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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들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째가 된 올해 1월, 일본에서는 재해와 여성의 삶을 둘러싼 조사연구를 해온 여성들이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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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째가 된 올해 1월, 일본에서는 재해와 여성의 삶을 둘러싼 조사연구를 해온 여성들이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재해 여성학’은 한신 아와지 대지진(1995), 동일본 대지진(2011), 구마모토 지진(2016) 같은 큰 재해를 계속해서 겪으면서도 여성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부담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며, 여성의 관점을 담은 재해에 관한 이론과 철학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재해를 뚫고 살아남은 편집자와 8명의 저자가 생각하는 바는, 지역 방재에 여성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의 경험을 명확하게 언어화하여 재해의 종류와 피해지역 등을 고찰하고, 그러한 경험과 지식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이 방재에 관여하는 의미를 짚고 있다.

 

▲ 2011년 7월 27일, 미야기현 도메시 ‘에가오넷’ 자원활동가들이 피난민들 각자의 요청에 따른 지원품을 분류하고 있다. (제공: 아사노 후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재해 여성학’에 관해,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天童暁子)의 편집자 중 한 명인 아사노 후미에(浅野冨美枝) 씨의 글을 싣는다. 아사노 후미에 씨는 전 미야기가쿠인여자대학 교수이며, 사이타마현 요시카와시 방재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편집자 주]

 

왜 재해 때마다 여성들이 겪는 곤경이 반복될까?

 

동일본 대지진 때 피해 지역의 여성들은 지진 발생 직후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직면했다. 칸막이가 없는 피난소에서 옆에서 자고 있던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이후 잠들지 못하게 된 젊은 여성, 수유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모유에서 분유로 바꿨지만, 젖병을 소독할 수 없어 난감한 엄마,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수분 섭취를 줄이다가 몸 상태가 안 좋아진 고령의 여성도 있었다.

 

피난소에서 남성은 하루 7천엔을 받으며 폐기물 처리 작업에 나서는 반면, 여성은 100명 이상 되는 피난민들의 세 끼 식사 만들기와 뒷정리를 무상으로 담당했다. 식사 당번 날에는 시간 제한에 걸려 자위대의 입욕 시설도 이용하지 못했다. 각 가정 내에서도 성별 역할 분리에 따른 부담이 늘어 갑작스런 ‘대가족’ 상태가 되어 무너지기 직전인 여성도 있었다. 많은 여성이 직장을 잃었으며,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는 재난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2011년 9~10월, 지진 재해에 동반하는 문제를 묻는 이퀄넷센다이의 조사에 따르면 구체적인 어려움들은 다음과 같다. ‘가족의 지병이 악화되어 돌봄이 필요해져 일하러 나갈 수 없다’, ‘피해를 입은 부모나 친척과의 동거로 부담이 커졌다’, ‘친척 집으로 피난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자녀가 지진에 대한 공포로 인해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직장이 피해를 입어 해고당했다’, ‘지진을 겪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퇴직하게 되었다’, ‘정규직에서 시간제로 전환되었다’, ‘구직이 안 된다’, ‘채용이 연기되었다’ 등.

 

1995년 발생한 한신 아와지 대지진 당시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던 한 여성이 이런 상황을 보고서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와 똑같다”고 말했다. 재해가 일어나면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걸까. 재해 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경험과 거기서 나온 지혜와 교훈을 이어 받고, 넓게 공유하고 기록으로 남겨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시각에서 재해에 관한 이론과 철학이 필요하다. ‘재해 여성학’은 이런 생각들이 작동하여 탄생했다.

 

▲ 2011년 5월 19일, 미야기현 도메시 ‘에가오넷’에서 피난민들을 위한 자원활동으로 손 마사지를 하는 모습. (제공: 아사노 후미에)

 

여성의 시각에서 접근한 재해 이론과 철학이 필요하다

 

여성의 관점이란, 생리나 임신, 출산 등 신체성에 기인한 관점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여성들이 놓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배경으로 한 관점 역시 여성의 관점이다. 성별 역할분업이나 불안정 고용 같은 경제적 환경, 의사결정의 장에서 배제되는 성차별 환경 등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당사자로서의 관점 말이다. 또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불가결한 생활인의 관점, 육아, 돌봄 등 케어를 떠맡는 사람으로서 갖는 관점 등이 그러하다. 이는 오늘날 사회 속에서 배제되기 쉬운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재해 그 자체를 완전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피해는 성별, 연령, 국적, 가족과 일의 상태, 돌봄의 필요성과 장애 유무에 따라 한 명 한 명 다르며, 필요한 지원도 모두 다르다. 획일적인 지원만 가지고는 살릴 수 있는 생명도 살리지 못한다. 다양성을 배려한 지원을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의 관점, 다양성을 고려한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해 여성학’의 최대 주제는 재해 시의 인권과 피해자의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피난할 권리, 존엄하게 안전·안심하고 피난 생활을 보낼 권리 등) 보장이다. “재난 피해를 입어 힘든 상황에서 인권이나 성평등 따위를 이야기할 여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간혹 들린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위험이 높은 재해 때야말로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에서는 우선 재해 여성학이란 무엇인가를 명시했다. 다음으로 간토대지진부터 한신 아와지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을 거쳐 구마모토 지진까지 재해시 여성의 상황, 피해자 지원, 지역 방재와 여성 리더의 양성,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부터 장기에 걸친 광역 피난, 최근 신종 코로나19 감염까지 포함하여, 환경과 재해에 있어 여성의 관점이 갖는 의미를 조명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한 제언으로서 ‘재해 여성학’에서 도출되는 과제와 전망을 제시했다. 특히 다양한 분야와 레벨의 중층적 네트워크 구축, 젠더 평등 관점에서의 자조·공조 다시 구축하기, 이와 관련된 인적 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天童暁子) 아사노 후미에, 덴도 아키코 편저, 生活思想社

 

‘재해 여성학’은 여성의 현장에서 태어난 실천지식의 축적

 

동일본 대지진에서 많은 여성들이 지원 활동에 움직인 계기가 된 것은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 여성들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마모토 지진에서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에서의 여성들의 교훈이 전해져 지원에 활용되었다.

 

지금은 국제적인 노력과 연동해 국가의 방재계획과 ‘개정 재해대책기본법’, ‘제5차 남녀공동참획기본계획’에도 재해에 있어서 여성 관점과 여성 참여의 중요성이 명기되었다. 하지만, 전국의 지자체 방재회의의 여성위원 비율은 8.7%(2019년)로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여성 리더를 수용하지 않는 지역사회도 적지 않다.

 

재해 시에는 평시의 문제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평상시와 비상시를 관통하는 젠더 격차가 재해 시 여성이 겪는 곤경의 뿌리에 있다. 여성의 곤경을 없애기 위해서는 평상시와 비상시를 관통하는 사회구조의 변혁, 특히 젠더평등 사회를 확립해가야 한다.

 

‘재해 여성학’은 여성의 현장에서 태어난 실천지식의 축적이다. 대규모, 광역 재해가 다발하고 있다. 이 책을 단서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역 방재계획, 자신과 가까운 재해 대책을 여성의 관점으로 다시 돌아보길 바란다. ‘재해 여성학’의 담당자는 현장을 알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아사노 후미에 씨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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