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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삶을 굴리는 바퀴 중 하나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작은 일 만들기②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반 년 만에 나의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라니. 그것도 기술을 익히고 제품을 생산해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다 혼자 하라니. 이런 창업이 가능할까. 진로라는 게 이토록 쉬운 거라면 난 왜 여태 갈팡질팡하고 있었을까.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작은 일 만들기. 이 일을 만드는 과정은 더욱 새로웠다. 기나긴 토론으로 작은 일 만들기는 시작됐다.
1단계: 좋아하는 일 찾기
작은 일 만들기의 첫 단추는 좋아하는 일 발견하기다. 12명의 제작자가 무작위로 3명씩 조를 이루어, 1명 당 3가지 씩 좋아하는 일을 찾기로 했다. 무작정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건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인지라, 1년간의 수행 과정 중 시도해봄직한 일인 동시에 후지무라 센세가 제시하는 4백 여 개의 일 목록 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각 조 당 9개의 일거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찾는 방식도 신선하다. 내 마음에 드는 3개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내가 그리고 나머지 둘은 조원 두 명이 각각 하나씩 나를 대신해 골라준다. 상대방이 좋아하겠다 싶은 일을 발견해 권하는 것이다. 조원이 어떤 일을 좋아할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 후지무라 센세가 비전화제작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작은 일 찾는 법을 강의하고 있다. ⓒ촬영: 신수미
단, 주의점이 있다. 조원의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 좋아하는 일 찾기. 그가 해왔던 일이나 지금 처한 상황에 연연하지 않는다.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그의 미래를 들여다보면서 그가 앞으로 좋아할만한 일을 추천해준다. 선택은 결국 본인의 몫이지만 말이다.
주어진 목록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를 때엔 이걸 어떤 식으로 바꾸어야 나와 어울리고 내가 더 좋아하게 될까 매의 눈초리로 살펴야 한다.
작은 일 만들기 1단계 과정부터 제작자 각자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주저 없이 자신의 선호를 바로 드러내는 제작자가 있는 반면, 조원의 좋아하는 일은 간결하게 정하면서 막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 헤매는 제작자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편인 나는 ‘얽매이지 말라는 취지인 건 알겠지만 과거와 현재 없는 미래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능숙한 일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미래의 내가 좋아하는 일이란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도 희미한데 미래의 나라면 좋아할 리 틀림없는 일을 어떻게 알지…’ 혼잣말을 되뇌면서 벌써부터 길을 헤매고 있었다.
2단계: 사회성 넣어 사업화하기
개인 별 좋아하는 일이 3가지로 간추려진 뒤, 사회성을 불어넣는 훈련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과연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인지, 또는 누군가를 돕거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나는 좋아하지만 타인을 곤란에 처하게 하거나 사회에 해악이 되는 일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 잠시 잊고 있었다. 세상엔 개인에겐 돈이 되지만 사회는 병들게 하는 일이 적잖이 있다는 걸.
▶ 단계별로 각자의 정리된 작은 일을 발표하고, 함께 하는 제작자들이 의견을 보태는 시간을 갖는다. ⓒ촬영: 정은욱
선호와 사회성을 모두 충족하는 3가지 일이 정해지고 나면, 그제야 이를 어떻게 사업화할지 이야기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손님의 입장이 되어 사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은 상품은 무엇인지 생각할 것.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일은 취미이고, 사회에는 있어야 하지만 수익이 발생되지 않는 일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구체적인 손님의 생활방식과 일상을 상정해보고, 배우가 된 듯 이입해 대상의 감성으로 상품에 접근해 그려내야 한다.
매 단계를 거치고 조원들과 토의하다 보니, 자연스러운데 익숙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인 기분을 느꼈다. 사업을 한다고 하면 요즘 트렌드가 뭔지 혹은 사람들은 최근 무얼 필요로 하는지 등 부재나 틈새를 찾게 되기 마련인데, 작은 일 만들기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그것도 앞으로의 내가 좋아할 일이 무엇인지 우선 궁리한다.
사업자라면 예비구매자의 잠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감동적인 상품을 만들어야한다는 명제가 당위에 가까울 텐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업자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명하자마자 뭐가 잘 팔릴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작은 일
이는 작은 일 만들기가 개개인의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더 많이 팔아 더 많이 벌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적정하게 하는 걸 기준으로 삼으니 몇몇의 구체적인 대상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우리가 원하는 친구는 가능한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아니라, 기쁜 일이 있을 때 기꺼이 자신의 행복처럼 웃어줄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손 내밀어주고 함께 비 맞아줄 수 있는 몇몇이 아니었던가. 손님도 다르지 않다.
▶ 일본 나스의 비전화공방에서도 작은 일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후지무라 센세 앞에서 발전된 작은 일 방식을 발표했다. ⓒ촬영: 이민영
손님을 친구나 동료에 대응해보니 이해가 쉬워졌다. 상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이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고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든가, 영업 경비나 유통 경비를 들이지 않고 지인을 통한 입소문으로 상품의 존재와 가치를 알린다는, 작은 일 만들기의 원칙과도 결을 같이 한다. 어쩌면 한 달에 30만 원을 벌려는 사업임과 동시에 30만 원밖에 벌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실현가능성을 먼저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라. 봉착한 문제에만 몰입하라.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이걸 어떻게 현실에서 풀 수 있을지 생각하라. 혼자 짧은 시간 동안 120% 능력을 발휘해 궁량해보고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더 길게 과제를 붙잡고 있기보다 동료들에게 빨리 털어놓아라. 작은 일을 만들며 후지무라 센세가 알려준 비결은 실상 우리가 살면서 맞부딪치는 많은 사건들에 대처하는 훌륭한 방침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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