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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말랑/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북콘서트에서

 

 

≪일다≫ 트랜스젠더들의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위하여

“나는 추리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마가리타이다. 또 나는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집에서 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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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마가리타이다. 또 나는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공포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커피는 항상 달게 마신다. 그리고 나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트랜스젠더여성이다.”  - 책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중

 

지긋히 평범한 자기 소개로 시작하는 책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와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존재로 낙인 찍히고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담고 있다. 

 

▲ 2020년 12월 발간된 책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꿈꾼문고)


샤이앤과 말랑, 두 사람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과정부터 차곡차곡 이야기를 풀어낸다. 흔히 ‘성전환’으로 이야기되는 트랜지션 과정이 단지 성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과정”이자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사회가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방식으로 인해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이나 불쾌감)와 고통을 겪었던 학창 시절을 토로한다. 트랜지션 중에 어떤 수술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은 어떠한지, 연애와 가족, 친구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꼼꼼히 들어가 있다.

 

비(非)트랜스젠더에겐 트랜스젠더의 삶을 가늠케 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트랜스젠더에겐 자신만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묻어두었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보고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다.

 

혐오로 인해 트랜스젠더들을 잃고 있는 시기,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인 트랜스젠더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가 필요한 요즘,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 책의 북콘서트가 열려서 찾아가보았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열린 행사엔 연이은 비보에 슬픔을 감당하고 있던 이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나와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격려했다.

 

글과 그림을 통해 서로 영감이 된 두 작가의 만남

 

“성별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북콘서트를 준비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에디 활동가의 사회로 시작된 북콘서트. 에디 활동가는 “최근 퀴어 커뮤니티 내에 슬픈 일이 많다. 마음이 무겁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보여줬던 에너지, 그들의 메시지와 목소리도 함께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추모의 메시지부터 전했다.

 

▲ <내 이름은 말랑/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북콘서트가 진행되는 무대 위엔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는 초도 마련되었다.   ©일다

 

이후 모습을 드러낸 말랑, 샤이앤 작가. 첫 북콘서트라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갈수록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에디 활동가가 두 작가에게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물었다. 샤이앤 작가는 “어릴 때 힘이 되었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주로 외국 유튜버들이었다”며, “그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오랜 시간 (타인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지내는) ‘벽장 속 트랜스젠더’로 지냈다”는 말랑 작가는 “(이미 블로그에서 연재 중이던) 샤이앤 작가의 만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샤이앤 작가가 트랜스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고서, 자신도 최대한 솔직하게 일상을 이야기해보자 마음먹게 되었다는 거다. 특히 트랜스남성 이야기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이다 보니 “트랜스남성으로서의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작년 6월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 말랑 작가가 5회 정도 연재했을 때, 꿈꾼문고로부터 책을 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작가는 “처음에 누가 사기치는 건가” 싶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출판사와 이야기가 잘 진행되었고, 샤이앤 작가도 합류하여 같이 책을 내게 되었다.

 

샤이앤 작가는 “아무래도 트랜스여성은 트랜스여성의 입장에서 겪는 이야기밖에 못하는데, 말랑 작가와 같이 작업을 하면 트랜스남성의 이야기도 담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서로를 몰랐던 두 사람은 서로의 글과 그림을 통해 인연을 만들게 되었고,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와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트랜지션 뿐만 아니라, 나만의 행복한 삶이 중요해

 

책이 나왔을 때 어땠는지, 걱정되는 부분이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샤이앤 작가는 “일단 책 퀄리티가 좋아서 기뻤다”고 했다. 꼼꼼하게 편집을 봐 준 출판사 측에 공을 돌리며, 이 책은 자신에게 “완벽한 책”이라고 뿌듯한 마음을 내보였다.

 

말랑 작가는 사실 처음에 책이 나왔을 땐 “아웃팅이 되는 건 아닐까” (책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의인화한 물고기 형태로 그렸음에도) “누가 알아보면 어쩌나” 걱정되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책을 내고 달라진 점에 대해서 샤이앤 작가는 “조금 더 작가 정체성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을 꼽았다. 이전에도 한번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스스로 작가라 부르기 민망했는데, 이젠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는 거다. 반면 말랑 작가는 “원래 자신감은 있었다”고 말해 청중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 <내 이름은 말랑/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북콘서트는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외 4개 단위가 공동 주최했다.  ©일다

 

지금 이렇게 만족스러운 책이 나오긴 했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을 터. 에디 활동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특히 마음이 가거나 신경 써서 쓴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말랑 작가는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이야기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를 뭐라고 딱 정의를 내리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확신을 못하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제 글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가이드 같은 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샤이앤 작가는 트랜지션 이후,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책에서 샤이앤 작가는 트랜지션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커밍아웃이나 호칭 변경 등 사회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인정을 받기 위한 ‘사회적 트랜지션’, 호르몬 치료와 수술 등을 통해 신체적 디스포리아를 줄이는 과정인 ‘의료적 트랜지션’, 그리고 법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정정하는 ‘법적 트랜지션’.

 

트랜스젠더에게 트랜지션은 분명 중요한 과정이지만 “트랜지션이 삶의 전부가 아니기에, 자기 삶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랜지션만을 좇다보면 아무래도 좌절하기 쉬우니까, 자기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 부분은 내가 다시 봐도 힘이 된달까. ‘맞아,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각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임을 잊지 말자

 

솔직한 대답과 재미있는 진행 속에서 분위기가 뜨거워지자 청중들로부터도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많은 고민 속에 있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부터 트랜스젠더 동료,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한 트랜스젠더 앨라이(연대자)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트랜스젠더 동료, 친구가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냐는 질문에, 샤이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지지자의 역할’을 짚었다. “대학원 시절 커밍아웃을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지정성별로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너무 힘든 거에요. 한 명의 친구에게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가 전적으로 저를 지지해줬어요. 그 일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말랑 작가는 젠더 디스포리아 등의 문제는 당사자가 아니면 분명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겠지만 “친구에게 ‘네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도 상관 없다, 너는 내 친구’라고 말하며 옆에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역시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책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중  ©일다


여전히 벽장 속에 있는 트랜스젠더들,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게 전할 메시지로 두 작가 모두 “먼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꼽았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중요한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른 걸 안전보다 우선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만 할 수 있다면, 주변에 조금씩이라도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커밍아웃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런 사람들을 늘려가면 되니까요.”

 

샤이앤 작가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말랑 작가는 “소수자들이 꼭 모두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모두 다 저희처럼 세상에 나와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을 내기 전에 저도 벽장 속 트랜스젠더로 살았지만, 그게 나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랑 작가가 “그렇게 살면 조금 외로울 때가 있다는 걸 안다”며 “그럴 땐 이제 (이렇게 밖으로 나온) 저희가 다가가겠다”고 말하자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더 다양한 트랜스젠더 서사를 볼 수 있기를

 

트랜스젠더의 삶과 경험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지만,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두 작가 모두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점을 아쉬움으로 털어놨다.

 

“현재 트랜스젠더들이 마주하는 혐오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계획 상으론 마지막 장에 그 이야기를 넣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책 작업을 하다 보니, 혐오를 마주했던 개인적 경험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좀 밝은 분위기로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뺐는데, 나중에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도 다뤄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 요즘 상황을 보면 더 그렇죠.”

 

샤이앤 작가의 말에 이어 말랑 작가도 말을 이었다. “저도 그 이야기를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결국 빼게 되었죠. 아무래도 책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지쳐있기도 했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우리가 행복한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에디 활동가가 다음 계획을 묻자, 샤이앤 작가는 자전적 형식의 만화를 꾸준히 그리긴 할 거지만 “차기작은 창작만화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을 많이 보고 싶은데, 여전히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트랜스젠더가 대상화되어 있거나 코믹 요소로 등장하는 게 많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을 해 보려고 해요.”

 

말랑 작가 역시 창작물에 대한 계획을 드러냈다. “제가 학창시절을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해서 그런지 학원물을 그리고 싶더라고요.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써 보려고요. 거기선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이 어떤 특별한 주제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인 걸로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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