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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릴레이 토크쇼를 시작하며
적극적 합의를 하려면 어떤 점들을 유의해야 할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적극적 합의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합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말 또는 행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내 느낌과 생각만으로 상대의 의사를 섣불리 추측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집에 초대하는 것은 나와 섹스하고 싶다는 유혹인가? 앞서 나가지 말자. 상대는 말 그대로 나를 집에 초대했을 뿐이다. 만약 상대가 나에게 “섹스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섹스할지 말지 서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 합의는 “의식이 있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누군가가 잠들었거나 술이나 약물에 취해있다면 성적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을 잃은 상태뿐 아니라, 부르면 대답은 하는데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말은 곧잘 하지만 제 뜻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이런 상태일 때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려는 사람은 날강도나 사기꾼밖에 없을 것이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성적 동의를 받으려고 물어보지도 말아야 하며, 그냥 성적 행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적극적 합의는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당사자는 자신이 동의한 성적 행위가 어떤 성격인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 자신 또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서로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다른 선택도 가능한지 등을 충분히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넷째, 적극적 합의는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당사자는 서로 동등한 관계여야 하며, 성적 행위와 관련된 대화를 대등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한쪽이 콘돔을 사용해달라고 요구했는데 다른 쪽이 못 들은 척하면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발언권과 결정권에 차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완벽하게 평등한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힘 또는 권력이 더 큰 사람은 상대의 언어적‧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훨씬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합의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것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 또는 권력 차이가 명백한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성적 동의를 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직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을 때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심지어는 더 큰 위험에 처하거나 보복성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
권력자는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순수하게 동의를 구한 것뿐이고 상대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약자로서는 권력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이미 부담이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라면 애초부터 성적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 상호 성적 행위를 해야 할 때, 지켜야 할 원칙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작) |
마지막으로, 적극적 합의는 “모든 과정에서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평소 성적 행위를 함께하는 연인 또는 부부 관계라는 이유로 섣불리 합의 과정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어제는 성적 행위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하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가 키스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당연히 섹스도 동의할 것이라고 넘겨짚어서도 안 된다. 상대는 키스는 좋은데 섹스는 싫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섹스하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은 섹스할 때 상대가 원하지 않는 체위를 하거나, 청결하지 않은 손으로 성기를 만지거나, 피임을 하지 않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 모든 당사자는 언제든지 성적 동의를 취소, 철회,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서로 합의하고 성적 행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누군가 도중에 그만하길 원하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처음에 동의했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욕구를 채워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아까 합의했잖아”라고 억지로 성적 행위를 이어갈 권리는 없다.
기사 전체보기: 성적 행위에서 YES or NO를 넘어 ‘적극적 합의’로! - 일다 - https://www.ildaro.com/9050
올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라는 주제로 릴레이 토크쇼를 연다. 사람들은 적극적 합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다양한 성적 주체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적극적 합의와 연결할 수 있을까? 적극적 합의는 각자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을까?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며 ‘적극적 합의’를 찾아가는 이정표를 세우고자 한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릴레이 토크쇼는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21년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각각 다른 주제로 6월부터 9월까지 총 3회 진행될 예정이며, 참여 신청은 매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sisters.or.kr)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첫 토크쇼 <관계 편>은 6월 3일(목) 저녁 7시 30분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튜브(youtube.com/user/ksvrc91)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 문의 02-338-2890, f.culture@sister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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