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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 진열대, 출점했습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기] 작은 일 만들기⑦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출점의 날이 다가왔다


출점일과 장소가 정해졌다. 마르쉐@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에서 여는 한 해의 마지막 장터에, 12명의 제작자가 다 같이 쇼케이스 형식으로 출점하기로 했다.


2012년 10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발단한 마르쉐@는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루어지는 시장’ 대신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을 추구하며 정기적으로 열리는 농부시장이다.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장으로 혜화, 명동, 성수를 포함해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으며 동네마다 열리는 작은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


생산자 본인이 직접 참여하여 손님을 만난다는 마르쉐@의 원칙이 비전화공방서울의 방향성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어, 제작자들 역시 출점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분위기와 요령을 익히러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다.


▶ 마르쉐@는 매 장마다 주제를 선정해 열리는데, 이날의 소재는 ‘선물’이었다. ⓒ출처: 마르쉐친구들


출점 전날까지 작업장은 북새통이었다. 직접 빚어구운 증류기와 함께 에센셜 워터를 팔려던 M의 계획은 예상보다 증류양이 적어 증류기 제작 워크숍을 판매하는 것으로 조정되었고, 탄두르 화덕에 난을 구워 선보이려던 C는 혹시나 추운 날씨에 제대로 발효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매일같이 보온한 가방에 반죽을 담고 다녔다.


모두가 걸음마 단계이다 보니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조금이나마 먼저 일을 마친 제작자가 누군가의 손발이 되어 돕거나 공동으로 확인할 것들을 챙기며, 조금씩 결전의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터 첫 손님은 추위


내복만 3벌에 팔과 발 모두 토시를 끼고 터틀넥 위에 목도리를 두르는 등 방한에 단단히 대비하고 나섰는데도, 추위는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틈을 타고 긴장과 함께 피부에 전달됐다. 사전에 정해진 위치로 가니 천막은 설치되어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고, 어제 미리 가져다둔 상품 진열대를 조립했다. 그다지 어려운 조립이 아닌데도 추위에 손이 곱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점검했는데도 기온이 낮아져 혹시라도 깨지면 어쩌지 마음이 좁아져 호기롭게 쐐기를 홈에 끼우기가 주저됐다.

▶ 비전화제작자들의 출점상품 열두 개를 그린 일러스트를 배치해 만든 포스터 ⓒ출처: 비전화공방서울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마르쉐@ 기존 출점 팀과의 연계였다. 조립형 상품 진열대는  특성 상 무언가를 진열해두어야 그 기능과 목적을 전달하기 수월하다. 어차피 무언가를 진열한다면 본인의 상품을 판매하러 온 출점자의 상품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장에 출점하는 팀들의 목록을 받고 그 중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만한 곳에 연락을 했다. 한 곳에서 흔쾌한 승낙을 받아, 하나의 천막을 같이 쓰면서 도움을 주고받기로 했다.


답변을 주신 엄마와 딸이 함께 만드는 천연염색 업사이클 패브릭 브랜드 ‘마음은 콩밭’은 이번 장터에는 뜨개질한 털모자와 목도리 등을 판매한다 하셨다. 사전에 문자로 판매할 물건의 사진을 교환하고 당일은 어떻게 진열할지 의견을 나눠가며 상품을 비치했다. 목재에 페인트를 입히긴 했지만 날씨 탓인지 차갑게 보였던 진열대 위에 천을 깔고 손뜨개 상품을 전시하니 꽤 훈훈해졌다.


기대했던 손님들과의 만남


전체 출점 팀이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소개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장이 시작됐다. 조립형 상품 진열대는 한 번에 여러 명에게 많이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닌지라, 이번 장에는 손님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손님이 진열대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 거두기는 했지만 관심 있는 분들은 풍성한 질문을 건네며 진열대에 호기심을 보이셨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르쉐@에 출점 준비 중이거나 다른 장터에 출점하고 있는 생산자인 경우가 다수였다.


신기할 정도로 질문자들은 내 고민도 콕 집어냈다. 편리하게 들고 다니려면 스트랩이 있으면 좋겠다거나, 쐐기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을 텐데 주머니에 보관하는 것으론 부족하지 않겠느냐 등의 질문을 받았다. 저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내가 제작 시 고려했던 의도 역시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하시는 걸 보면서 영 딴판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예기한 건 아니었단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됐다.


▶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천에 글씨를 입힌 간판 아래서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판매하는 내 모습. ⓒ그림: 우영


가장 흥미로웠던 건 ‘마음은 콩밭’ 상품 판매실적이었다. 해당 부스 테이블에 더 다양한 상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열대에 올려둔 몇 개의 상품이 더 잘 팔렸다.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 덕일 수도 있지만, 진열대가 효용이 있는 듯해 뿌듯했다.


장이 마치기 두 시간 전부터 실질적인 진열대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손님들이 슬슬 줄어 출점자들에게 여유가 생기자 나 역시 자리를 잠시 비우고 장터를 돌며 카탈로그를 나눠주고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홍보했다. 장터에 상시 출점하는 판매자들이야말로 진열대의 예비구매자인 만큼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싶었다. 카탈로그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안내하기도 하고, 출점 경험을 경청하며 어떤 조건들이 보충되어야 하는지 가늠해보기도 했다.


쉼표일까 마침표일까


판매 0개. 말 그대로 쇼케이스이기도 했고, 농산물이나 생활용품이 강세인 마르쉐@에서 바로 지갑을 열기에는 부담스러운 진열대가 일시에 팔리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서없는 착상들이 떠올랐다. 이후에는 수공예품 또는 가구를 판매하거나 야외장터 및 축제에서 정기적으로 출점하는 판매자를 대상으로 하는 컨벤션 등에 나가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J는 소형 햇빛 식품 건조기를 제작해 판매했다. 햇빛 건조기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만든 뱅쇼(와인에 시나몬, 과일 등을 첨가해 끓인 음료)와 뱅쇼 키트는 많이 팔렸지만, 막상 건조기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림: 우영


예견치 못한 고민거리도 안게 됐다. 진열대의 도움이 필요한 판매자는 자신의 상품을 돋보이게 진열대를 사용하는 풍광을 구성하기 어려워한다. 진열대의 성능에 공감하는 판매자는 굳이 진열대가 없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품을 드러나게 하는 역량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비전화제작자 1기 열둘 모두가 참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장터. 돌아서며 떠오르는 상념은 각각이겠지만, 앞으로 나의 작은 일과 일상이 어떻게 꾸려지게 될지 작은 힌트 하나씩은 얻지 않았을까 싶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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