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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형체를 쌓아가는 가마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가마를 만들다②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콘크리트벽돌과 양생한 보드를 일정하게 쌓고 나니 제법 기단의 꼴이 갖춰졌다. 그 위에 내화벽돌을 엇갈려놓고 본딩 모르타르(bonding mortar)로 틈을 메워가며 화실 받침을 쌓았다. 가마를 만들 때 기단은 콘크리트벽돌을 화실은 내화벽돌을 주재료로 해 쌓는다. 벽돌이 거기서 거기지 싶지만, 콘크리트벽돌과 내화벽돌은 성질이 다르고 그에 따라 용도와 시공법도 다르다.

▶ 가마 구상도. 일본과 한국에서 판매하는 기성품 벽돌 크기에 차이가 있어,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벽돌 크기를 기준으로 재설계했다. ⓒ 제공 : 후지무라 야스유키 


가장 와 닿는 차이는 물의 활용법이다. 접착제인 본딩 모르타르는 물을 추가하지 않고 사용하는데, 벽돌이 접착제의 수분을 뺏어갈 수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벽돌은 작업 전 물에 담아두었다 꺼내 쓴다. 하지만 같은 접착제를 쓰는 내화벽돌은 비가 오는 날이면 작업장에 가림막을 쳐놓고 작업을 해야 할 만큼 물을 피하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콘크리트벽돌은 직접 열이 가해지지 않지만 내화벽돌은 불이 바로 닿기 때문에, 만에 하나 내화벽돌 내부의 수증기가 충분히 증발하지 않은 채 불을 넣으면 폭발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내화벽돌 작업 시 표면을 젖은 수건 또는 솔로 닦아주거나 분무기로 물을 뿌려 그때그때 수분을 공급해 접착제 내 습도를 유지한다.


급할수록 꼼꼼하게, 벽돌 쌓기


콘크리트벽돌은 일렬로 쌓아 철근을 끼우고, 구멍 사이로는 콘크리트 섞은 자갈을 부어 보이지 않는 기둥 역할을 하게 해 지지력을 강화했다. 콘크리트벽돌 사이의 줄눈은 통상적인 기준인 10mm로 하지만, 내화성을 높이려면 틈이 가능한 적은 편이 좋아 내화벽돌 사이의 줄눈은 최대한 얇게 모르타르를 발랐다. 세로축 줄눈은 3mm 간격으로 흘려 넣고, 가로축 줄눈은 8mm로 두껍고 넉넉하게 바른 뒤 고무망치로 쳐서 틈 없이 수평을 맞췄다. 흘러넘치는 모르타르는 흙손으로 1차 정리하고 남은 모르타르는 젖은 행주로 닦았다.


▶ 내화벽돌은 엇갈려 적재하는 편이 구조적으로 튼튼하다. ⓒ 촬영 : 오수정


여럿이 동시에 작업하다보면 수평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속도가 제작자마다 다르더라도 우선 한 층의 수평이 맞는지를 함께 최종확인한 후에 다음 층을 올린다. 더딘 듯해도 일을 두 번 하는 것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다.


건축이나 제작을 단순히 몸 쓰는 일로 봤다면 오산이다. 원리를 중심에 두고 주요 공정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짚어보지 않으면 일이 어긋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시오법은 피할 수 없지만 부주의로 재작업해야 하게 되면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라앉고 사기가 꺾인다. 협업작업은 자연스럽게 상승 기류에 올라타 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돔형 틀 제작, 선 긋기의 즐거움


가마 내부의 반원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목재로 돔형 틀을 제작했다. 돔형 틀은 그 위에 벽돌을 쌓고 시멘트가 굳어 형태가 고정될 때까지 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임시 받침대로, 가마가 완성되고 나면 불을 넣어 소각한다.


밑면은 내화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보드와 같은 크기로 하고 얇은 합판을 휘어 각도를 맞춘 후, 위에 벽돌과 시멘트를 부어도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반원 판을 여러 개 만들어 합판이 출렁거리지 않게 고정해주었다. 시멘트와 여러 날을 씨름하다 오랜만에 목재를 만지니 즐거웠다.


▶ 제작자들이 만든 돔형 틀을 보고 비평하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센세 ⓒ 촬영 : 홍정현


일을 하다보면 들뜨는 일도 처지는 일도 뜬금없이 찾아온다. 돔형 틀을 만들면서 가장 신나는 작업은 쌓을 벽돌의 적정위치를 알 수 있도록 돔형 앞뒤 판에 선을 긋는 일이었다. 벽돌의 옆면 너비와 벽돌과 벽돌 사이의 줄눈 너비를 계산해 원의 중심에서 벽돌이 놓일 밑점의 위치까지 선을 긋는데, 완성된 모습이 꼭 케이크나 피자를 원의 중심을 가로질러 지름대로 칼로 잘라 조각낸 모양 같다.


별 것 아닌 이 일이 왜 이리 재미있는지. 일상은 실상 이토록 소소한 감정에 충실하며 채워지고 있다는 걸, 제작이란 새로운 일을 통해 하나하나 소중하고 흡족하게 느끼고 있다.


도구를 쓰는 손, 도구가 되는 손 


불을 땔 콘크리트 보드 위에 돔형 틀을 얹은 후 그 위로 내화벽돌과 모르타르로 돔을 성형했다. 성형에는 흙손을 주 연장으로 쓴다. 흙손의 종류 역시 다양해서 벽체의 구석을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용도의 흙손이 있고, 모서리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직각 모양의 흙손도 있으며, 치장용 벽돌의 줄눈을 메우는 얇은 너비의 흙손도 있다. 하지만 손에 잘 익지 않아 주로 호미처럼 생긴 반죽용 주걱흙손과 좁은 너비의 철 흙손을 사용했다. 모르타르가 예상보다 무거워 한 번에 뜰 수 있는 양도 흙받이에 얹을 수 있는 양도 제한적이라 작은 크기의 흙손 하나로도 웬만한 일은 할 수 있었다.


돔 성형을 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제작자에 따라 잘 하는 작업이 조금씩은 다르다는 점이다. 줄눈에 넣을 모르타르 배합을 맞추고 섞는 일을 잘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빈틈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 꼼꼼하게 채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이가 있고, 좌우 평행을 살펴가며 벽돌 위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 눈썰미가 좋은 이가 있다. 기능에 맞게 바꾸어가며 쓰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방면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흙손처럼 제작자들도 각자의 강점을 발휘해가며 가마의 돔을 성형한다.


▶ 헤라는 일반적으로 스티커, 벽지, 페인트 등을 제거하는데 사용하지만, 흙손보다 칼 헤라가 쥐고 작업하기 수월해 자주 쓰곤 했다. ⓒ 촬영 : 비전화공방서울


새로운 공구를 접할 때면 늘 그 공구에 호기심이 일고 그 기능을 제대로 익혀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대부분의 도구는 특정한 작업을 하는데 최적화되어있고, 그 도구를 다룰 줄 안다는 건 그 도구가 해내고자 했던 작업과 감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도구를 익히든 간 지난하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내 신체에 기록되어 있지 않던 다른 흐름을 입히는 일인지라 저항이 발생한다.


그럴 때 우리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함께 하는 것이다. 제각각 지닌 장점을 살리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지점을 타인을 통해 인식하기 쉽고, 잠시 쉬고 싶을 땐 상대에게 의지하면서 숨을 고르더라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숙달하고자하는 의지와 충분한 연습이 있다면 언제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의 예시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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