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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만드는법 조혜인 변호사에게 듣다(중)
한국 사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이 법을 살펴보기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 조혜인 변호사를 만났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활동하는 조 변호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이 법의 주요 내용과 쟁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인터뷰 1편: “성차별 다루는 법학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주장하는 이유” https://ildaro.com/9054
Q. 차별금지법안을 좀더 살펴볼게요. 성별, 나이, 장애, 병력, 성적지향 등 23개의 ‘차별 사유’를 적시하고 있고요. 3조에 보면 ‘차별의 범위’가 나와있는데 직접차별과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복합차별, 차별광고입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이 시행되었고, 성희롱 관련 법안도 이미 있잖아요. 차별금지법에 ‘괴롭힘’과 ‘성희롱’이 포함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근로기준법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죠. 물론 차별금지의 사유에 따른 괴롭힘도 당연히 적용이 되어야 하는 규정이고요.
다만, 차별금지 사유를 이유로 한 괴롭힘은 특수한 성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괴롭힘과 달리, 기존의 차별적인 구조가 반영되어 직장에서도 차별적인 괴롭힘이 행해지는 거니까요. 우리 사회에 성차별 문화와 인식과 관행이 있기 때문에, 일터에서도 그런 성차별적인 괴롭힘이 행해지는 것처럼요.
▲ 공익변호사그룹 희망을만드는법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기원하며 제작한 2021년 연하장. |
-‘차별에 따른 괴롭힘’ 규명해야 예방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차별적인 구조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성차별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없으면 이게 왜 괴롭힘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이걸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보고요. 더불어 차별적인 괴롭힘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행해지는지, 어떤 사유에 의해서 그런 괴롭힘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배경에는 어떤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것을 시정해 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설명할 수 있는 법이 같이 있어야 하죠.
직장 외에도, 교육 영역이나 재화‧용역에서도 괴롭힘이 일어나잖아요. 특히 학교에서도 많고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그걸 통해 교육기관에서도 이런 차별과 괴롭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해 주는 거죠.”
-성희롱 적용 범위 넓힌다
“성희롱의 경우를 볼까요. 지금 현행법상 성희롱은 다 고용 영역의 문제(직장 내 성희롱)예요. 하지만 성희롱이 고용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차별금지 범위에 성희롱이 포함된다는 건, 성희롱의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는 거죠. 심지어 고용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남녀고용평등법은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근로자’를 정의하거든요. 차별금지법은 근로자의 범위를 더 넓게 보기 때문에, 근로 계약이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근로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비정형노동자까지도 차별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요.
또한 아직까지 남녀고용평등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 관련 법에,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 등의 문구를 넣고 있잖아요. 지금 발의된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시안엔 그런 문구가 다 빠졌어요. 피해자의 감정이 어떤 요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 5월 18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간담회에서 조혜인 변호사가 “사례로 보는 차별금지법의 내용과 쟁점”을 발표하는 모습. ©일다 |
-성희롱도, 괴롭힘도 ‘차별’이라는 인식 필요해
“덧붙여서 저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성희롱이 사실 성차별에 해당한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그리고 성희롱. 이 모든 게 차별’이라고 말이죠. 어떤 사람에게 성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차별하지 마라. 당신이 그런 식의 성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상대가 직장, 학교 및 여러 시설을 당신과 동등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문제제기 할 수 있죠.
한편으로 그런 차별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별 행위와 달리, ‘괴롭힘’이나 ‘성희롱’은 어떤 가해자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개인의 일탈 등으로 생각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이 괴롭힘과 성희롱이 차별적인 구조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Q. 차별금지법안에서 규정한 차별의 범위 중 우리에게 좀 낯선 개념이 ‘간접차별’인데요.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사실 저에게도 간접차별은 어려운 개념이에요.(웃음) 발의된 법안에서 직접차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등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라고 나와있죠. 사람들이 가장 쉽게 생각하는 차별이 직접차별일 거예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날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직접차별에 해당하죠.
그럼 간접차별은 뭔가 싶을 텐데요. ‘성별 등에 관하여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에 따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 경우’거든요.”
-겉으로는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간접차별’ 짚어내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간접차별이라고 규정한 사례를 예로 들어볼게요. 어떤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공고에 채용기준으로 ‘토익 600점’이 있었습니다. (차별적인 기준이 아니라) 중립적인 기준인 것처럼 보이죠. 근데 중증의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걸 차별이라고 진정을 넣은 거예요. ‘나는 토익 듣기평가를 전부 풀 수 없기 때문에, 600점이라는 기준이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건 간접적인 차별이다’라고요. 국가인권위도 이에 대해서, 이런 기준은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중증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장애를 이유를 한 간접차별이 맞다고 결정을 내렸어요.
사실 간접차별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간접차별을 짚어내는 게 현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제 왠만한 사람들은 직접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계속 싸워야 하지만요. 그에 반해 간접차별은, 행위자가 차별인지 모르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토익 600점의 기준도, 장애인을 차별할 의도로 만든 건 아니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차별이 일어난 이유는, 사회 자체가 이미 차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는 사람 중에 중증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노동자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굉장히 편향적이고, 차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간접차별을 잘 짚어내고, 문제제기 하고, 그걸 고쳐 나가는 게 현대 사회의 차별을 없애 나가는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성차별과 관련해서도 예를 들어보면, 여성이 집중되어 있는 직종의 정년을 더 낮게 잡는 걸 간접차별이라고 볼 수 있죠. 모든 사람이 일률적으로 다 야근을 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고 했을 때, 돌봄을 주로 수행하는 여성들이 그 지침에 따르질 못해서 불리한 대우를 받거나 퇴직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도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로 볼 수 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권인숙 의원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로 5월 3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된 <21대 국회 1년, 차별금지‧평등법 조속한 제정 촉구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Q. 그럼,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간접차별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나요?
“간접차별 개념이 법에 들어온 지는 꽤 되었어요.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적용해서 ‘이게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었죠. 법원이 간접차별 개념 자체를 잘 이해를 못하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다른 한편으론 남녀고용평등법상 간접차별의 요건 자체가 너무 엄격하게 되어 있다는 문제도 있어요.
‘사업주가 채용조건이나 근로조건은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한 성(性)에 비하여 현저히 적고 그에 따라 특정 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그 조건이 정당한 것임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현저히’ 한쪽 성별의 수가 적지 않아도, 다른 이유로 간접차별이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현저히 적음’이라는 기준이 있는 국가는 한국 외에 거의 없어요.
간접차별이 남녀고용평등법에 들어간 게 고용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는데, 저런 조건 때문에 지금까지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고, 법원도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만 취해 왔죠.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간접차별이 들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몇 개의 판례만 나온 상황입니다.”
-‘간접차별’에 대한 법원의 협소한 인식도 변화할 것 기대
“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법원의 인식 변화를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개별법만 있을 땐 법원이 이런 차별을 어떤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남녀고용평등법도 그렇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경우도 차별에 대한 굉장히 강력한 조항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 기간 법원이 그런 내용들을 굉장히 낯설어 하면서 적용을 잘 안 했거든요.
때문에 이런 차별이 ‘일부에 적용되는 특수한 법률이나 법리’가 아니라, ‘일반적인 법리’라는 인식을 법원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차별금지법은 모든 차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런 판단 기준들이 있으며. 법원이 여기에 대해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를 규정해 놓은 법이기 때문에, 법원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면이 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의 변화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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