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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할 때 화톳불을 피우는 이유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기] 가마를 만들다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니지만 말과 글의 문자로 인지하는 것과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해놓은 일을 제 손으로 무너뜨려 미장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조금 더 진지해졌다고나 할까. 서로 굳이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이 느껴졌다.

 

▶ 재벌 미장을 마친 후. 면적이 넓어서 미장 순서에 따라 흙의 마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 외면의 부위별 흙빛이 다르다. ⓒ촬영: 홍정현


자주 관찰하고 민감하게 변화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미장할 때 발생한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소됐다. 흙을 한 삽 더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미장 반죽의 묽기, 손바닥만 하게 아님 손뼘만 하게 자를지 볏짚의 적절한 길이 등등이 손톱에 끼는 흙물의 채도가 높아질수록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지표화해 설명할 수준은 안 되지만 몸에 쌓여 반사적으로 알 수 있는 이해만큼은 확실하게 늘었다.


적당함의 적당함


적당함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객관화하기 어렵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 사전을 들추다 보면 풀이에 포함된 단어의 쓰임이 헷갈려 다시 사전을 뒤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여러 차례 사전을 더 살핀다고 그 뜻이 반드시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나름의 맥락이 이해되거나 해석이 뚜렷해지는 경우가 있다. 범용의 사전 속 단어들이 공동의 정의 안에서 사회적이면서도 여러 예시들을 적용해보며 개인화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적당함 역시 개별성을 내포하며 그에 소요되는 시간은 필수적이다.


▶ 시도 때도 없이 이유도 없이 불을 때는 제작자들 ⓒ촬영: 정은욱


나에게는 적당하지만 너에게는 부족하거나 가득한, 어제의 흙에는 알맞았지만 오늘의 흙에는 모자라거나 넘치는. 숱한 반복과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나름의 전략으로 방안을 찾는 과정을 통해 흙과 물과 바람의 적당함을 알아가고 나와 동료 개개인의 적당함을 깨치고 있다. 동시에 적당함에 안주하지 않고 적절한 대안 역시 구해가고 있다. 손쉬운 암기로 임기응변하던 수학 공식이 이때만큼 그리워지는 적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속도에 치이지 않고 각자의 적당함을 둘러볼 수 있는 여건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때는 게 목적인 불 때기?


차분하게 흙과 어울리다 보니 미장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졌고 그러는 사이 가마의 형태가 얼추 갖춰졌다. 미장이 잘 되었는지 여부는 사실 불을 넣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돔형과 굴뚝의 모양을 잡아주던 합판을 말끔하게 태워내는 동시에 300도 이상 안이 뜨거워져도 벽돌과 흙이 온기를 잘 담을 수 있는지 그 기능을 확인하는 시기가 바로 불을 넣을 때다. 마감 미장을 마친 뒤 불을 넣기엔 가마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앞섰다.


그렇다고 서둘러 불을 넣었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미장 시 흙을 결집시키던 수분이 서서히 빠져나가 완전히 마른 후 불을 때지 않으면 흙 속의 물기가 갑자기 기화하면서 가마가 터질 수도 있다.


▶ 넓은 반원의 가마 안에 내화벽돌을 쌓고 석쇠를 얹어 음식을 구우면 분위기가 맛을 보증한다. ⓒ촬영: 홍정현


가마가 충분히 말랐겠다 싶은 시점을 골라 불을 때 보았다. 내벽 구석구석에 불길이 닿도록 불을 크게 냈다. 다행히 가마 겉면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열이 되고 굴뚝으로 연기도 잘 빠져나갔다. 다만 입구가 넓어 열 손실이 컸다. 임시로 함석판 위에 손잡이를 단 합판을 덧대 문을 만들어 열기가 빠져나오지 않게 막았다.


별 탈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마음이 한결 놓이면서 얼른 가마 작업을 마무리하자는 목소리는 저편으로 퍼져 사라지고 매일같이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작업하다 손이 시리니까 불을 때고, 종종 허기지니까 고구마 구워 먹으려 불을 때고, 어느 날은 그야말로 그냥 불을 때고 싶어서 불을 땠다.


공방 근처에는 언제나 무언가를 만들기엔 애매하지만 때우기엔 유용한 잔여 원목재가 넘쳐났고, 불길이 늠실대면 어느새 어깨춤도 남실댔다.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닌데 작업을 하다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마에 불이 들어차 있고, 무얼 구웠으니 어서 와서 먹으며 한숨 쉬어가라고 큰 목청이 들려왔다.


모닥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제대로 놀아보자 하고 이런저런 먹거리를 구해다 잔치를 열기로 했다. 굼뜨던 행동이 갑자기 바지런해지고 착상이 샘솟았다.


가져온 재료가 원체 다양해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식단에 우선 가마 안 자리를 양보하기로 했다. 불을 때는 연소실과 기물을 굽는 소성실을 구분하지 않은 일체형 가마여서 내부가 꽤 넓은 편인데도 입이 많아 제때 음식을 공급하기 쉽지 않자, 누군가가 빠르게 내화벽돌을 가져와 3단으로 층을 만들었다. 누구는 등유 난로에 팬을 얹어 야채를 굽고 누구는 드럼통에 불을 피워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별것도 없이 그저 불을 피웠을 뿐인데 사람이 모여들고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다.


▶ 가마 완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틈틈이 불놀이를 즐겼다. ⓒ촬영: 홍정현


그저 없던 가마가 하나 생겼을 뿐인데 금세 축제의 장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이 놀이판이 흡족했던 점은 수평적인 구성 덕분이었다. 부엌과 노는 자리가 한 곳이라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다. 누구든 이 판에 끼려면 불을 둘러싸고 무언가 자신의 몫을 해야 한다. 불씨를 관리하든 조리하든 불 곁에서 흥을 돋우든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언제든 자리를 바꾸어도 티 나지 않으면서 즐겁게 제자리에서 놀 수 있다.


집에서는 매번 레인지 앞의 사람과 상 앞의 사람이 나뉘어 놀이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구분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분리를 없애는 간편한 놀이방식으로 최근에는 돈을 지불하고 공동체 밖의 사람에게 노동을 전가한다. 각종 공휴일에 가족 행사로 북적이는 식당과 친구나 직장 구성원들이 몰려드는 교외의 야유회장이 늘어나는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불을 잃어버린 도시 한가운데서 불을 피우는 쾌감이라니. 우리는 하나의 가마를 지으면서 불을 얻었고 이를 다루는 기술을 얻었고 새로운 관계와 놀이를 구상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참고 영상] 제작자들의 시행착오_돌가마 만들기 https://bit.ly/2YrsC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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