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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과 자립의 원리는 같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기] 작은 일 만들기⑥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카탈로그 제작 돌입
“제품을 제작하는 일은 작은 일을 만들면서 해야 하는 열 가지 일 중 하나랄까요. 제품을 만들 때는 혼을 불어넣어야 하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녜요. 손님과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고 손님에게 감정을 이입해 살 수밖에 없도록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 등 다른 아홉 가지 일 역시 귀중해요.”
▶ 작업장 단상. 작업장 창밖으로 또 다른 작은 일 결과물인 캠핑카와 파란 방수포로 덮어둔 카페 예정 건축물이 보인다. ⓒ촬영: 정은욱
숨 고를 겨를 없이 제작을 마친 뒤 손님들에게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소개할 카탈로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카탈로그의 방향과 분위기를 정한 뒤 담아야 할 글과 사진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할 일 목록을 적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당장 하긴 버거운 일이 구분됐다.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시간을 쓰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편이 낫다 싶어, 카탈로그 사진 촬영과 편집, 제작을 도울 수 있는 동료를 찾았다.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은 단순 제작이라기보다 내가 이 상품의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정하는 일이었다. 정보 중 무엇을 넣고 뺄 것인지, 표지 사진으로는 무얼 택할지 등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 일에 얼마만큼의 가격이 적당한가
가장 곤란한 일은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들인 품과 공을 화폐로 환산하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여태 나의 일과 그 성과에 스스로 가격을 매겨본 적이 없었다. 가격은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처럼 이미 정해져있거나, 유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통상 가격과 얼추 비슷한 수준에서 평균 비용으로 맞춰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 제작자들이 후지무라 센세와 동료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 장터에서의 상품판매 시연을 준비하고 있다. ⓒ촬영: 홍정현
돌이켜보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가격 앞의 생산자였던 나는 지금껏 ‘이 정도 준다면 이만큼 일해야지’에 가까운 태도를 선택해왔다. 연봉 협상에서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기준은 암암리에 정해져있고, 업계 통상의 범주 안에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일이 당연시 여겨졌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구매자라면, 나는 나의 일에 어느 정도의 가치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을까. 생산자로서 난 단순히 더 많은 비용을 얻게 되면 더 만족할 수 있는 걸까. 정당한 가격이란 무엇일까.
후지무라 센세는 제품의 가격은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 대비 가치가 충분하도록 설정하되, 뒤로 숨기지 말고 당당히 제시해야 한다고 하셨다. 제작자가 책정해온 상품가가 너무 적다는 평이 잦으셨는데, 손수 만든 제품 가격의 양극화가 심한 한국과 비교해 자가제작품의 판매가 일상적이고 그 가격 또한 높은 것이 자연스러운 일본 문화를 기준으로 삼은 센세와 인식 차가 있다 싶은 한편, 그 가격에 부끄럽지 않은 판매자가 되라는 일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분업과 ‘함께 하기’는 무엇이 다른가
사진 촬영에선 촬영 외에도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촬영전용 작업실에서 진행한 게 아니어서 조명과 배경, 배치 등 신경 쓸 사항이 많았는데 제작자들이 작업하다 한 마디씩 거들어주는 조언이 큰 보탬이 됐다. 촬영용 소품이 마땅치 않아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사회적 기업과 생활협동조합의 상품을 잠시 빌려 쓰기도 하고, 어느 제작자는 촬영에 어울릴만한 개인 소장품을 가져와 빌려주기도 했다.
▶ 제작자 중 한 명의 작은 일인 야외장터용 가판대 위에 생협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빌려 전시해 카탈로그용 사진을 찍어보았다. ⓒ촬영: 김다연
문구와 사진이 준비되자 편집 디자인에 능숙한 동료가 멋들어진 카탈로그를 일러스트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한 일은 인쇄소에 출력을 의뢰하고 가져와 비치한 것뿐이다. 작은 일을 하다보면 종종 과거의 일 경험이 떠오르곤 했다. 그전에 해온 일들은 분업이 자연스러웠고 분야별로 누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서로 알고 있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닌 애매한 공백은 어떻게 메울지,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되 각 작업이 통일된 상의 결과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협의했다.
규모가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의 일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개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자립이 모든 일을 나 혼자 하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제작 외 촬영, 편집 등 여러 일들에 손을 내밀게 되면서 이 방식이 그전에 내가 해온 분업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들었다. 업무 외에도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혹은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며 일을 하면 그건 분업이 아니라 동료가 되는 과정인건가.
▶ 후지무라 센세와 동료 비전화제작자들이 한 제작자의 작은 일로 만든 상품 소개를 듣고 있다. ⓒ촬영: 홍정현
작은 일을 하는 자립형 인간이 되려면, 특별하지는 못해도 내 일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대중적이면서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인재상과 무엇이 다른 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시에 답변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내가 온전한 하나의 무언가를 완성하면서 느낀 성취감이었다.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서 할 수 없다거나 물품이든 사람이든 돈을 지불해 구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완벽하려 드는 게 아니라면 뭐든 내 힘으로든 내 주변 이들과 함께 해서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인식의 전환이랄까. 어쩌면 초기 화폐가 만들어진 목적 역시 좀 더 수월한 물물교환이었을 텐데 말이다.
질문꾸러미, 작은 일 만들기
하면 할수록 ‘작은 일 만들기’는 3만 엔 비즈니스 순환고리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삶을 살기 위한 자립방법 중 하나인 듯하다. 그렇다고 작은 일을 만드는 법이 자립하는 법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후지무라 센세의 저작 <30만원으로 한 달 살기>에는 개인이나 지역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도구, 재료, 노하우, 동료, 계기 다섯 가지를 드는데, 이는 작은 일에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이 제안의 특징이라면 노하우, 동료, 계기는 무료로 구하고 도구는 원가에 얻으며, 계속 소진할 수밖에 없는 재료로부터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오래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활은 자립하고 수익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얻었다. 목수는 목재로부터 농부는 농작물로부터 이를 그대로 혹은 변형해 팔고, 얻은 수익으로 필요한 무언가를 구해왔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나 역시도 재료만을 구입해 작은 일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다섯 요소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언급하고 있다. 아름다움, 따스함, 풍요로움…. 작은 일 그리고 자립을 궁리하다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작동하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가시화하기 어려운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을 굴려가는 원동력, 나의 일을 만든다는 건 그런 힘 키우기에 다름 아닐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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