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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하는 일은 소꿉놀이처럼 보이나요?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가마를 만들다③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틈을 채우는 일의 거대함


돔 성형을 하며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은 그 틈을 메꾸는데 드는 모르타르의 양이 꽤 많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마주치긴 어렵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화덕의 모양은 주로 반원인데다 처음 받은 설계도면의 가마가 둥그렇기도 해서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곡선 형태로 가마의 상단을 제작했는데, 곡선은 직선에 비해 여러모로 손 가는 점이 많다.


▶ 곡선이 있는 돔에서는 안쪽보다 바깥쪽의 틈이 크기 때문에 간격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같은 크기 스페이서(Spacer)를 목재로 미리 여러 개 만들어 이용했다. ⓒ촬영: 박새로미


사각으로 만들어진 벽돌을 이용해 돔을 만들려니 가마 안에 피운 불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틈을 꼼꼼하게 메워야 한다. 본딩 모르타르는 성질이 유동적이지만 그 입자는 본래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일일이 채워 모양을 잡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의 난이도뿐만 아니라 그 양이 만만치 않다. 반원의 각도가 큰 만큼 틈새를 메울 본딩 모르타르의 양은 더 많아진다.


어떤 물질을 가공해 곡선을 만들다 보면 버려지는 부분이 많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료 중 직선을 가진 재료는 없건만, 대부분의 기성재는 직선의 형태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곡선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더 신경 쓸 일이 많다. 가마의 돔을 만들다 보니 모르타르로 채우고 있는 그 공간을 틈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이 채우는 공간만큼 모르타르가 채우고 있는 공간 또한 돔을 구성하는 한 영역이자 부분이라고 명명하는 편이 더 적확하게 느껴졌다.


▶ 벽돌 위에 바로 흙 미장할 경우 접착면이 적어 수분이 마르면서 흙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각목을 부착해 접촉면을 넓힌다. ⓒ촬영: 비전화공방서울


정부에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 목적이 ‘저출생 극복’이라는 점도 우습고 호명하는 가정의 범주도 편협해 해당 정책사업을 일·생활 균형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찌 됐든 개인의 일과 중 직장으로 상징되는 일에 할당된 시간이 과도하다는 그 배경만큼은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구불구불하게 서로 다른 모양새를 지닌 개인의 일상을 우리 사회는 벽돌과 벽돌 사이의 틈을 메우는 모르타르 정도로 여겨온 게 아닐까, 작업을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얽히면 얽힐수록 단단해진다


가마의 형체가 완성된 이후에는 열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흙으로 두껍게 벽돌 표면을 미장한다. 양동이에 흙과 모래를 넣고 물에 며칠간 불려 풀기를 뺀 볏짚을 부어 교반기로 섞으면 미장할 흙이 완성된다. 그렇다고 이 흙이 벽돌 위에 알아서 붙을 리 없다. 하단부는 콘크리트 벽돌 표면에 미리 길을 내 콘크리트용 나사로 각목을 부착하여 흙이 닿는 면적을 최대화한다. 실제 가마 역할을 하는 상단부는 대나무살 가운데 구멍을 내 일정 간격으로 묶어 역시 흙이 중력을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나가지 않게 튼튼하게 고정한다.


▶ 가마의 돔 위로는 대나무 살 가운데를 뚫어 끈으로 고정해 흙 미장 시 접촉면을 넓혔다. ⓒ촬영: 조채윤


흙 미장에서 고려할 사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초벌미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흙이 마른 후 이탈하지 않게 하는 점이다. 미장 전 벽돌에 분무기로 충분히 물을 뿌리고 벽면과 그 위에 설치한 지지대를 중심으로 흙이 잘 붙게 덩어리로 떼어낸 흙을 꾹꾹 눌러 붙인다. 빵 반죽이 잘 부풀도록 치대는 것처럼, 미장 흙 역시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옮겨가며 치댄 다음 초벌미장 후에도 재벌미장 시 흙이 잘 붙을 수 있도록 열 손가락으로 눌러 요철을 만들어 준다.


미장을 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떠올린다. 밀착된 관계는 숨 막히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일대일이 아닌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킨 관계망은 사회에서의 안전망이 되어준다. 연결 없는 개인은 물기 마른 흙처럼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소외되기 쉽다. 물론 지지대처럼 누구에게나 비빌 언덕이 되어줄 사업이나, 조직처럼 크고 작은 안전장치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삭힌 볏짚처럼 약해 보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느다란 관계들이 타래처럼 엉켜 쉽게 자를 수 없는 보호막이 되어 준다.


가마 작업을 하던 중 생긴 일


하루는 가마 작업을 하던 제작자 중 한 명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며 씩씩대기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경비와 벌어진 사건을 들려주었다. 가마터는 서울혁신파크 입구에 있는 경비초소와 가까이에 있는데, 몇몇 경비원들이 여자들끼리인데 제법 잘 한다느니, 멀리서 보면 주방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둥 말을 거들었던 모양이다. 저들은 왜 자신이 진정한 한국의 ‘아저씨’임을 드러내는데 부끄러움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했다.


▶ 흙과 모래, 지푸라기를 섞어 물로 반죽해 미장 흙을 만든다. ⓒ촬영: 박새로미


벽돌 쌓기만도 힘든데 아저씨까지 대응해야 하니 피로가 더한다며 지쳐 하다가, 각자의 방식대로 현장을 조우한 경험을 나누고 그런 상황을 어떻게 마주하는 게 좋을까 의논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상대를 이해해야 하나,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가능한가 질문과 응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다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우리만 이토록 진지하게 마음수련을 하고 있나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또다시 여느 때처럼 낄낄대고 그날의 일화는 일단락됐다.


“삶은 앎에 달려 있다. 사회적 약자가 자기 현실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 내가 생각하는 가장 모욕적인 차별이다. 나는 그 이상의 논의를 하고 싶다. 남성 문화가 그토록 주장하는 표현과 학문의 자유의 의미는 자신의 자유가 어떤 이들에게는 폭력임을 아는 것이요, 알기 전까지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왜 ‘피해자’에게 차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가. 스스로 공부하면 된다. 이것은 시민의 의무다.”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했을 그들의 말 걸기는 막상 당사자에게 불쾌감만 선사했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본인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의 말처럼 나의 위치와 자리를 공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민의 의무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명제처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면 최소한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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