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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제작합니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작은 일 만들기③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사람과 기술이 만나 만들어지는 ‘작은 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제각기 작은 일을 선택했다. 무미건조하게 제시된 기술들에 제작자 개인의 취향과 기대가 보태지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상품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신기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며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S는 외식을 하면 자주 더부룩했다고 한다. 빵을 좋아하는데도 사먹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아, 직접 키운 천연발효종과 버터, 우유, 계란을 넣지 않은 빵을 굽는 일이 S의 취미 중 하나였다. 이런 S의 흥미는 후지무라 센세가 제시한 “자가제작한 이동식 돌가마로 갓 구운 빵 판매”와 만나 작은 일이 되었다. S는 ‘직접 만든 이동식 가마’와 그 가마에서 ‘직접 구운 채식 과자’를 작은 일로 만들게 됐다.
▶ 제작물이 완성되기 전 그려본 도안. 왼쪽부터 이동식 가마, 캠핑카, 생태변기 ⓒ 그림 : 비전화공방서울
전문직으로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일 년 간 가방 하나 들고 여행해본 경험이 있는 K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했다.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서나 머물 수 있었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바로 캠핑카다. 1톤 트럭 한 대만 있으면 화물칸에 올린 작은 나무집과 함께 어디서든 체류할 수도 벗어날 수도 있다. 후지무라 센세가 제안한 상품은 사실 “자가제작한 경캐러번의 아트적인 모바일 카페”였지만, K의 눈길은 대안적인 주거 형태로의 ‘캠핑카’에 꽂힌 셈이다.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건물을 쉽게 부수고 다시 짓는 문화가 소모적으로 느껴졌던 H는 환경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생태계 순환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H의 가치지향은 작은 일 고르기에도 그대로 반영돼 “이동식 생태 화장실 제조 및 판매”로 결정됐다. 쓸 만한 물이 부족한 국가에서 정수한 물로 배변을 처리하는 이율배반적인 구조의 대안임과 동시에, 위생 기준이 높은 현대 사회에서 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생태 변기만한 게 없다.
나의 작은 일, 조립형 상품 진열대
내가 선택한 작은 일은 ‘조립형 상품 진열대’. 작은 일 만들기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장터를 견학할 일이 많았고, 내가 저 자리에서 무언가를 판다면 어떨까 상상하게 되면서 가닿은 지점은 다른 아닌 진열대였다. 야외장터는 대형매장보다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한 반면, 상시적으로 열리는 판매처가 아니기 때문에 상품을 선보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구성하기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규모로 소품종을 들고 나오는 야외장터에서의 상품 전시는 판매자의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일본 아오야마 농부시장 전경. 나스 비전화공방 현장 연수 후 방문해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준비하는데 영감을 얻었다. ⓒ촬영: 이민영
판매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귀가 솔깃한 질 좋은 상품인데 눈에 띄지 않거나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저 제품을 준비하려면 꽤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을 텐데, 이렇게 보여주면 더 눈길이 가지 않았을까’, ‘이쪽이 주요 동선인데 상품은 저쪽을 바라보고 있네’, 언제부턴가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의 상황에 감정이입하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졌다. 그러다 야외장터에서 사용하기 편리한 진열대를 내 작은 일로 만들어보게 되었다.
소소하나마 목공구를 다룰 줄 알게 되었고 이 기회에 실력을 좀 더 늘려보고 싶다는 바람과, 작은 일을 궁리하다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빙의된 마음이 나를 ‘조립형 상품 진열대’ 제작자로 만든 셈이다.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앞선 단계에서의 고민들을 지워버렸다. 진열대의 제작자이자 판매자이자 진열대 위에 올려두고 판매하는 상품의 판매자이기도 한 내 미래의 모습만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어떤 진열대에 마음이 쿵쾅대는지 귀 기울여보았다.
본격적인 진열대 제작
장이 열리기 한두 시간 전부터 장터에 찾아가 판매자가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장을 준비하는지 지켜보고, 마무리할 때엔 무엇을 가장 신경 쓰는지 눈여겨보았다. 치수를 정하는 일부터 신경 써야할 사항이 제법 많았다. 행사 매대로 주로 사용하는 야외용 테이블의 크기와 높이를 수집하고, 어떤 차량으로 이동하더라도 가지고 다니기 편리한 진열대의 규격을 어림짐작해보았다. 목재를 선정할 때에도 길이는 물론이고 성질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하중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목을 쓸지 집성목을 쓸지 합판을 쓸지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두께가 달라졌다. 버려지는 목재를 최소화하려면 원판에 도면을 어떻게 그려야할지도 고려해야 했다.
하나의 상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책임지는 일은 지원을 받으며 함께 만드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경험치가 없어 겪고 물으면서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사회에서 내가 위치할 역할을 스스로 ‘일자리’로 만든다는 부담을 제외하곤,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히는 기쁨이 컸다. 지금껏 햇빛 식품 건조기나 퇴비 제조기를 어떤 목재와 공구, 부속품을 사용해야 하는지 친절하고 일정한 안내를 받았다. 가끔은 각각의 쓰임을 의식하기보다 관행처럼 반응하기도 했는데, 내 머릿속에만 있는 상을 구현하려니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스스로가 용도를 알고 있어야 했고 실체화할 수 있는 기술 역시 필요했다.
▶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만들면서 공책에 설계와 고민거리를 적어본 낙서 중 일부 ⓒ그림: 이민영
조립형 상품 진열대에 어울릴만한 여러 성질의 목재를 다뤄보면서 그제야 내가 원하는 진열대의 모습과 제작 방식이 구체화되었다. 직소에 끼우는 서로 다른 날의 용도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어떤 선과 단면을 만들고 싶은지에 따라 손과 팔에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하는지 어떤 강도로 밀고나가야 하는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절단공구에 들이는 힘보다 목재를 클램프(clamp)로 제대로 고정했느냐가 작업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든가, 작업하기 좋게 테이블쏘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목재를 미리 잘라둘 때 내게 최적화된 ‘적당히’가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반복해 훈련해보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숙련도가 조금씩 쌓이는 게 느껴졌다.
“자유란 멋대로 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란 내가 다루는 도구들의 결을 알고 흐름을 타면서 내 몸의 일부처럼 이질감 없이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이다.” 자립을 위한 작은 일을 만들려는 시도는, <공부 공부>에서 엄기호가 말했듯 기예가 향상되는 자유로 나를 먼저 데려다준 셈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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