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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법원 ‘동성결혼 불허는 위헌’ 판결에 축배를 들었죠!
올 3월 17일, 일본에서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동성 커플 등이 제기한 소송(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Marriage for All) 재판에서 삿포로지방법원이 처음으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9년, 전국 다섯 군데 지방법원에 제기된 소송 중에서 도쿄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인 오노 하루(小野春) 씨는 “그날 일은 잊을 수가 없어요! 도쿄에서 일하면서 전국의 동료들과 자세히 듣고 있었는데, 판결을 듣고 다 같이 오열했어요. 그날은 온라인으로 다들 축배를 나눴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노 하루 씨는 20대 때 남성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이혼하고 16년 전에 지금의 파트너인 니시카와 마미(西川麻実) 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니시카와 씨도 이혼하여 딸이 한 명 있었다. 엄마 둘이서,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 셋을 키웠다.
“새로운 가족이네요, 라고들 하지만, 두 어른이 힘을 합쳐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고 헉헉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디에나 있는 가족이에요. 사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데 결혼을 할 수 없으니 공동친권이나 상속이 불가능하고, 공공주택 신청조차 불가능합니다. 의원들에게 막무가내로 요구해서 신청할 수 있기까지 일 년 꼬박 걸렸어요. 이래서야 천년을 함께 살아도 부족하잖아요! 분명한 불평등이잖아요. 저는 이혼한 경험이 있으니 결혼이라는 게 굉장히 남녀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결혼제도에 의문도 가지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결혼을 하고 말고의 선택지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삿포로지방법원의 획기적인 판결에 기뻐하는 변호인단과 지지자들. 2021년 3월 17일. ©오치아이 유리코 |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하루 씨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같은 학년 여성에게 설렘을 느꼈지만, 금세 감정을 억눌렀다. “스스로 깨달은들 좋은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세상이 안 된다고 하는 일의 당사자가 되면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항상, 안 되겠다, 주변을 못 쫓아가겠다, 나만 남겨지겠다, 초조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때는 여성잡지 「JJ」를 참고삼아 외양도 바꾸며 남성들로부터 ‘인기’를 좇은 적도 있다. 취직 후에는 당시 사귀던 남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출산 후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없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은 하루 씨가 허약한 아들을 끌어안고 홀로 ‘육아’ 절벽에 내몰렸다. 마침내 이혼을 하고, 가슴 깊이 묻어뒀던 여성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자신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니시카와 씨를 만난 것은 어느 커뮤니티의 술자리. 포복절도할 두 사람의 만남과 우여곡절은 하루 씨의 책 『엄마 둘이서 ‘가족’을 시작했습니다』(고단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텝 패밀리(Step Family, 재혼 가정) 특유의 고민은 있지만, 아이들은 “함께 있으면 즐겁다”고 했고, 다섯은 가족이 되었다.
동거한 지 몇 년 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도 둘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이웃의 엄마들, (결과적으로) 직장에도 커밍아웃했다.
“우리 둘의 관계를 계속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들 축복해줬어요. 그 축복으로 앞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까지 벽장 속에 꽁꽁 숨어 있을 정도로 소극적이었는데, 그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진취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도쿄 소송 원고 오노 하루 씨. ‘무지개빛 가족’ 대표이며, 저서로 『엄마 둘이서 ‘가족’을 시작했습니다』(고단샤)가 있다. 유방암 생존자이기도 하다. ©오치아이 유리코 |
‘LGBT는 생산성이 없다’ 정치인의 발언 듣고 언론에 나서기로
하루 씨는 더 나아갔다. “성소수자로서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옛날부터 많았다는 사실과, 다들 고립되어 곤경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의) 학교 서류에 ‘부모란’이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그런 고민들이요. 연결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육아하는 LGBT와 그 주변인들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무지개빛 가족’을 설립했다.
지금 ‘무지개빛 가족’에는 정자 제공자인 게이 커플과 아이를 키우는 레즈비언 커플 가족, 게이와 레즈비언 한부모, 트랜스젠더와 엑스젠더 부모 등 다양한 정체성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하루 씨는 미국의 그림책 『두 엄마의 집에서』 번역 프로젝트 기획에도 참여했다. 2013년에 미 국무성 주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자극을 받았다. “미국 중서부에서 동성혼이 실현되기 전이었고, 혐오 분위기도 있었는데 LGBT 센터가 지역 사회에 열려 있었어요.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림책도 많고. 일본에도 다양한 가족을 그린 그림책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거 시작 때부터 소송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파트너인 니시카와 씨다. 어릴 때부터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했고, 왜 여성과 결혼할 수 없는지 불평등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당시는 사회에 동성혼이 실현될만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 일본 각지에서 성소수자들의 오랜 풀뿌리 활동이 축적되어, 2015년부터 시작된 동성파트너십 제도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법정 행동의 날,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하루 씨가 마스크를 벗었다. “스기타 미오 의원의 ‘LGBT는 생산성이 없다’ 발언에 엄청 열을 받았거든요. 그런 발상도 문제고, 육아를 하고 있는 LGBT가 많이 있는데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직접 내가 나와 드리죠, 그런 거였죠.” “슈퍼에서 당신 옆에 저렴한 고기를 사고 있는 아주머니가 동성애자에,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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