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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 완성? 아니, 다시 시작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작은 일 만들기④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상품 진열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견본품을 부위별로 만들어보고 높낮이도 다르게 실험해보며, 머릿속으로 그려본 설계와 실제로 만들었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비교해보았다. 설계상으로는 꽤 괜찮았던 각도가 실상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가까이서 볼 때와 한 걸음 떨어져서 볼 때, 멀리서 볼 때의 분위기도 달랐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전반적인 형태를 고려해야 하는데 자꾸 세부분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꼼꼼하게 손봐야 하는 지점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도 했다.


끼움형 조립형 상품 진열대를 만들다


최종 낙찰된 디자인은 세 개의 선반이 되는 수평대와 세 개의 버팀대가 되는 수직대로 구성된 진열대였다. 이동하기 편해야 하므로 필요부품을 가능한 줄이고 단순하게 만드는 편이 좋겠다 싶었다. 어디에서 보든 비치한 상품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으면서 안정감이 있도록 버팀대는 직각삼각형의 형태를 취했다. 선반은 총 세 개이지만 실제로 상품을 진열하는 선반은 앞의 두 개이고, 뒤의 한 개는 진열대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조립 전 진열대. 여섯 조각의 합판을 조립하면 진열대가 된다. ⓒ촬영: 이민영


얼개를 잡고 나서 큰 구조는 테이블 톱으로, 사선은 원형 톱으로, 홈은 직소로 잘랐다. 조립형 상품 진열대의 관건은 홈파기였다. 목재는 예상보다 반듯하지 않다. 설계대로 재단해도 막상 결과물을 보면 소소한 변수들이 작용해 크기가 다르거나 들어맞지 않는 일은 상수에 가까웠다.


홈파기의 어려움


홈을 여유 있게 파면 진열대가 불안하게 흔들릴 수 있고, 여유 없이 파면 끼워지지 않거나 강한 힘을 줄 때 긁히거나 깨지기 쉽다. 처음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바로 절단을 시도했으나 몇 차례 실패를 겪은 후 폐목으로 여러 번 연습한 뒤 실전에 돌입하는 게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홈이 좁아서 디귿자 형태로 직소를 90도로 돌릴 수 없어, 먼저 자르고자 하는 점까지 일직선이 되도록 직소로 금을 낸다. 그리고 멀찌감치 서부터 조금씩 직소에 각도를 주어 고깔모자 형태로 홈이 생길 지점의 목재를 잘라낸다. 남겨진 부분은 잘라내는 게 아니라 직소 날로 남은 목재를 갈아서 홈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 끼움 형태의 조립형 상품 진열대 ⓒ촬영: 김다연


큰 형태는 두껍고 강한 직소 날을 쓰고, 홈 형태의 목재를 절단한 후에는 얇은 직소 날로 마감 선을 다듬었다. 가능한 나무의 색과 질감을 살리고 싶어 찔리거나 베일 위험이 있는 모서리를 제외하고는 사포질은 가볍게 하고 오일 스테인도 반광으로 도장해주었다.


자립은 홀로서기가 아니지만…


늘 공동으로 작업하던 제작자들이 제가끔 일을 하려니 외롭기도 했다. 통상 1,220×2,440mm의 원판은 혼자 들기 어렵기에 함께 들어 쓰기 적합한 크기로 자르는 등 요령껏 서로의 공정을 돕기는 하지만, 처음 시도하는 일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감당하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각자의 작업도 분초를 다투며 휴일도 없이 매일 씨름하고 있는 판국인지라 옆 사람에게 따스한 눈길 한 번 주기가 쉽지 않았다. 상황이 지금까지 제작자들 간의 관계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게다가 작업 순서가 비슷해 처음에는 연귀자 등 측정공구 품귀가, 다음에는 직소, 원형 톱 등 절단공구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전날 갓 뚜껑을 연 페인트가 다음날 작업하려고 보니 누가 썼는지 바닥이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품이고 장소인지라 전날 말끔하게 정리해두지 않으면 공구와 부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하루의 시작을 작업환경 조성에 한 시간 이상 써야하는 경우도 잦았다.


모두가 버겁지만 열심히 각자 작은 일을 만들고 있다는 동료애가 그나마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진열대가 장터에 나가다니


완성품이라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진열대는 골조가 잡히면 바로 쓸 수 있으니 비전화제작자들의 농사 스승이신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님이 정기출점하시는 마르쉐에서 직접 시범 사용해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가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펴고 옆자리에 들어설 판매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제3자로 지켜보던 장터에 비해 실제 판매자로 나서고 보니 부산하고 할 일이 많았다. 상품은 마술처럼 이렇게 비치하면 저기가 가리고, 저렇게 자리를 바꾸니 여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


▶ 마르쉐에 출점한 우보농장에서 사용해 본 조립형 상품 진열대. 진열대가 있어도 보기 좋게 상품을 진열하는 일은 어려웠다. ⓒ촬영 : 이민영


진열대 위에 상품을 전시해 직접 팔아보니 발견되는 새로운 사실이 제법 있었다. 진열대 옆의 선반 여백이 예상 외로 유용하게 쓰인다거나, 상품이 보이는 앞면의 두 선반 못지않게 시재금을 보관하고 거슬러주거나 판매자의 개인비품을 몰래 숨겨둘 수 있는 뒤편의 선반이 꽤 쓸모 있다는 점 등을 알게 됐다.


기존에 동일한 농작물을 팔아본 우보농장의 판매자 분께 진열대의 사용감이 어떤지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무엇인지 물어 소감을 듣기도 하고, 나름대로 판매를 하면서 느낀 점을 설계에 어떤 식으로 반영할지 정리해보기도 했다.


상품 진열대 만들기, 다시 시작


후지무라 센세의 방문 기간에 맞춰 완성을 하고 나니 어찌됐든 숙제를 끝낸 듯해 홀가분했다. 센세는 제작자들의 발표를 들으며 제작품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진행 상황에 맞게 의견을 덧붙여주셨다. 기술이 필요한 시점의 제작자에게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직접 선보이시고, 디자인이나 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제작자에게는 예시를 들거나 안을 제시하셨다.


조립형 상품 진열대 역시 센세의 평가를 피해갈 수 없었다. 센세는 진열대가 직선으로 구성돼 날카롭고 손님에게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지 못하니 좀 더 부드럽게 선을 만들어보라고, 그리고 지금의 구조가 아닌 다른 형태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주시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센세의 평가를 반영해 마무리 수순에 돌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목적은 동일하지만 새로운 또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에 계획했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한 번 해보았으니 더 수월할 수도 있을 텐데, 왜 마음은 늘 한 번 해보았을 때의 힘들었던 일만 상기시키는지. 그렇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을 듯했다.


아, 이렇게 다시 시작인 건가.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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