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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지방법원 위헌 판결 의의를 짚는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지난 3월 17일 삿포로지방법원은 동성 커플에게 결혼의 법적 효과가 미치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과 삿포로지방법원 판결의 의의에 대해, 규슈 소송 변호인단 모리 아이(森あい) 변호사의 기고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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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 소송이 아니라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삿포로지방법원에서 동성 간의 혼인을 인정하는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민법 및 호적법의 혼인에 관한 규정은 법 아래의 평등에 반한다는 판결을 냈다. 입법부작위(입법자가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을 하지 않은 것)의 위법성까지는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되었지만, ‘헌법 위반’ 판결을 쟁취한 실질적 승소다.


2019년 2월 삿포로, 도쿄, 나고야, 오사카 각 지방법원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후쿠오카에서도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라는 이름의 소송이 시작되었다. 삿포로 판결은 일본 첫 동성혼 소송의 첫 판결이다.

 

▲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Marrige for All) 사이트 메인 화면 이미지 중에서. marriageforall.jp

 

우리가 동성혼 소송과 관련해 굳이 외우기 어려운 명칭(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Marriage for All)을 쓰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동성혼이라는, 특별한 혼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당사자들이 설령 동성 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과 상대의 법률상 성별이 같으면 혼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성혼이라고 통칭해버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셋째, ‘모든 사람에게’라는 말이 요구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쌍방이 원하면 결혼을 할 수 있고 결혼을 원하지 않으면 강제하지 않는다는 ‘결혼의 자유’이다.

 

이 글에서 ‘동성 커플’과 ‘동성혼’이라고 쓰는 말은 법률상 성별이 같은 커플과 그 혼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헌법 ‘혼인의 자유’는 동성혼을 금지하지 않는다

 

각 지역에서 제기한 다섯 개 소송의 주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일본 헌법 24조 1항이 정하는 ‘혼인의 자유’가 법률상 동성 커플에게도 보장되어야 하며, 동성혼이 불가능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혼인은, 양성의 합의에 기반해서만 성립한다”는 헌법 조항에서 동성혼은 헌법상 금지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조항은 전쟁 전, 호주 등의 동의가 없으면 혼인할 수 없는 이에제도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이 무시되고 특히 여성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던 상황에서, 어디까지나 당사자 둘의 합의에 기초할 때만 혼인할 수 있다고 하여 이에제도와 결별하고, 개인의 존엄과 성평등을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성인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 혼인하는 것은 헌법 24조 1항의 취지에 전혀 반하지 않는다. 또한, 제정 당시 동성혼을 염두에 두고 이 조항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므로, 이 조항은 동성혼을 금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헌법 24조 1항을 동성혼 ‘금지’ 규정이라고 풀이하는 헌법학자는 현재 거의 찾기 어렵다. 국가도, 국회도, 소송에서도 “헌법은 동성혼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상정하지 않고 있다”의 의미가 금지냐 아니냐를 물어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라고만 말할 뿐 “금지”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당연히 삿포로 판결에서도 헌법 24조 1항은 이성혼에 관한 규정으로 보고 동성혼을 보장하는 규정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 조항이 동성혼 금지의 규정이라는 견해는 취하지 않는다.

 

▲ 2015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Tokyo Rainbow Pride 2015) 포스터(우측, TRP 공식 트위터)와, 무대 위에서 진행된 레즈비언 커플 결혼식(좌) (사진: 퀴어문화축제 홍보팀 제공)


우리의 주장에서 또 한 가지 핵심은, 헌법 13조 1항이 정하는 헌법 하의 ‘평등 위반’이다. 이성 커플이 혼인할 수 있고 동성 커플이 혼인할 수 없는 것은 ‘합리적인 구별’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 13조 1항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삿포로 판결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혼인에 의해 발생하는 법적 효과의 일부에조차도 이를 향유할 법적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결여된 차별 대우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헌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이 판결의 범위를 ‘혼인에 의해 발생되는 법적 효과의 일부를 부여하기만 하면 헌법 14조 1항 위반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라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성애와 동성애의 차이는 ‘성적 지향의 차이뿐’이라고 하였고 ‘실로 어쩔 수 없는 구별 대우인가’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삿포로 판결로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는 사실 깨달아

 

일본에서도 어떤 제도를 바꿀 때 아직도 “우선은 사회의 이해를 키워야 한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성혼에 대한 찬성 여론은 이미 절반을 넘었고, 매년 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의 전국 조사(가와구치 가즈야 외, 2020 『성소수자에 대한 의식: 2019년 전국조사보고회 배포자료』 JSPS과연 18H03652)에서 2015년 동성혼에 찬성이 51.2%, 반대가 41.3%로 찬성이 절반을 넘었고, 2019년에는 찬성이 13.6% 늘어 64.8%가 되고, 반대는 30.0%까지 줄었다. 소수자의 권리 보장이 다수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사회의 이해’라는 면에서도 때는 이미 무르익었다.

 

▲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Marrige for All) 사이트에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삿포로지방법원 판결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축하와 지지의 메시지를 게재하고 있다. marriageforall.jp


하지만, 일본 정부 및 여당인 자민당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자민당 내에도 동성혼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은 있지만, 삿포로 판결 후에 공명당이 동성혼 검토 워킹그룹을 꾸린 데 비해 자민당은 당 차원의 소극적 자세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 법률이 개정된다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 소수자 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에서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 삿포로의 원고 등 6인은 더 완전한 승소를 위해 항소했고, 싸움은 각 지역의 법정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혼인제도 자체의 차별성을 비판하며 동성혼 요구에 대해서 비판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이성만이 혼인할 수 있는 불평등한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되고 만다.

 

삿포로 판결에 기뻐하는 목소리에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실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의식의 변혁을 일으키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보다도 “권리포비아”(소수자가 권리를 찾는 투쟁에 대한 혐오)가 더욱 문제인 일본 사회가 동성혼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계기로 삼아 체념에서 탈피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모리 아이 변호사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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