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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용접사 변주현 씨 이야기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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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지난 3월 19일, 현대중공업에서는 여러 가지 분쟁이 표출되었다. 먼저,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난항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4시간 부분 파업을 했다. 파업하기 바로 직전에는, 검찰과 고용노동부가 현대중공업의 잇따른 작업장 중대재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 울산 본사를 압수 수색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난제가 있었는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소속 해고노동자 4명이 직원기숙사 건물 ‘율전재’ 15층 옥상으로 올라간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인 ㈜서진ENG의 용접사들이다.

▲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의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서진ENG 소속 용접사 네 명이 현대중공업 직원기숙사 건물 15층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 중 한 명은 20대 여성 용접사 변주현 씨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제공

그들 중 한 명은 서진에서 유일한 여성 용접사 변주현 씨였다. 주현 씨는 고공농성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다른 이가 고생하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는 자신이 고생하는 게 낫다며 자원했다. 현대중공업 소유의 건물이고, 경영진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올랐던 곳이 기숙사 건물이었다.

 

올라가는 건 성공했지만, 곧바로 중공업 경비대와 경찰과 소방대의 신속한 합동작전에 농성물품을 다 뺏기고 맨몸으로 옥상에서 거센 바람을 맞아야 했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마냥 지켜볼 수가 없어서 고공농성자들을 내려오라고 설득했다. 변주현 씨는 농성을 사수하지 못하고 현대중공업과 협상 자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분하고 속상해 눈물을 훔쳤다.

 

다들 여자애가 금방 그만둘 줄 알았겠지만…

 

변주현 씨는 어쩌다 현대중공업 직원기숙사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게 된 것일까? 20대 용접사인 그의 노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진은 굴착기의 팔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깨부터 팔꿈치까지는 붐(BOOM)대 라고 하고, 팔꿈치부터 손목까지는 암(ARM)대 라고 하는데 저는 암대 안쪽에 CO2용접을 해요.”

 

▲ 변주현 씨는 현대건설기계의 사내하청업체인 서진ENG에 입사해 용접 일을 했는데, 사측이 노조와의 단체교섭 중에 돌연 ‘폐업’을 해버려 일자리를 잃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제공

 

젊은 여자가 남자들밖에 없는 건설장비생산 공장에 입사하고 가장 많이 접한 건 ‘여기 왜 왔나?’라는 시선이었다. 주현 씨의 대답은 한결같이 ‘먹고 살려고, 돈 벌러 왔다’였다. 그럴 때면 나이든 남성 노동자들은 ‘아가씨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주현 씨가 듣고 싶은 칭찬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남자 동료들은 주현 씨에게 무심했다.

 

“여자애가 금방 그만둘 줄 알았나 봐요. 대화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남자들끼리는 군대 이야기가 제일 쉬우니까, 대화가 더 잘되고, 빨리 친해지겠죠. 자기들끼리 게임을 즐겼는데, 나도 저 형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게임을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주현 씨의 기억에는 여자들만 모인 공간이 더 편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제가 스무 살에 네일샵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주현 씨의 첫 사회생활은 네일샵에서 시작했다. 막내라고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고, 먹고 싶지 않은 음식 앞에서 “네가 안 먹으면 우리가 마치 너를 왕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직장 상사의 말에 억지로 먹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설거지하고 “온갖 시다는 내가 다 했어요.”

 

최저임금이 뭔지 몰랐던 사회초년생

 

주현 씨는 고등학교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갈 생각도 안 들었고, 돈을 벌고 싶었어요.” 취업을 알선해주는 선생님이 영상디자인 쪽으로 여기저기 소개를 해주었지만, 매번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단백질보충제 판매하는 곳에서 인터넷 관리하는 일을 소개해주고, 졸업앨범 제작하는 곳, 그래픽 만드는 게임회사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다 안됐어요.”

 

몇 번의 고배를 마시고 한 애니매이션 회사로 입사했다. 일본애니매이션 외주 하청을 받아서 만화의 선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저더러 임금이 얼마더냐고 묻길래 시급 3,800원이에요. 하고 알려드렸더니 아버지가 최저임금도 안 주는 회사를 다닌다고 노발대발하신 거에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초년생 주현 씨에게 최저임금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학교에서 소개시켜 주는 곳을 찾아서 취업을 했을 뿐인데, 아버지가 선생님께 항의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여기서도 잘려, 저기서도 잘려, 이상하게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는 거에요. 파리바게트에도 입사원서를 넣었는데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집 앞에 자주 가는 토스트가게의 주인이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주현 씨를 위로하고 걱정해주더니 네일샵 대표를 소개해줬다. “저는 손으로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해서 배우면서 일했어요. 손톱에 색깔을 입히고 가꾸는 건 좋은데, 몇 시간 동안 손님을 접대하고 앉아서 하는 일은 힘들었어요.”

 

그때는 별난 직장 상사를 만나서 힘든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게 주현 씨에게 맞지 않았다고 한다. 기본급은 60만 원을 받고 뷰티 상품을 팔아야 인센티브가 생겨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비위를 맞추는 것도, 주현 씨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영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월급은 80-100만원을 받았고, 많이 받을 때 120만 원이었다.

 

직장 상사에게 시달림을 당하면서 네일샵에서 2년을 참고 일한 경험은 ‘어딜 가도 이보다 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갖게 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돈 벌러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돈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찾아서 구인광고를 보고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남자만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도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요. 배우겠다고, 다니겠다고 했더니 받아주는 곳이 있더라구요.”

 

분명 꿈에서 들었거든요, “용접하는 아가씨”라고…

 

“원래는 현대자동차로 가고 싶어서 일자리를 찾았어요. 핸들을 작업하는 공장인데 분명히 남녀고용한다길래 전화를 했더니 ‘적어놓으라고 해서 적어놓은 거지 여자는 안 구한다.’는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거 고용차별이잖아요?”

 

그다음 찾은 곳이 현대중공업 특수선(군함)을 제작하는 사내하청업체였다. “전기배선반인데, 전기선을 예쁘게 꼬아서 정리하는 일이었어요.” 입사할 당시 주현 씨 나이 22살이었고, 3년 동안 최저임금만 받고 일했지만 잔업과 특근을 빠지지 않고 하면서 돈을 벌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한 1년 정도 쉬었어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복잡미묘한 주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 삶을 찾아가는 방황을 시작했다. 우울한 날이 길었지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찾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꿨다.

 

“중공업 옷을 입은 사람들이 화이바(안전모)를 딱 쓰고 우리집으로 올라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를 가리키면서 ‘이 아가씨 용접하는 아가씨야. 아가씨가 대견해’ 하는 거에요.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분명 꿈에서 그랬거든요.”

 

누가 믿어줄 거 같지 않은 꿈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줬더니 아버지는 여자용접사가 있다면서 딸의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다. 주현 씨는 곧바로 국비로 지원하는 직업훈련원에서 용접기능을 배웠다. 교육을 이수할 때쯤 선생님의 소개로 2019년 2월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 ㈜서진ENG에 입사했다.

 

“학원에서는 알곤용접을 배웠는데, 자리가 없어서 현장에서 CO2용접을 배우면서 일했어요. 현대중공업에서 일해보니까 나는 기술을 가지고 몸을 막 움직이면서 뭔가 하는 게 잘 맞더라구요. 특히 용접이 잘 맞아요.”

 

▲ 변주현 씨는 용접일을 하게되어 좋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에 의문을 가졌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야 불법 파견 문제를 알게 되었다.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김경학 제공


용접사들이 왜 최저임금만 받지?

 

사실 처음 용접을 시작할 때는 돈을 많이 벌 거란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공장의 현실은 최저임금 수준. 생각만큼 벌이가 되지 못했고, 현대중공업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은 점점 커졌다.

 

특수선에 있을 때도, 건설장비를 제작하는 서진에서 일을 할 때도, 동료들에게 월급이 얼마냐고 물어보면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고 월급명세서를 돌려보는 법도 없었다.

 

“사람들이 저더러 시급 얼마 받느냐고 물으면 저는 큰소리로 팔천오백얼마 받는다고 대답했어요.(2020년 최저시급 8,590원)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아도 저는 제 임금을 공개했죠. 어느 날 제 시급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거예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야 수년 동안 서진에서 용접을 해왔던 선배 노동자들이 신입사원인 주현 씨와 시급이 같거나,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이거나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노동조합 가입하고 나서 우리가 반발을 해서 시급을 10원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반장이 다니면서 월급인상분 명세서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그때 동료들의 임금을 눈으로 직접 본 거에요. 저보다 2년 먼저 들어와서 일한 형이 (시급이) 나랑 똑같았나? 작았나? 그랬어요. 기술시험도 치고, 자격증도 따고, 기능대회에서 금메달도 딴 형인데, 여기 들어와서는 몇 백원도 차이가 안 나고. 그거 보고 충격을 받은 거에요.”

 

2019년 6월에 서진에서 일하는 노동자 30명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로 집단가입을 한다. 주현 씨도 함께였다. 입사 3개월만의 일이다.

 

“노동조합은 뭔지 잘 몰랐지만, 최저임금만 받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코로나 이유로 ‘폐업’해버린 회사…불법파견 인정

 

굴착기 등 건설장비를 생산 판매하는 현대건설기계는 원래는 현대중공업의 건설장비사업부였다. 2017년, 현대중공업은 건설기계를 계열사(자회사)로 분리시키는 물적 분할을 했지만, 여전히 주식을 다 보유하고 계열사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현대건설기계에는 또 3개의 사내하청이 있었는데, 주현 씨가 일한 ㈜서진ENG이 그 중 하나였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야 현대건설기계가 파견법을 위반(불법파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설기계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로서 당연히 받았어야 할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복지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기업이 사내하청을 두는 꼼수를 부려, 노동력을 반값으로 쓰며 노동자들을 공공연히 착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조합과 서진은 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관련하여 아홉 차례나 단체교섭을 했지만, 성과는 현장에 구급약을 비치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노동조합은 2020년 2월에 쟁의권을 확보해서 5월에 파업권을 행사했다. 서진은 7월 24일 단체교섭을 하던 중에 코로나를 이유로 대면서 ‘폐업’을 통보했다. 한달 후 변주현 씨와 동료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현대건설기계에 공정이 세 개가 있어요. 하청업체도 세 개인데,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로 폐업을 한다지만, 저희 서진만 폐업하고 다른 두 개 업체는 다 하고 있었죠. 우리가 하던 일을 외주업체로 빼돌렸어요. 그걸로는 생산물량을 못 맞추니까 현대중공업의 정규직들이 인사이동을 해서 건설기계로 옮겨온 거예요. 우리가 하던 일을 하더라구요.”

 

▲ “평생 용접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변주현 씨는 현대건설기계에 직접고용되어 출근하는 날이 오기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김경학 제공


서진이 폐업하자, 노동자들은 날마다 얼굴을 보고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노동조합은 서진이 노조를 깰 목적으로 폐업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건설기계가 불법 파견을 해왔다는 정황도 파악해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위장폐업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지만, 파견법 위반 혐의는 인정을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현대건설기계를 향해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응하지 않자 올해 3월 8일, 고용노동부는 ㈜서진ENG 노동자 46명에 대해서 현대건설기계가 직접고용하라고 지시했고,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4억6천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현대건설기계 측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정문으로, 사원증 찍고 출근하는 꿈을 꾼다

 

변주현 씨는 지금은 비록 해고자 신분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현대중공업의 정문으로 사원증을 찍고 당당하게 출근하는 날이 올 거라고 꿈 꾼다. 저임금 문제에서 출발해서 불법 파견을 밝혀내고 현대건설기계의 노동자임을 입증받은 것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함께 싸워서 만들어낸 성과인 만큼, 앞으로의 꿈도 투쟁해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주현 씨는 잘 알고 있다.

 

“금속노조에서 (장기투쟁기금) 생계비 지원이 12월까지인데, 그 이후로 알바를 해야 하나,,, 투쟁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러나 주현 씨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하나뿐이다. “용접이 저한테 맞더라구요. 평생 용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투쟁도 멈출 수가 없다.

 

[필자 소개: 시야. 노동자 편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 와 <회사가 사라졌다>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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