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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은 홀로가 아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기] 작은 일 만들기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쐐기 하나로 거쳐야 했던 시행착오


수평대와 수직대를 직접 끼우는 방식이 아니라, 수평대와 수직대에 홈을 만들어 쐐기로 홈과 홈을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조립 형태를 바꿀 때 발생한 난제는 홈 그 자체였다. 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홈이 안정감을 지니려면 어느 정도의 경도와 두께를 지녀야 하는지, 안정감 있게 고정하면서 동시에 편안한 사용감을 지니려면 쐐기와 홈 사이의 틈은 어느 정도가 적합한지, 형태는 어때야 하는지 등등의 질문이 작업 중에 계속 쏟아져 나왔다.


해결하기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수평대 양끝에 ㅁ자로 만든 홈이 ㄷ자로 자꾸 깨지는 것이었다. 홈은 쐐기를 박기 위해 판 것이라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져도 견뎌야하는데, 쐐기를 박을 때는 물론이고 제작 중에도 떨어져나가기 부지기수였다. 지난 조립형 상품 진열대의 끼우는 방식만 바꾸면 되겠다 싶었는데, 끼우는 방식이 달라지면 사용해야 하는 목재와 강도, 크기 등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 조립 전 쐐기 삽입형 진열대. 두 색상을 엇갈려 써서 통일감과 재미를 동시에 주려 했다. ⓒ촬영: 이민영


한 번에 하나씩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마음으로 홈과 쐐기만 여러 형태로 견본을 제작해보았다. 하지만 쐐기 하나로 내가 배울 수 있는 목공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려주려는 듯이 한 차례 작업에도 발견되는 문제점은 각양각색이라 요인이 무엇인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목재 두께와 종류 고르기부터 시작해서 홈을 둘러싼 목재의 두께를 1mm 단위로 바꾸어가며 홈을 평안하게 하는데 한 달에 가까운 시일이 소요됐다.


어떻게 배워야 할까


무지에서 출발한 만큼 시오법이 많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 게 좋은지 작업하다가 문득 질문이 떠오르는 날들이 있었다.


후지무라 센세는 준비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맞부딪치며 실수를 깨닫고 수정해가는 방식을 강조하시곤 했다. 자격과 기준에 얽매이기보다 실전에서 얻게 되는 기술과 이해에 방점을 두시는 편이다. 마감일을 두고 어찌됐든 해내고자 할 때 뿜어 나오는 힘의 가치를 나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객관식 문항으로 빼곡한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전날 밤샘의 무용성을 논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하던가.


▶ 양끝의 노란 네모는, 하얗고 넓은 수평대의 양끝을 깎아 만든 홈이다. 빨간 쐐기를 꽂아 진초록의 수직대를 지지한다. ⓒ촬영: 김다연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나온 문제 인식과 해결방안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이 능력을 익히는 최적화된 방법이 있지 않을까 되묻게 되었다. 조금 더 수월하거나 빠른 방식을 찾는 것 또한 성과와 속도를 중시해온 내가 살아온 삶과 사회의 태도가 반영된 걸까. 쐐기형 가구가 일본에는 흔하다던데 간단한 방정식을 적용해 계산하면 금방 답이 나올 일을 내가 며칠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작업이 고단할 때면 회의가 들었다.


이번이 처음이라 무얼 물어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뿐이야, 계속 하다보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도 가까워지고 체득한 숙련도로 공식이 필요 없는 때가 오겠지 싶다가도 이렇게 몇 번 하다보면 지쳐 하기 싫어지는 때가 먼저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불쑥 올라왔다. 적정한 지점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조립형 상품 진열대 도색과 마감


홈과 쐐기의 형태를 갖추고 나니 구조가 아닌 디자인을 신경 쓰게 되었다. 상품이 눈에 띄도록 수평대 평면은 하얗게 도장하고 멀리서도 조립형 상품 진열대가 눈에 띌 수 있도록 옆면은 대비가 강한 색을 쓰기로 했다. 열리는 장터가 기독강탄제 전이라, 시기에 어울리게 성탄목을 상징하는 전나무의 진초록, 별의 노랑, 루돌프 코를 연상시키는 빨강을 택했고 그 중에서도 채도가 높은 색상의 페인트를 골랐다.


작업 장소에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작업용 천을 여유 있게 깔았다. 광택제와 달리 하나의 목재에 여러 색을 입혀야하니 원치 않는 위치에 페인트가 튀지 않도록 매번 비닐로 싸고 붙였다 떼기 쉬운 마스킹테이프로 모서리를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붓 자국이 남지 않도록 페인트를 칠하는 건 아직 내 실력 밖의 일이라 털 빠짐없는 스펀지 롤러로 도색했다. 취미든 생업이든 왜 사람들이 더 좋은 장비에 연연하는지 목공을 하며 새삼 실감하는 중이다.


▶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신문지로 페인트가 튀지 않게 표면을 덮었는데 쉽게 찢어져 비닐을 사용했다.  ⓒ촬영: 이민영 


도색 후 실외용 바니시(varnish)를 칠하며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진열대에 바른 바니시가 말끔하게 마르지 못하고 나무껍질처럼 갈라지고 일어났다. 실내에 보관하니 괜찮겠지 관망하다 큰 코 다쳤다.


어쩔 수 없이 사포질로 페인트까지 벗겨내고 도색부터 다시 했다. 마감은 욕심을 내는 만큼 정성이 들어가는지라 더 사포질하다간 원목재 치수보다 작아지겠다 싶어 재단부터 다시 할 요량이 아니라면 약간의 얼룩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곁 없는 자립 없다


도색 중 의지와 달리 예민해지는 점은 페인트 튐이다. 서울혁신파크 내 위치한 비전화공방서울은 작업 전용 공간이 없어 전봇대집과 공구보관실로 쓰는 컨테이너 앞 덱을 작업장으로 이용해왔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얼 위험이 있는 수성 페인트 등을 평소 회의나 토론을 할 때 쓰는 실내 아지트로 옮겨왔다. 자연스레 도색 등의 작업을 페인트 보관 장소에서 하게 되는데, 이곳이 목공을 하는데 목적을 둔 공간이 아니다보니 청소 상태 등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작업화에 묻은 건축현장의 흙과 겨, 아무리 털어도 작업복에 딸려오는 목재 분진, 겨울철 단수에 화장실에서 붓과 롤러를 세척하느라 세면기에 남고만 페인트 자국 등으로 미화원들께 죄송한데, 아무리 주의해도 그분들의 일을 늘리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성장의 과정이기에, 배우는 일은 수많은 사건과 관계를 접하며 적응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비전화제작자로 살아가는 최근의 경로에는 나와 함께 하는 제작자, 사업단, 후지무라 센세의 노력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서툰 손놀림에 아깝게 깎여 버려지는 나무와 여기저기 방울진 독한 냄새의 페인트 자국을 견디는 이웃 역시 놓여 있다.


상의 없이 나무를 베어버렸는데도 우릴 탓하지 않은 카페부지 터줏대감인 새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운 날 목마르지 않게 아침이면 물그릇 하나 내다주는 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최선으로 서로를 보살피고 배려하며 같이 살아간다. 우리 삶의 언저리에 이들이 곁에 있기에 나의 자립은 한 단계 씩 걸음을 내딛고, 나 역시 어느 시기와 장소에서든 누군가의 곁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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