 가슴을 ‘깐’ 여성 둘이서 농구하는 장면은 너무 멋있었어요.
이가현: (농구 씬을 찍은) 수영님 나오는 부분에 정말 웃음 포인트가 많거든요. 자기 머리 빡빡 밀었다고 페미니스트인 거 알아보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 장면도 너무 재미있고. 근데 관객 분들은 그런 장면들도 되게 진지하게 보시더라고요.
윤가현: 관객들이 여성의 가슴이 화면에 또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사실 우리도 살면서 여성의 가슴을 정면으로 계속 볼 일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봐도 몰래보고 그러니까. 영화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본다는 것에 대해 어떤 불편함과 두려움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가현: 그 농구 장면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가슴이 흔들리잖아요. 제 최애 장면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가슴이 흔들린다’고 하면 어떤 야한 장면들을 상상할텐데, 실제로 가슴이 흔들린다는 건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너무 좋아요. 그것도 겨울에 찍은 건데 목폴라 입고 있다가 그거 벗고 가슴 까고 막.(웃음)
Q. 가슴해방운동이 사실 참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거 같거든요. 온라인에서 악플도 엄청 많이 달렸잖아요.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분위기에 취해서 하는 거에요.(다같이 웃음) 다른 불펨 활동가들이 까면, 나도 까야지 이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재미있어 보이잖아요. 너무 신나게 하는데 나도 빠질 수 없지!
류현아: 그리고 한번 그 맛을 보면(웃음) 그 다음부턴 구체적인 목표랄까, 계획이 생겨요. ‘아, 농구하면서 까고 싶다’라던가, ‘바닷바람 맞으면서 까고 싶다’, ‘가슴 까고 춤추고 싶다’ 이렇게요. 악플을 보고서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곤 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 전 누군가 나에게 왜 가슴을 까는지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그 답을 찾는 게 중요했고,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든 거죠.
▲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스틸컷 (제공: 불꽃페미액션) |
Q. 이어진 영화 「My body, My choice tattoo」(윤가현 감독)에선 타투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성이 자신의 몸에 타투를 새기는 것에 대한 반감이나 불편함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타투하고 엄마한테 숨기려고 하는 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싶기도 했고요.(웃음)
윤가현: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타투를 받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물론 이유가 될 순 있지만, 전 영화에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실제로 인터뷰를 해 보니 어떤 의미를 새기고 싶어서 한 사람도 있지만 타투 도안이 예뻐서 받는 경우도 있고, 이걸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그 작업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저는 타투하기 전에 미리 엄마한테 얘기했거든요. 그 때 엄마는 ‘요즘 애들 많이 하더라. 너도 해봐라’ 하시더라고요. 근데 엄마는 제가 하나만 할 줄 알았던 거죠. 이렇게 많이 할 줄 몰랐던 거지.(웃음)
류현아: 타투 처음 받을 때, 웨딩드레스 입을 때 보이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많은 부모님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것들이죠. 그래서 타투 받을 때 ‘이게 내 몸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의외로 찌찌 깔 땐 그런 생각 별로 안 했는데.
윤가현: 전 오히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내 몸이 완벽히 내 몸이기는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사회 안에서의 내 위치와 어떤 인간 관계 사이에 놓인 내 몸도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세 번째 이야기인 「300」(이가현 감독)이 여성청년 정치인에 관한 것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몸이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갔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도 생각나더라고요.
이가현: 2020년 (서울 동대문갑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 나갔을 때, 이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제대로 못했거든요. 아쉬웠는데, 이번 영상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을 때 여성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죠.
처음엔 ‘여성의 몸은 무엇일까’를 묻는 이 프로젝트에 잘 맞을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여성정치인들의 TPO(때와 장소, 경우에 따른 태도와 복장 등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진행하려고 했더니 외향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는 걸로 했죠. 진보당(당시 민중당) 손솔 씨가 2020년에 비례대표로 출마했을 때 명함 사진을 두 가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등은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 특히 정치에 진출하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거나 꿈꾸는 여성청년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어요. 먼저 경험한 이들의 고민을 미리 접하고, 대비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 영화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스틸컷 (제공: 불꽃페미액션) |
Q.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은 여성영화제에서 두 번 상영되었죠? 아직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못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을 좀 접했나요?
윤가현: 전 극장에서 관객들이 여성의 가슴을 마주했을 때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그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가현: SNS에 올라온 영화 감상 후기를 보니까 ‘이게 래디컬이지!’ 이런 반응도 있고요, 영화의 흐름이 좋았다는 평도 있고, 자부심이 차오른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제 친구는 ‘페미니스트 정권 창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무슨 계획부터 세우면 되냐, 나는 뭐하면 되냐’고 묻더라고요.(웃음)
Q. 앞으로 또 불펨이 어떤 액션을 할지 기대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거세지는 상황을 보면, 불꽃페미액션의 활동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가현: 이런 때일수록 우린 즐거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일단 영화를 전파하는데 주력할 거고요.(웃음)
류현아: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같은 운동들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스티벌 같은 것도 하고, 재미있게 (페미니스트인) 나를 밝힐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은 그런 외부 활동을 하긴 어려운 시기지만요.
윤가현: 이번처럼 영화로 만들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은 액션 같아요. 영화 찍을 땐 힘들어서 그런 생각 못 했었는데.(웃음)
이가현: 한 1년 정도는 불펨에서 직접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공동체 상영 등을 할 예정이에요. 이후 배급사를 구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공동체 상영을 원하시는 분들은 불꽃페미액션 이메일(violetfeminist@gmail.com)로 문의 주세요.
윤가현: 각 지역의 여성영화제에서도 많이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다음 날, 불꽃페미액션의 지난 4년 역사가 담긴 윤가현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바운더리>가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되었다. 누가 뭐래도, 언제나 ‘즐거움’을 잊지 않으려는 유쾌한 페미니스트들이 벌이는 몸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 같다. (박주연 기자) ildaro.com
*일다의 책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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