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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파사렐라> 공연…침묵을 깬 여성들
작년 12월, 일본에서 성폭력 생존자 스스로가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퍼포먼스 <작은 밤새의 울음소리가 들려> 온라인 공연이 진행됐다. 콜롬비아의 연극 <파사렐라>에서 영향을 받아 기획된 이 퍼포먼스는 2회 온라인 공연을 통해 약 120명이 시청했다.
당사자로서, 다른 성폭력 생존자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는 ‘파사렐라 2020 프로젝트’의 프로듀서 다케모리 시게코(竹森茂子)의 리포트를 싣는다. [편집자 주]
▲ 당사자로서, 다른 성폭력 생존자에게 용기를 주고자 ‘파사렐라 2020 프로젝트’를 시작한 프로듀서 다케모리 시게코 씨 (페민 제공 사진) |
‘모든 몸은 권리와 장소를 갖는다’ 런웨이를 걷는 여성들
2008년, 나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개최된 ‘국제여성연극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거기에서 콜롬비아 연출가 파트리샤 알리사(Patricia Ariza)의 작품 <파사렐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파사렐라’(Pasarela)는 ‘런웨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파트리샤가 무대 위에서 그린 런웨이는 연기하는 여성 자신이 당사자로서 등장해 현실적이고 다양한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콘셉트였다. 굉장히 흥미진진한 공연이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파사렐라>의 일본 공연권 승낙을 부탁했더니 “세계 여성들이 어디에서든 자신들의 고통, 분노, 다정함을 이야기하고 런웨이를 걷는 것은 권리”라고 말하며 우리를 안아주었다.
콜롬비아의 <파사렐라>는 “모든 연령, 모든 사이즈, 모든 인종,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자기’를 보여주고, 연기하고, 소리치고, 주장하는” 장이다. “모든 몸이 아름답고, 걸을 권리가 있으며, 세상 속, 세계를 돌아다닐 권리가 있다. 모든 여성의 몸에는 있어야 할 장소가 있다”고 파트리샤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을 깨’는 것. 이런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파사렐라>는 많은 나라에서 공연되어왔다.
▲ 파사렐라 공연 런웨이 연습 중. 자기답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대로 걷기란 실은 굉장히 어렵다! (촬영: 야고 모모) |
전국 곳곳에서 미투…지금이 <파사렐라>를 할 때다!
실은 나는 몇 차례의 성희롱과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의 영향으로, 이따금 몸이 굳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일을 겪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몸 담고 활동해온 연극을 통해서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모색하던 중이었다.
2018년에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성폭력을 없애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단체 Spring을 알게 되었다. 여기 참여하여 ‘폭행·협박’을 기준으로 한 형법 강간죄 규정을 ‘동의 여부’로 바꾸고,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등 법 개정 목소리를 함께 냈다. Spring은 현재 형법 성범죄 규정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무서운 기세로 활동하고 있다.(관련 기사: 억지로 성행위를 당해도 성폭력 피해가 아니라니…)
나는 연극과는 다른 세계에서 우왕좌왕했다. 그러던 중 2019년 4월에 ‘플라워 집회’(강간 및 친부 성폭력 범죄 등에 대해 연이어 무죄 판결이 나자, 분노한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지지하며 4월 11일 첫 집회를 열었고, 이후 매달 11일에 전국 곳곳에서 성폭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짐)가 시작됐다. 때가 왔다. 지금이야말로 <파사렐라>를 할 때다!
곧바로 연극하는 동료들에게 연락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 9월, <파사렐라>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로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단체 Spring 활동가들에게도 함께 할 것을 제안해 가수, 영상 담당자 등이 참여했다. 가정폭력 생존자를 포함하여 극작가, 무용수, 제작일을 돕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DAYA컴퍼니’라는 표현그룹을 창단하는 데로 이어졌다.
일본판 <파사렐라>의 제목은 <작은 밤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이다.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은 조용하고 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퍼포머로 폭넓은 연령층의 여성, 남성 십수 명이 정해졌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삶’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런웨이를 걷고 싶다! 몇 개월에 걸친 연습이 시작됐다.
성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활주로’
파트리샤가 최근 콜롬비아에서 공연한 <파사렐라>에는 Pasarela와 동음이의어인 Pazharé la(나는 할 것이다)라고 명명되며 평화의 구축을 지향한다는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성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우리의 <파사렐라>로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세상에 전해졌을까. 런웨이에는 ‘활주로’라는 의미도 있다. ‘당신’에게 내일로 날아오를 용기를 주었다면 기쁠 것 같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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