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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터뷰이들과의 만남

 

≪일다≫ 트랜스젠더 세 사람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노동하기’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터뷰이들과의 만남 어느 날 트위터에서 ‘나이스’가 쓴 글을 보게 됐다. 자신이 인터뷰이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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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트위터에서 ‘나이스’가 쓴 글을 보게 됐다. 자신이 인터뷰이로 나온 책을 거론하며 그땐 경험이 짧아 인터뷰를 잘 못했는데, 다음에는 진짜 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이스가 말한 책은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였다. 제목 그대로 성소수자 노동을 다룬 책이고, 내가 집필한 책이기도 하다. 나이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인터뷰는 A/S가 된다고.

 

‘당사자가 직접 읽고 나누는 기록글’이라는 컨셉으로 책 리뷰를 쓰고 있는데, 이 책의 인터뷰이(interviewee)이자 독자로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모인 멤버는 나이스, 마늘, 엔진, 세 사람이다. ‘마늘’ 역시 책에 나온 인터뷰이고, ‘엔진’은 나이스와 마늘을 내게 소개해준 사람이다. 우리는 인터뷰이/인터뷰어이자 ‘겹지인’ 관계랄까. 사실 인터뷰는 핑계였다. 보고 싶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은 그런 날들이니까.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표지 이미지. 희정 저, 오월의봄, 2019.

 

팽 당하고 구르고 열심히 산 ‘나이스’

 

화상회의 공간(줌)에서 만난 날. 책이 나오고 1년 4개월이 지났다. 인터뷰를 한 지는 3년도 넘었다. 그 사이 나이스는 개명을 했다. ‘남자 이름’과 ‘여자 이름’이 따로 있는 세상에서 아직 주민등록증 뒷번호가 1인 나이스가 ‘나는 여자요’ 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으니, 집이 시끄럽지 않을 리 없다. “그래도 이름 예쁘네.” 스스로 정한 이름이니까.

 

희정: “왜 인터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이스: “그때는 차별의 경험이 다양하지 못해서 그랬는데. 지금은 구직할 때마다 겪었던 차별이 쌓이고 쌓여 더 말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달까.”

엔진: “그거 안 좋은 거 아냐?”

 

인터뷰를 잘할 수 있는 이유가, 이야기해줄 차별과 고통의 경험이 더 많아져서라니.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서 ‘나이스’ 소개 부분


엔진: “역시 사람은 굴러야 단단해지는 법인가?”

희정: “어디서 굴렀어요?”

나이스: “직장에서 아웃팅 당한 적도 있고, 구직 단계에서 커밍아웃하니까 바로 ‘팽’ 당한 적 있고. 구직 이력서에 정체성을 적어냈는데 연락도 없고, 공고도 내려가고. 같은 곳에서 다시 구인광고가 올라왔을 때는 <여자만 지원 가능>이라고 써있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한동안 우울했거든요.”

 

머리를 기르고 ‘여자’로 일을 하다가 아웃팅 당한 일도 있었다.

 

나이스: “밥 먹던 자리였는데 바로 나와 버렸어요. 이제 거기서 일 못 하겠다 싶어서. 그래도 다음날 늦게 출근했어요. 안 갈 수는 없으니까. 사장님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거예요. 사장님은 괜찮다고 여기서 일을 하라고….”

 

커밍아웃하고 1년간 일 잘 다닌 곳도 있고, 성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텃세) 때문에 그만둔 곳도 있다.

 

나이스: “텃세가 너무 심했어. 맨날 울면서 출근했었단 말이에요. 그땐 돈이 필요했으니까. 나중에 주방장님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다시 와줄 수 있냐. 걔(괴롭힌 주범)를 자르고 너를 쓰겠다.”

희정: “오. 다시 갔어요?”

나이스: “아니요. 거기서 다시 ‘남자’로 일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안 간다고.”

희정: “뭔가 승자인데, 패배한 느낌이다.”

 

괴롭힌 사람이 쫓겨나고 다시 고용 제의를 받았지만 승자는 될 수 없다. 애초 그곳은 ‘나’로 일할 수 없는 공간이다. 텃세 있고, 일은 고되고, 그런데도 최저임금. 이렇게 보면 노동자다. 하지만 동시에 퀴어다. 조건이 아무리 바뀌어도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의 공간이 될 수 없다.

 

성별적합수술을 한 지금도 젠더퀴어, 마늘

 

마늘은 개명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밀 근황을 가져왔다. 의료적 트랜지션, 성별적합수술을 한 것이다. 3개월 전 태국에 가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최근엔 가슴 수술도 했어요.” 그 말에 우리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기록에 남기진 않겠다.

 

마늘: “내가 남자는 아닌 거 같지만, 그렇다고 100% 여자라고 느끼진 않아서 (수술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여성에 조금 더 가까운 상태로 살고 있고, 스스로를 여성으로 지칭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많이 없어진 상태예요.”

 

희정: “책에 ‘마늘은 가슴 수술을 원치 않아’라고 쓴 게 기억나요. 마늘은 세상을 교란시키는 위치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썼는데. 이제 마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마늘: “나를 긍정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괜찮지만, 매번 그런 사람들과 있을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를 헷갈리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건 좋지만, 그 불편함에서 오는 폭력이나 혐오를 계속 직면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인 거 같아요.

 

과거에는 가슴 수술도 필요 없고 이게 내 몸이야 라고 했다면, 지금은 내 몸에 어떤 칼이나 보형물이 들어와도 결국은 내 몸이야. 내가 원하는 성별로 내가 디자인한 몸이잖아요. 어쩌면 여성으로 ‘패싱’되는 몸. 그 몸은 내가 어떤 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안정감을 주는 거 같아요. 공격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예전에는 밖에서 화장실 가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가슴 작고 머리 짧은 여자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나는 도둑이 제 발이 저려 못 간단 말이죠. 지금 몸은 나 스스로에게 그런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돼요. 안정감이 필요했던 거 같고요. 이제 나의 바운더리를 구성하고, 나의 삶을 흔들리지 않게 다지고 싶은 바람이 생겨요.”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서 마늘 정체성 소개 부분


희정: “책에 인터뷰이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만약 마늘과 내가 지금 만났다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거 같아요?”

 

마늘: “그때도 지금도 젠더퀴어지만,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라고 명명하는 게 조금 더 편해졌어요. 어머니가 제일 걱정하는 게, 수술한 후에 후회하고 되돌리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후회하지 않겠니? 물어보셨거든요. 엄마를 안심시키려 한 말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이전보다는 지금의 내 몸이 조금 덜 불편해요. 위화감이 줄어들었다고 할까. 여전히 젠더퀴어지만.”

 

퀴어운동가 제이콥 토비아의 말을 떠올린다. “트랜지션이란 몸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learning to think about my body differently)”이다.(Jacob Tobia, “MTV VOICES_Please Stop Asking Me When I'm ‘really’ Going To Transition” 중. 출처: 퀴어 달팽이 블로그) “그들은 나의 정체성을 아름다운 해답이라 보기 보다는 고쳐야 하는 문제들로 여기지요.”라는 말도.

 

여전히 마늘은 자신을 젠더퀴어라 소개한다. 트랜지션 과정 중에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젠더퀴어’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지금이 과도기라던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순간 마늘이 읽어내고 느끼고 해석하는 몸이 그러하다. 그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인터뷰이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길목에서 새롭고도 익숙하게 마주한 정체성을 다시금 내게 소개해준다. 반가운 일이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엔진’

 

엔진에게 물었다. “민주노총은 퀴어가 일할만한 곳인가요?” 엔진은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상근자로 노동하고 활동하는 사람이다.

 

엔진: “이전 직장에서는 커밍아웃을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 같았는데. 살면서 이렇게 소속감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삶의 안정감을 찾았고. 일자리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일과 안정적인 급여가 사람에게 주는 안정이 있어요. 사람들이 이래서 노동운동을 하고 임금 투쟁을 하는구나를 몸소 느끼고. 그래서 조합원들에게도 새롭게 애정이 가는 경험을 하고 있고요.”

 

▲ 엔진과 애인의 어느 날. (김민수 촬영, 엔진 제공 사진)


희정: “나이스랑 다른 경험이네요.”

 

나이스는 앞서 이렇게 말했다. “일을 하며 이런저런 경험들을 해봤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매번 선택을 달리하게 되요. 앞으로도 노동하며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어떤 환경에서 일하게 될지 예상하기 힘들고요.”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책을 낼 때, 인터뷰이와 길게는 2년 정도 기간을 두고 봤다. 오랜만에 만나면 유달리 직장이건 사는 곳이건, 건강과 심정까지 변동이 잦은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 계약직‧알바와 같은 형태로 일하는 이들이었다. 이직이란, 단지 회사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어떤 관계, 어떤 환경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앞선 경험으로 배운 것들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긴장한다. 그러니 삶까지 불안해진다.

 

희정: “나이스, 이제 좀 노동자 같아요?”

나이스: “인간에 대한 환멸을 쌓았어요.”

엔진: “노동자네.”

희정: “환멸 쌓였으면 진짜 노동자지.”

 

내 경험상 노동자란, 지지고 볶을 수밖에 없는 일터에서 옆 동료에게 환멸을 느끼는 존재다. 동시에 구조는 뒷짐 지고 일하는 사람끼리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노동조건을 없애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은 노동으로만 머물지 않고 변화와 변동을 가져온다. 내가 번번이 묻는 ‘퀴어노동이란?’이라는 질문에 이들이 답한 말이기도 하다.

 

희정: “퀴어노동 ‘몰까’?”

마늘: “퀴어가 하는 일이 다 퀴어노동이겠지만, 누군가 퀴어임이 알려지더라도 괜찮을 수 있도록 일터를 일궈놓는 모든 노동?”

엔진: “끊임없이 퀴어임을 드러내는 모든 노동 아닐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내가 퀴어임을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조차 엘라이(지지자)로 만드는 과정이 퀴어노동인 거 같아요. 나 자신이 퀴어임을 드러내는 것과 다른 퀴어를 보호하고 신경 쓰는 거. 아무도 퀴어를 챙기지 않으니까.”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서 퀴어노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 부분


‘가족’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마친 마늘

 

그리고 좋은 소식. 마늘은 요즘 인생의 큰 숙제를 풀었다고 했다.

 

마늘: “가족관계가 달라졌어요. 제 수술 비용이라든지 부대비용을 집에서 지원해주셨거든요. 퀴어들에게 가족은 큰 숙제잖아요. 가족이나 혈육에게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엄청나게 큰 숙제인데. 그 숙제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은 느낌이라서 좋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상태라고 할까. 그래, 나 트랜스젠더인데 뭐? 어떻게 할 건데? 엄마도 알고 아빠도 알고 친구도 알고 직장 동료도 아는데 뭐? 니가 날 인정하지 않는다고 달라지긴 할까. 싫으면 가라. 프라이드가 생기고 좀 더 당당해진 기분이에요.”

 

희정: ”가족관계가 평화로운 편이 아니었잖아요. 어떻게 숙제를 했어요?”

 

마늘: “제 삶의 역사를 풀어서 설명해 드렸어요. 나는 항상 이런 사람이었다.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힘든 과정인지 한번 봐달라. 어머니가 한 달 동안 진짜 유튜브랑 인터넷 글을 열심히 보셨대요.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해.

 

저는 어머니한테 ‘혐오집단이 올린 정보를 보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물어봐달라’ 했어요. ‘내가 그 누구보다 내 삶을 잘 안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100% 일치시키지 마라.’ 그래서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해드리려고 노력했고요. 어머니가 ’아, 우리 OO이가 이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이런 삶이 계속 지속된다면 애가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한 게 없을 정도구나’ 했어요. 수술 일정을 한 달만에 잡고. 비행기표 끊고. 직장 다니다가 휴직하고 바로 하게 된 거죠.”

 

우리는 이때 박수를 쳤다.

 

엔진:  ”마늘의 소식을 들으면 감격스럽고. 너무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또 많이 슬프긴 하는데.“

마늘: ”왜 슬퍼?“

엔진: ”내 처지랑 비교가 돼서?“

 

그리고 엔진은 울었다.

“밖에서는 잘 지내는 퀴어인데. 집에서는 안 받아들여지고 있고. 아, 나 오늘 분위기 메이커로 왔는데 울고 있어. 박수쳐 줘.”

 

우리는 박수를 쳤는데, 과연 무엇을 위한 박수였을까. 당신의 인생이 뭐가 되었든 응원해, 라는 말 대신이었을까.

 

두 번의 장례식

 

엔진: “갑자기 왜 감정이 확 올라왔냐면, 최근에 기홍(교사이자 인권활동가였던 김기홍 씨)이랑 변희수 하사 장례식을 두 번 다녀왔는데. 장례식 절차 모든 것들에 다 성별이 부여되더라고요. 입관할 때마저 입는 옷이 치마, 바지로 나뉘고.

 

두 장례식을 보며 퀴어의 장례식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느꼈어요.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이렇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일까. 상주들이 어떻게 조문객을 맞느냐에 따라 장례식 분위기가 정말 달라지잖아요. 내가 오늘 당장 사라지면 내 장례식장은 어떻게 꾸려지고, 우리 부모들은 내 친구들을 어떻게 맞아줄까? 받아들여줄 수 있을까.

 

마늘처럼 노력하고 포인트를 찾아 부모님을 공략해야겠지만, 사실 나나 나이스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니까. 뭘 더 해야 하나. 주변에 잘 된 친구들을 보면 정말 좋은데, 그렇지만 나는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드는 거죠.”

 

마늘: “그래서 내가 요즘 트위터를 못해.”

엔진: “갑자기 너무 슬펐어.”

 

마늘: “변희수 하사가 너무 대단한 사람 같더라고. 나는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통증이 밀려와서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는데. 진통제를 달고 일하는데. 그 사람은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기자회견을 하고. 계속 그렇게 다녔잖아요.”

 

엔진: “변희수 하사를 직접 본 적은 없는데. 미안한 점이 보통 트랜지션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젊은 나이에 트랜지션을 했다니까 가족의 동의와 돌봄이 수반되었을 거라 착각을 했어요. 가정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마음 아프더라고요. 좀 더 촘촘한 연대를 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고. 내가 좀 먹고 살만하다고 이제 배부른 퀴어가 되었나. 내가 정상성에 안주해서 살아가고 있던 건 아닐까. 여전히 몸에 대한 이질감이나 사회에 대한 이질감을 매순간 느끼긴 하지만, 그 이질감에 익숙해지고 있던 건 아닐까…” 

 

▲ 지난 3월 6일 서울시청 앞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추모행동’이 열렸다. 시청광장에 나부끼는 무지개 리본과 팻말.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


거리두기, 내가 찾은 생존방식

 

“책을 읽거나 작업 과정에 동참하면서 아쉬웠던 점 이야기해줄래요?” 화제를 돌린다. 대화를 마무리해야 하니까. 엔진이 독자로 입을 연다.

 

엔진: ”오늘도 이야기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사실 나이스는 전형적인 성 역할에 갇히지 않는 사람이고. 마늘과 나도 차별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고 쳐내기까지 하는 사람인데. 책에 그런 통쾌함이나 유쾌함이 담기진 못했던 것 같아요. 혐오와 차별을 가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쳐내는 유쾌함도 드러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 맞다. 시람 사는 게 그렇듯, 퀴어에겐 우울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차별을 드러내는 일과 불행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분간 없이 섞인다.

 

엔진: “다른 사람들은 살면서 똥을 밟거나 나쁜 일을 겪으면 재수 없었다 그러면 그만인데, 우리는 계속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고 재해석하려고 노력하잖아요. 우리가 퀴어라서 그러는 건데. 나이스나 다른 사람이 겪은 크고 작은 혐오들이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스젠더 헤테로(이성애자)들의 일상적인 표현인데 그게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고. 물론 그 일상이 차별이지만. 슬프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만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살면서 안 좋은 일이 쌓일 텐데, 내가 퀴어라서, 이렇게 결론 내리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마늘: “저도 지금 거리두기를 하고 있거든요. 퀴어 정체성이 내게 굉장히 큰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면, 요즘은 그것들에 조금씩 거리두기를 하면서 나의 다른 정체성의 비중들을 늘려가려고 하는 거 같아요.”

 

엔진: “이게 남들도 겪는 차별인지, 내가 퀴어라서 더 겪는 일인지 구분을 하는 힘을 키웠으면 해요. ‘러프’하게 표현하면, 인생이 고달픈 걸 수도 있어요. 내가 퀴어이기에 당하는 일이라고만 해석하면 세상 살아가는 힘이 너무 떨어지잖아.”

 

마늘: “세상이 뭣 같은 건 맞아. 그런 세상에서 퀴어들이 살기 더 팍팍한 것도 맞아. 그렇지만 모든 게 그걸로 귀결되는 건 아니야.”

 

엔진: “차별과 혐오를 모른 척하자는 건 아닌데. 그것만 바라보면 살아갈 힘이 안 생겨. 내가 찾은 생존방식이기도 해요. 분간하는 능력을 유지하되, 거기에 대응할지 말지는 자기 실력과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하자.”

 

마늘: “사실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혐오차별이 너무 많아서 그래. 그래서 분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거지. 여성혐오도 마찬가지지만, 숨 쉬듯이 존재하니까.”

 

유쾌하진 않아도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가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늘이 해준 말과 같겠다. “세상이 뭣 같은 건 맞아. 그 세상에서 퀴어들이 살기 더 팍팍한 것도 맞아.”

 

물론 이들의 팍팍함을 내가 오롯이 알 수는 없다. 이날의 이야기는 나를 자주 침묵시켰다. 내가 가닿을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팍팍함은 몇 마디 옆에서 주워듣는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팍팍함의 정체를 알 길 없어 모호한 상태에서 글을 더듬으면서도,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뭣 같은 이 세상이’ 만들어내는 공통분모였다.

 

자신을 비-퀴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은 퀴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다’고, 자신을 퀴어라 정체화한 사람에게는 ‘이것은 퀴어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이야기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내내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헤아리느라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책이 있어 오늘 이들을 만난다. 만나 무엇이라도 이야기하고 듣는다.

 

어떤 노동을 하길 원하나?

 

‘어쨌거나’ 노동자가 된 나이스, 월 200만 원 받으면서 배부른 퀴어가 되었다고 자책하는 엔진, 숙제 하나를 마치고 다음 장을 펼쳐야 하는 마늘. 이들에게 어떤 노동을 하길 원하느냐 묻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날 자리를 파했다. 누구도 원하는 대로 노동하지 못하는 세상이고, 그러나 모두들 나 자신으로 노동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이다.

 

엔진: “재미있는 노동이요.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고 그 안에서 에너지를 찾고, 무언가를 생산하고. 그런 것에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워하거든요. 재미없는 건 억만금을 줘도 못해요.”

마늘: 억만금을 주면 해야 되지 않아?

엔진: “난 아니야.”

희정: “누가 억만금을 준다고 그걸 지금 논쟁을 해요. 나이스는 어떤 노동을 원해요?”

나이스: 사람 안 보고 사는 노동을 하고 싶어요.”

희정: IT 계열 추천합니다.

엔진: 사람 대신 코드 봐요.”

마늘: “항상 제가 해온 노동을 보면 대체 가능한 노동이었던 거 같아요. 대체될 수 없는 노동을 하는 게 저의 꿈이에요.”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회사가 사라졌다』(공저) 등을 썼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고,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책을 읽고 감상을 공적인 지면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기록을 읽다> 연재를 통해 기록 글(르포르타주, 구술 등)을 읽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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