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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에서 다양성 트레이닝을 하는 터키 이주민 2세, 세이다

 

[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서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일다≫ 반-인종차별 교육은 많은 조직에서 ‘필수’가 되고 있죠

[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서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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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은 학습되는 것이다: ‘갈색 눈, 푸른 눈’ 실험

 

1968년 4월 5일,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다음 날, 미국 아이오와 주 작은 마을의 교사 제인 엘리엇은 자신이 담당하는 초등학생 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과감한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모두 백인인 28명의 아이들을 눈(홍채) 색깔에 따라 크게 갈색 눈, 푸른 눈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아이들에게 눈 색깔을 결정하는 체내 멜라닌 색소량에 따라 지능도 달라진다고 거짓 설명을 했다. 그리고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은 멜라닌 색소가 더 많기 때문에 더 똑똑하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이에 즉각 반응하기 시작했다. 갈색 눈 아이들은 눈에 띄게 자신감 있고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반면 푸른 눈 아이들은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며 움츠러들었다.

 

교사는 여기 더해 갈색 눈 그룹을 특별 대우했다. 쉬는 시간을 더 주고, 잘못된 행동을 해도 벌을 주지 않는 식이었다. 갈색 눈 아이들은 이내 푸른 눈 학생들을 공공연히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푸른 눈 아이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교실은 두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그 다음주에 엘리엇은 특혜 그룹을 갈색 눈에서 푸른 눈으로 바꾸었는데, 차별과 불이익을 겪어 본 푸른 눈 아이들은 앞다투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면서” 더 이상 친구를 괴롭히고 따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인 엘리엇은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 및 차별 행동은 학습되는 것’이라며, 사회에 만연한 인종 편견을 비판하고 반-인종차별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이를 둘러싸고 거센 논쟁이 일었다. ‘우리(백인)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모멸감을 학습시켰다’며 반발하는 전국의 학부모와 시민들에게 제인 엘리엇은 “겨우 하루 몇 시간 가상의 인종차별을 겪는 백인 아이들을 이렇게 걱정하는 사회가, 유색인종 아이들이 평생 동안 매일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선 왜 분노하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엘리엇은 그 후 4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왕성하게 반-차별 교육을 해오고 있다.

 

▲ 1992년 미국 CBS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제인 엘리엇을 초청해 성인들을 대상으로 ‘갈색 눈, 파란 눈’(Brown Eyes, Blue Eyes) 실험을 하는 장면. 후반부 토론에서 엘리엇은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의 무지와 해악에 대해서도 목소리 높인다. (출처: 유튜브 OWN TV 채널)


내가 ‘갈색 눈, 파란 눈’ 실험을 처음 접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그땐 그리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한 ‘역지사지 역할극’을 했다고 뿌리깊은 편견을 바꿀까 싶었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곧 인종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문화 속에서 희석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인간의 지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현대사회 아닌가. ‘모든 사람은 OO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고 존엄하다’, ‘인종적 편견에 따라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이다’라는 단순 명료한 가치를 직접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학습한다는 논리에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작년에 독일 연방 경찰에서 ‘갈색 눈, 푸른 눈’ 워크숍을 신입경찰 교육과정에 도입했다는 뉴스를 봤다. 내가 나이브하다고 여겼던 오래된 교육 프로젝트가 스테디셀러로서, 더구나 내가 사는 독일에서 잘 나가고 있다니, 이제는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난 27년간 유럽 각국을 다니며 이 워크숍을 진행해온 다양성 트레이너, 세이다 부어만-쿳살(Şeydâ Buurman-Kutsal)을 만났다.

 

‘반-인종차별’, ‘조직 다양성’ 교육하는 세이다 부어만-쿳살

 

세이다는 1969년 독일 마부르크에서 태어난 터키 이주민 2세로, 900시간이 넘는 관련 교육 및 컨설팅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 유럽 여러 나라의 경찰, 군대, 정부기관, 기업, 대학교 심리학과, 청소년 사회복지사, 교회 등에서 반-인종차별 교육과 조직 다양성 트레이닝, 그리고 이주민/여성 임파워먼트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앞두고 세이다의 웹사이트(seyda.nl)에 들어가 보았는데, 다양성(diversity)을 ‘사회 역학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 중의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개인과 조직,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 네덜란드 자택에서 화상 인터뷰 중인 세이다 부어만-쿳살. 세이다는 독일 출생 터키 이주민 2세다. (출처: 하리타)

 

-최근에 스위스 바젤 시에 가서 경찰 교육을 하셨죠? 제가 사는 곳이 바젤에서 한 시간 거리에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기밀이 아니라면 조금 이야기 들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민감한 내용이라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전반적인 얘기는 좀 해드릴 수 있어요. 스위스 경찰이 ‘갈색 눈, 푸른 눈’ 트레이닝을 의뢰해왔어요. 인종차별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경험하며 감정 차원에서 느낀 다음에, 그 감정을 인지학적으로 되짚어보는 것이에요. 보통 특권 그룹(백인)은 인종차별 문제에 그 반대로, 머리부터 먼저 접근을 하니까요.

 

갈색 눈, 푸른 눈을 기준으로 특혜와 차별을 겪어보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기가 느끼는 소외감 같은 감정을 먼저 알아차려요. 그 다음에 이론적인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분석을 하지요.

 

이와 상반되게 일터에서나 개인 생활에서나 명확한 체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무작정 겪어보거나, 정서적인 애착을 통해서 배우는 편이 아니고요. 경찰이나 군대 같은 조직에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사실 많아요. 그래서 ‘갈색 눈, 푸른 눈’ 방법론이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인 거죠. 그 의외성 덕분에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성 트레이닝’ 교육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해요. 보통은 조직에 (다양성 원칙에 어긋나는) 이슈가 발생해도, 리더들이 ‘더 중요한 일이 있으면 가서 업무 봐’라고 해버리는 분위기지요. 그런데 우리 강사들은 ‘여러분의 어떤 행동, 혹은 침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느껴질지 얘기해봅시다. 그 전에는 트레이닝이 안 끝날 겁니다’라고 말해요. 감정을 돌아보는 게 사실 제일 중요하거든요.”

 

-경찰관들 역시 이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문화에 영향을 받는데,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고 실수나 편견을 인정 한다는 게 어려울 것 같긴 해요.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의 특성 상, 그 일에 종사하는 자신도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확신을 거듭하겠죠.

 

“맞아요, 경찰관들도 보통 사람들이죠. 아무도 인종차별주의자이길 원치 않고요, 차별 행위를 한대도 그게 의식적인 선택은 아니에요. 경찰뿐 아니라 교사, 사회복지사, 여성운동가와 같이 공익 목적의 일에 종사하는 분들은 자기에게도 차별주의자 성향이 있다는 걸 잘 못 받아들여요. 스스로의 도덕성을 신뢰하고 평등, 인권, 봉사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애초에 이런 직업을 택한 것이겠죠.”

 

-다양성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 실제 변화가 일어나는 걸 자주 보시나요? 

 

“제가 27년 간 봐온 바로는 10% 정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남은 평생을 좌우하는 어떤 계기가 되는 거죠. 제 생각엔 꽤 큰 숫자에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위해 쓸 수 있는 권한이 뭔지 고민해요.

 

▲ 세이다가 한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습. 유럽에서 점점 더 많은 조직들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없는 조직,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조직’을 목표로 관련 교육과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출처: seyda.nl)

트레이닝을 의무적으로 받았을 뿐, 차별이나 혐오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생각이 더 이상 이 조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끼고 입을 다무는 이들도 있죠. 가령 경찰 조직에서 자신이 소수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실은 권력을 가득 쥐고 있는 사람들인데, 왜곡된 현실 인식을 한달까요.

 

‘나는 아무 짓도 안 했고 동료가 잘못한 건데, 그것 때문에 우리 전체가 욕을 먹으니까 억울하다.’ 이런 반응도 흔하잖아요? 이른바 ‘썩은 사과 한 개’라는 논리. 누구 한 사람, 한 번의 실수만 도려내면 된다는 식이죠. 그런데 이게 그렇지가 않아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썩은 사과’는 대개 한 개만이 아닙니다. 잘못된 언행을 해도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피드백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이 된 거고, 사실은 조직이 그걸 허락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저는 교육할 때 항상 강조해요. ‘동료가 괜찮지 않은(not okay)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나설 수 있는가’ 고민하라고. 나서지 않으면 그런 상황에 일조한 거라고. 이 사고방식 하나 바꾸는 것만도 커다란 변화에요. 모든 조직에서 차별 문제가 공론화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냥 가정해 버리죠. ‘여기엔 인종차별이 없으니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고.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각 사회 조직들이 다양성 교육을 꼭 필요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죠.”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다양성을 훼손하는 개인에 대한 제재뿐 아니라 조직의 구조적 변화도 꼭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그래야 예방이 되니까요. 구체적으로 조직 컨설팅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들어보겠습니다. 몇 달 전에 인터뷰한 <디 자이트지>(독일 주류 언론사) 기자 분 사례인데요. ‘20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이유로 몇몇 동료들이 차별 발언을 하고 협업을 거부한 일이 있었죠. 그 분이 상부에 문제 제기해서 가해자에게 제재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긴 했지만,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은 없었어요. (관련기사: 난민숙소에서 자란 베트남계 여성의 ‘다른 저널리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인데, 오히려 그래서 교육 의지가 없다고 하네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다≫ 난민숙소에서 자란 베트남계 여성의 ‘다른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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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케이스를 담당한다면 '변화 과정’(Change Process)이라는 프로그램을 권하겠어요. 문제 상황에 대한 자각은 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조직이 이전과 달라지기 위한 계기를 마련해야죠. 우선 개념 확립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이름을 붙이고 그걸 공유해야 돼요.

 

조직 변화에 적극 나서려는 리더들의 의지도 있어야 합니다. 외부에서만 구조적 변화를 견인하면 리더들도, 직원들도 권한을 뺏긴다고 느껴요. 포커스 그룹 트레이닝도 필요하죠. 예를 들어서 현재 조직 문화와 구조에서 불이익을 겪는 소수자들. 좀 더 포용적인(inclusive) 조직을 만드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이들의 의견을 듣는 겁니다. 인사부와 협력해서 새로 온 직원들에게 입사 첫날부터 ‘이게 우리 조직이 되고자 하는 상이니까 일원이 되려면 이런 점을 배우라’고 조직의 비전을 알려주는 것도 효과가 있죠.”

 

-유럽이 사회문화적으로, 특히 인종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죠. 조지 플루이드 사건(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페리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던 중 목을 눌려 질식사함) 관련한 인종차별반대 캠페인(Black Liives Matter)이 여기서도 같이 일어났었고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다양성 교육을 할 때 나라 별로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나요?

 

“저는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스위스, 영국에서 주로 다양성 교육을 하고 있어요. 네, 나라마다 제가 체감하는 차이점들이 있어요. 일단 법이 달라요. 차별금지법이 가장 관련성 높은 법인데, 독일이 비교적 최근에 이 법(1998년부터 ‘차별금지법’ Antidiskriminierungsgesetz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6년 8월에 ‘일반 평등대우법’ Allgemeine Gleichbehandlungsgesetz; AGG이 제정되어 시행 중)을 도입했죠. 그리고 법에 따라 각 조직이 차별금지 담당자(Beauftragter für Anti-Diskriminierung)를 지정하도록 되어 있어요.

 

반면에 차별금지법이 훨씬 먼저 도입된 네덜란드(1980년대)에는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차별적 언행을 하는 것에 대해 사법적 개입은 없어요. 일터와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요. 반면 독일에서는 사적 영역에서도 차별적 언행이 위법입니다.

 

또 하나, 발언(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화 차이가 있어요. 독일이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과 좀 대비가 되는데요, 예를 들어 독일에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으면 논쟁을 해서 꺾어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다른 세 나라는 차별 발언의 문제보다 기본권인 발언의 자유가 더 우선이라는 정서가 있죠. 두 가지는 굉장히 다른 마음가짐이거든요. 그리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담론, 역사적인 흐름, 문화적 통념이 다 다르단 말이죠. 이 때문에 교육 방향이나 방식이 달라야 되요.”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발언의 자유 관련해서 더 자세히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저도 평소에 독일 사람들이 이성적인 논쟁에 익숙하고, 논쟁을 잘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반면 영국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서 논쟁거리가 나와도 대화 상대를 언짢게 하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를 피한다는 인상을 받았죠.

 

“네, 예를 들어 독일에는 ‘슈탐티쉬팔로렌에 대항하는 논쟁 훈련’(Argumentationstraining gegen Stammtischparolen)이라는 제목을 내건 교육 과정이 여기저기서 운영되고 있고, 인기가 많은 편이에요. 하리타 님이 독일에 살고 있으니까 ‘슈탐티쉬팔로렌’이라는 용어를 아실 것 같네요.”

 

-술집 같은 곳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술을 마실 때 유독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들, 언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죠? 검색해보니 이런 수식어가 나오네요. ‘공격적이고, 편가르기를 잘함. 흑백 논리를 일삼거나 타협을 안 하는 사람.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가지고 일반화, 단순화를 잘하고, 그러면서도 논쟁 자체에는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라고요. 이런 사람들이 극우 성향에 인종차별, 성차별 의식이 있으면 골치 아프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긴 힘들고, 자리를 피하자니 찝찝하고, 반박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대화에 임하면 언쟁이 끝도 없이 길어지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네덜란드나 이웃나라 벨기에는 언어가 독일어와 유사한데도 이런 표현이 없어요. 똑같이 바에 모여 앉아 술을 마셔도 문화가 다른 거겠죠. 하여튼, 독일 사람들에겐 이런 문제적인 사람과의 언쟁에서 어떻게든 논리로 이겨야 된다는 욕구가 있어요. 실제로 바를 돌아다니면서 문제의 발언들을 수집을 해오고, 수업에서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연습, 상대방을 입다물게 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거지요.

 

반면에 네덜란드나 벨기에 사람들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동료와 어떻게 무사히 대화할 수 있을까’와 같은 주제로 수업을 의뢰해요. 언쟁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불편한 상황에서 본인도 상대방도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알고 싶어하죠.” 

 

▲ 스위스에 있는 한 비영리 기관에서 ‘스탐튀쉬팔로엔에 대항하는 논쟁 훈련’ 워크숍을 안내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ggg-migration.ch/stammtischparolen) 독일어 권에는 이런 교육 과정이 ‘정치 교육’(politische Bildung)의 일환으로 연구소, 문화센터, 대학교 등에서 자주 열린다.


-다양성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셨나요? 제가 알아본 바로 세이다 님은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 이주민 2세인데요.

 

“네 맞아요. 저의 제 1언어는 독일어이고 그 다음이 터키어에요. 저는 알렌도르프라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지역 주민들의 출신이나 배경이 워낙 다양해서 그 다양성이 저에게 정상이었어요. 대학 갈 때 처음으로 다른 도시로 나가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저의 터키계 성씨가 문제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친구들은 다들 쉽게 구하는데, 저만 어려웠거든요.

 

저는 사회에 다양성이 있을 때 이로운 점들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저처럼 느끼도록 돕고 싶었어요. 그게 이 일을 하게 된 동기에요.

 

그리고 첫 인턴십을 했던 경험도 좋은 영향을 줬어요.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혼자 생활하기 힘든 여성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 시설의 접근법이 특별했어요. 노인들이 스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어요. 치매 때문에 더 이상 못 하게 된 것들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선 노인들에게 할 일을 나눠드렸어요.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해 내는 게 기본값인 거죠. 3개월 정도 지나면, 할머니들이 처음에 시설 들어올 때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져서 주변에서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사람을 믿어주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이 때 배운 거예요. 지금 모습에 문제가 있어도 ‘안 된다’가 아니라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요.”

 

-긍정적인 체험들에서 동기를 얻고 교육가가 된 것이, 이렇게 오래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네요. 매일 같이 차별이나 편견을 주제로 일한다는 게 힘들 것 같거든요. 편견이나 혐오는 사람들 신념 체계에 뿌리 박혀 있어서 쉽게 바뀌지도 않고요. 제인 엘리엇 님에게 ‘갈색 눈, 파란 눈’ 교육과정을 이수한 건 그 인턴십 이후인가요? 방금 말씀하신 ‘변화의 힘을 믿는 것’과, 제인 엘리엇의 유명한 말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도록 배웠으니 그 반대를 배울 수도 있다”(You learned to be a racist so you can also unlearn it)가 연결이 되는데요.

 

“네, 인턴십 이후에 네덜란드에서 ‘인종차별 없는 학교’라는 프로젝트에서 일할 때였어요. 26년 전이네요. 보트를 타고 네덜란드 곳곳을 다니는 투어를 기획했고, 그 때 엘리엇 선생님을 초청해서 워크숍을 했어요. 저한테도 맨 처음에 충격적이었죠. 저는 그렇게 매사에 특혜를 받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쟤는 터키계인데 그래도 괜찮아’라는 (인종차별적인) 말을 많이 들었죠. 워크숍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제 자신의 내적인 변화를 보면서 ‘아, 나도 이런 일을 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 우리는 서로 다르다. 다양한 개인이 모인 사회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4겹의 다양성’ 모델은 중심에 개인을 고유한 성격을 두고 내적, 외적, 조직적 차원이 이를 둘러싼 형태로써 다양성이 발현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다양성 교육가인 리 가든스와츠(Lee Gardenswartz)와 아니타 로웨(Anita Rowe) 두 여성이 공동으로 정립한 연구 모델. (출처: gardenswartzrowe.com)


‘차별금지법이 있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그려보자

 

이 대화 기록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뚜렷한 잔상을 남기는 것은 아마, 세이다가 조금씩 보여준 ‘차별금지법 통과 이후 독일’의 풍경일 것 같다. 대한민국의 차별금지법은 아직 험난한 진흙탕 여정 속에 있지만, 지금 여기서부터 아주 구체적인 질문과 상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세이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차별금지법이 마침내 시행된다면, 그건 우리 일상에 어떤 의미일까? 독일처럼 모든 조직이 ‘차별금지 담당자’를 갖추게 할 것인가? 그 담당자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비전과 역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가?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차별 언행은 어디까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한국에도 논쟁 문화라는 것이 있는가? 차별주의자에 맞서고자 하는 반-차별주의 시민들을 위한 안전한 연습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다양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치열하게 질문해야 된다. 우리 사회가 써온 ‘다문화’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정리 작업도 필요하다. 다양성은 우리에게 얼마나, 어떻게 유용한 가치일까? 혐오와 차별, 배제, 폭력이 난무한 현실에서 ‘다양성 교육’은 세계 어디서나 반-인종차별 교육 또는 반-성차별 교육 등 차별에 ‘반대’하는 개념으로 주로 행해지는 실정이다. 그 다음으로 아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소수자의 편에 선 우리가 꿈꾸는 ‘다양성이 보장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혹시 동의할 수 없는 사상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내셔널리스트, 반-동성애자, 육식주의자, 인종주의자들이 존재할 곳은 그 사회에 전혀 없는가. 그렇다면 이런 꿈은 다양성 가치에 위배되는가. 소수자가 마침내 소수자가 아니게 되는 미래를 꿈꾸는 우리에게 발언의 자유, 사상의 자유란 무엇인가. 질문이 구체적이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 소개: 하리타. 독일과 한국, 그 밖에도 매일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페미니스트 작가. 이렇게 다른 경계인 여성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쾌감이 크다. 세계곳곳의 멋진 여자들을 오래,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독자들의 감상과 인터뷰이 추천도 늘 기다린다. haritamoonrid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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