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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당사자 여성들에게 언제나 경제문제였다”
<레이디 크레딧> 여성의 몸을 수탈하는 금융자본주의 실태
성매매의 지배적 담론은 “주로 성판매자 여성, 알선자, 성구매자 남성 간 피해-가해의 정치 문제로만 다루어졌을 뿐, 자본주의 경제 문제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자 김주희는 책 <레이디 크레딧>에서 “성산업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부채를 중심으로, 업소 창업 자금, ‘화대’, 술값, 여성들의 수입, 꾸밈 비용, 생계비 등 돈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이 즉각적으로 화폐화 가능한 존재가 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저자의 촘촘한 연구와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기존의 양대 성매매 담론(성매매 반대론과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초월한 가공할 ‘빅브라더’를 만나게 된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자 김주희 저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현실문화, 2020)
“성매매는 당사자 여성들에게 언제나 경제문제였다.”
저자는 각기 다른 상황으로 성산업에 유입된 다수의 성매매 여성을 인터뷰한다. 환경은 달랐지만 이들이 성매매에 유입된 동기는 모두 돈 때문이었다. 어떤 여성들은 진입 당시 목적을 이루고 성매매와 절연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인터뷰이의 사례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성매매 유입 당시 천만 원이었던 그의 선불금이 반년 만에 5천만 원으로 불어났다. 급히 필요해 당긴 선불금 천만 원도 수수료와 선이자를 떼고 나면, 그녀의 수중에는 고작 6~7백 정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돈이 반년 만에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된 이유는, 몇 백 프로에 달하는 막대한 고리와 이자가 커지면 원금으로 편입시켜(일명 ‘꺽기’) 다시 고리를 매기는 어마어마한 수탈 금융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성매매는 구매자 알선자 외 금융회사, 신용정보회사, 채권추심회사의 경제 구조 안에서 굴러가고 있으며 “거대한 인구 집단이 성매매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관련을 맺”고 있다.
금융 시스템이 여성의 ‘몸’을 수탈하는 방식
번듯한 신용이 매겨지는 직업도 아닌데, 성매매 여성에게 그렇게 쉽게 대출이 된다고? 결론은 ‘된다’다. 그것도 자주, 많이 가능하다. 왜냐면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빚을 변제하는 것은 물론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제3금융만이 아니라 제2금융권에서도 ‘아가씨 대출’이라는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으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만 대출한다. 금융권에서 ‘아가씨 대출’에 푼 대출액이 292억에 달하며, 큰 물의를 일으킨 ‘마이킹’(대출금 형태로 성매매 여성에게 임금을 선지급한 후 이자를 부풀려 ‘빚’을 통해 인신을 담보로 속박하는 것) 대출 사건도 이와 맥을 같이 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선불금 채권(차용증)을 묶어 담보로 설정한 후, 대출된 막대한 돈은 대형 유흥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창업 자금이 된다. 사업주는 성매매 여성의 채권만으로 ‘신용’(미래 수익)을 보증받고 대출금을 받아내 업소를 지어올리고 사업체를 꾸리고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경악스런 이 과정이 가능한 것은 여성의 채권(몸)이 즉각 담보화 화폐화되는 금융 시스템에 있다.
2016년 10월 27일 강남역 부근에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이 성산업과 대부업의 공모를 지적하며, 여성의 몸을 담보로 삼는 ‘약탈적 금융’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레이디 크레딧>의 한 인터뷰이가 그간 갚은 이자만 수억이라고 한 말은, 그들의 대출에 부과되는 600에서 700을 상회하는 고리대금을 추산해볼 때, 전혀 과장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부채’는 이들이 한층 더 매상을 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에, 업주는 오히려 빚을 부추김으로써 끊임없이 일하게 하고 또 빚을 지게 하는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성매매 여성의 몸을 수탈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성매매 산업은 질적으로 변화한 금융자본주의 메커니즘과 한 배에 올라탔다.
일단 성매매 시장에 진입하면, 이들은 곧바로 성매매를 둘러싼 각종 산업의 견인차가 된다. 예전의 ‘고수익 숙식 제공’이라는 업소 유인 광고는 이미 “성형 지원 풀옵션 원룸 제공”으로 바뀌었다. 방조차 외상 구입으로 ‘방일수’를 찍게 하며 임대업자,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에게 상당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매일 미용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 대여업자에게서 값비싼 ‘홀복’을 빌려 입으며 관련 업자들에게 수익을 준다. 이들이 들이는 뷰티 비용은 남성 구매자들의 ‘초이스’를 높이기 위해서인데, 최대한 상품화된 몸이 되어야만 ‘뺀찌’의 부담을 덜고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 구매자가 선호하는 마른 몸을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약이나 보조 식품을 소비하고 마침내 성형에 이른다.
성형산업은 성매매 산업의 매우 중요한 축이다. 성형은 성매매를 유지시키는 원인이자 결과로 한 끈에 단단히 묶여 있다. 성형을 받고 싶어 성매매를 시작해 성형 비용을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더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다시 성형을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를 추동하는 자금인 ‘성형대출’은 상품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상품성이 높다. 성형대출은 성매매 여성에게 언제나 열려 있으며, 이 대출의 30%가 브로커 수수료로 10%가 선이자로 지급되는 관례가 증명하듯이 성매매 여성은 성형산업의 화수분이다.
언제든 대출되는 돈으로 “재여성화”(아가씨 되기) 작업에 쏟아 부어지는 돈은 언뜻,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양한 산업 구성원의 수익원”을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여성에게 뿌려지는 대출은 마치 경제적으로 취약한 누구에게나 대출을 해주는 ‘신용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착시를 일으키며, 고리대금의 부채 경제로 전환한 수탈의 금융화를 교묘히 은폐하게 한다. (윤일희)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성매매는 당사자 여성들에게 언제나 경제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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