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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녀들 성착취…알 켈리는 어떻게 가능했나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가 드러낸 것들


 

“지금까지 알 켈리(R. Kelly)는 노래와 자신의 행동을 통해 꽤나 솔직하게 자길 드러내고 있었어요. 우리가 그걸 보기 두려워했을 뿐이죠.”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Kelly) 중에서


미국에서도 2018년은 미투(#MeToo, 나도 말한다) 운동을 통해 성폭력에 침묵하고 방조한 사회 곳곳을 뒤흔들고 피해자/생존자의 목소리가 마침내 들리기 시작한 해였다. 2019년에도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을 거라는, 아니 멈출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신호탄이 터졌다. 신년을 맞은지 3일째였던 지난 3일, 미국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Lifetime)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 Kelly)가 방송된 후 그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 Kelly) 오프닝 중 ⓒLifetime


총 6편으로 3일에 걸쳐 방송된 다큐에선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R&B의 대부라 불리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가수 알 켈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많은 여성들과 소녀들을 성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해왔는지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알 켈리는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I believe I can fly) 등을 비롯해 수많은 대표곡들이 있다.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제이 지, 저스틴 비버 등의 가수들과 함께 작업하고 노래했으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경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이 다큐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가 계속해서 접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권력형 성폭력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피해자/생존자들이 용기 내어 앞으로 나왔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이(다큐에서 알 켈리에게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을 생존자(Survivor)라 칭함) 하나같이 “건드릴 수 없는 존재”(untouchable), “천하무적”(invincible)이라고 말한 알 켈리와 또 다른 알 켈리들, 그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행동을 묵인한 사회의 모습을 이제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소녀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증거는 곳곳에 있었지만…


<서바이빙 알 켈리>는 알 켈리의 어린 시절부터 조명한다. 그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글도 읽고 쓰지 못해서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겐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이 발견되고 점점 드러나며 주목을 받자 그의 성격은 180도 변했다.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난 뒤, 그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인터뷰를 한 지인들은 “성인 남성이 왜 고등학교에 가서 청소년들이랑 어울리는지 의문이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이상한 기운’을 무심코 넘겼다. 그러는 사이, 가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알 켈리를 따르는 십대들은 많아졌다. 그렇게 알 켈리는 16~18살 소녀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알 켈리가 너랑 얘기 좀 하고 싶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말한다. 잘 나가는 가수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노래를 불러봐라, 내가 키워 주겠다, 멘토가 되어 주겠다’고 하니, 혹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알 켈리는 음악에 대한 꿈을 가진 소녀들을 쉽게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러들일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녀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시작한다.


사실 알 켈리의 소아성애적 행동은 이미 25년 전, 그가 키운 가수 故 알리야(Aaliyah)와의 관계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알 켈리가 만든, 14살 알리야의 데뷔곡인 <나이는 숫자일 뿐 아무 의미도 없어>(Age Ain't Nothing but a Number)는 ‘나와 함께 가자, 내가 황홀감을 선사할게’ 등의 말로 채워져 있었다. 앨범 자켓엔 알리야의 모습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알 켈리가 알리야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같은 옷, 커플룩을 입고 방송에 나오기도 하는 등 누가 봐도 이상한 관계를 전시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 Kelly)에 나온 알 켈리와 알리야의 결혼 증명서. 알 켈리의 당시 매니저가 15살이었던 알리야의 나이를 18살로 위조했다. ⓒLifetime


1994년 당시 15살이었던 알리야와 27살이었던 알 켈리가 비밀 결혼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둘 다 부인했지만, 이후 이들의 결혼은 알리야의 부모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 당시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이 결혼은 이후 알 켈리의 ‘섹스 테이프 스캔들’을 추적한 언론에 의해 다시 조명됐다. 다큐에 등장한 알 켈리의 전 매니저는 자신이 결혼증명서에 알리야의 나이를 18살로 위조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알 켈리는 소녀들을 착취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성관계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2002년엔 알 켈리와 두 명의 소녀가 등장하는 섹스 테이프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영상이 돌아다녔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알 켈리는 영상 속 남성이 자신이 아니라고 했고, 그의 변호인단은 그 남성이 알 켈리의 남동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알 켈리는 구속되었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그는 아무런 문제 없이 가수 활동을 지속했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재판은 계속 연기되었다. 결국 재판이 열린 건 6년이나 지난 2008년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는 2003년 아동포르노 소지 혐의로 구속됐지만 수색 영장이 나오지 않아 풀려났다.


섹스 테이프 조사 과정에서, 알 켈리의 제자였던 스파클(Sparkle)은 영상 속 소녀가 14살인 자신의 조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영상 속 남성이 알 켈리이며, 소녀는 자신의 조카라고 증언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그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14살 소녀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결국 알 켈리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 알 켈리의 제자였던 스파클(Sparkle)은 래퍼를 꿈꿨던 자신의 조카(당시 14살)와 가족들을 알 켈리에게 소개한 걸 후회한다고 했다. ⓒLifetime


스파클은 인터뷰에서 언니와 형부가 왜 그 소녀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족들이랑 연락 안 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언니와 형부가 협박을 받았는지 아니면 뇌물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뒤로 형부가 알 켈리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한다는 건 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알 켈리가 여성들을 학대하고 지배하는 방식


혹자는 알 켈리를 ‘정신이 이상한 소아성애자’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이 가진 힘과 자신이 놓인 위치, 즉 명성과 권력을 이용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많은 여성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단지 10대 여성만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알 켈리는 아주 어린 시절 친인척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 사실을 여성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고백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 쉬웠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여성들이 자신을 감정적으로 보살피도록 만들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온 세상의 인기를 얻는 최고의 가수라는 남성이 자신 앞에서 비밀을 털어놓고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많은 여성들, 특히 10대 여성들에겐 로맨틱한 것으로 느껴졌다. 또한 사회에서 ‘여자라면 남자가 자신에게 약한 면을 보일 때 보듬어 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게 사랑이라 믿었다.


많은 생존자들은 실제로 그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기간 동안엔 굉장히 친절하고 신사적이고 상냥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서 일종의 ‘보호 본능’이 작동하며 자길 사랑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그는 돌변했다고 한다. 자신을 ‘아빠’(Daddy)라고 부르라고 시키고, 자신의 말에 무조건 ‘네’(Yes)라고 답하게 했다. 그 말에 의문을 가지거나 대꾸를 하면 뺨을 때리는 등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


알 켈리와 1996년 결혼했지만, 결국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2009년에 이혼한 전 부인 안드레아 리(Andrea Lee)를 비롯하여 알 켈리와 동거하거나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은 하나같이 알 켈리가 자신의 모든 걸 조정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알 켈리가 밥을 먹으라고 할 때까지 밥도 먹지 못했고, 샤워를 할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매번 허락을 받아야 했다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말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여성들에게 ‘널 사랑하는 사람은 나 뿐’, ‘어차피 너한텐 나밖에 없다’고 말하며 친구와 가족들로부터도 고립시켰다.


▶ 알 켈리의 애틀란타 집(알 켈리가 금전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해 현재는 판매한 상태)엔 여러 여성들이 머물렀지만, 그들은 한 번도 서로 마주친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집 안에선 알 켈리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야만 했다고 증언한다. ⓒLifetime


여성들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땐, 이미 ‘학대가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알 켈리는 당근과 채찍을 굉장히 잘 사용했고 여성들이 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여성이 임신했다고 하면 자기 바로 앞에서 임신테스트를 하게 하는 등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리고 나면 또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자신이 인공임신중절을 하고 난 다음 날, 알 켈리가 널 위해 만들었다며 마이클 잭슨 노래로 유명한 “넌 혼자가 아니야”(You are not alone)를 들려줬다는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알 켈리가 가족 중 누군가를 잃고 난 후 쓴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런 배경이 있었던 거다.


다큐에 등장하는 정신의학 박사 캔디스 노르콧(Candice Norcott)은 학대가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여성들이 벗어나기 얼마나 힘든지 설명한다. “이런 학대를 당하는 여성들은 그 남성과의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 최소 7번의 시도를 한 후에야 정말 떠날 수 있는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고작 연애/결혼 관계인데 그걸 왜 못 끊냐, 성인 여성이 ‘노’(No)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 말하지만, 상대에게 힘(권력)이 있는 게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상대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관계를 끊는 선택은 쉽지 않다.


또한 권력자에겐 늘 그의 권력을 비호하고 지지하는 ‘예스맨’들이 있다. 알 켈리의 스튜디오엔 스튜디오와는 어울리지 않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방마다 여성들 특히 ‘어린’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과연 알 켈리 주변인들이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리고 그 여성들이 전국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가도록 티켓을 예약하는 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알 켈리가 할 수 없었을 텐데 누가 그 일들을 해줬을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성공한 흑인 ‘남성’만을 보호한 흑인 커뮤니티


2008년 아동포르노 관련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오자마자, 알 켈리가 달려간 곳은 지역(시카고)의 흑인 교회였다. 알 켈리의 무죄를 축하하는 그 자리엔 흑인 남성 목사들, 흑인 남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알 켈리 옆에 서서 그를 지지했다. 흑인 사회는 그렇게 ‘큰 사랑과 인기를 얻는 성공한 흑인 남성’을 보호하기 급급했다.


다큐에 등장하는 흑인 여성 활동가들은 피해여성들이 ‘흑인 여성’들이 아니라 ‘백인 여성’이었다면 알 켈리가 과연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을지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알 켈리가 저지른 범죄가 수면 아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대상이 미국 사회가 신경 쓰지 않는, 사회에서 ‘문제적’이라고 취급 받는 ‘흑인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향한 이미지는 여전히 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 있다. 흑인 남성들은 미국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범죄자’로 낙인 찍혀왔고, 많은 흑인 남성들이 국가 권력인 경찰의 손에 의해 죽어간 아픈 역사가 있다. 그렇기에 알 켈리를 범죄자로 모는 걸 일부 흑인 커뮤니티에선 ‘흑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였다. 그건 일부 흑인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알 켈리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흑인 여성들, 특히 10대 여성들이 피해자가 아닌 알 켈리를 지지하기 위해 법원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알 켈리를 사랑한다고 외쳤고, 이건 흑인 사회에 대한 모함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또한 ‘흑인’이었음에도, 그들은 오직 알 켈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동 대상 성범죄를 한국에 비해 굉장히 민감하게 취급하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인종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신의학 박사 캔디스 노르콧(Candice Norcott)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아이들을 ‘아이답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높은데, 남자의 경우엔 10살부터 여자의 경우엔 5살부터 아이 답지 않은, 순수하지 않은 존재로 취급된다”고 설명한다. 흑인 여자 아이는 순수하지 않으며, 문제적이고, 또한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적 편견이 피해여성의 ‘피해자다움’을 잃게 만든 거라는 지적이다. <참고: 더 레드 테이블(The red table) 토크쇼 facebook.com/redtabletalk/videos/329889794522961> 흑인 여자 아이는 순수하지 않고 성숙하고 문제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알 켈리를 유혹했거나 성관계에 동의했을 것임으로 그 여성의 잘못이라고 믿는다는 거다.


▶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홈페이지 사진 중에서. ‘흑인 소녀들을 보호하라’고 적힌 피켓을 건 시위자가 발언하고 있다. ⓒmuterkelly.org


알 켈리는 여성학대에 대한 의혹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역으로 이용했다. 작년 미국에서 타임즈업 운동(참고: 여성들이여, 세상을 바꿀 시간이 되었다! http://ildaro.com/8093)이 알 켈리의 학대 문제를 지목하며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도, 당당하게 이런 성명을 낼 정도였다.


“나는 성폭력/폭력 피해여성들을 언제나 지지하지만, 나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탐욕적이고 삐뚤어진 여성들이 말하는 악의적인 음모다. 내 음악은 흑인 사회의 한 문화이며, 흑인들은 미국 역사 속에서 성적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비난 받아왔다. 이런 식의 흑인 남성에 대한 대중적인 린치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겠다.”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운동이 가져온 변화


모든 흑인 사회가 알 켈리의 편에 선 건 아니다. ‘인종차별’ 이슈에 가려진 성폭력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흑인 여성들은 중요하다’(Black girls matter)고 외친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조금씩 흘러나오는 알 켈리의 여성학대 문제, 소아성애증에 관심을 가지고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017년, 예술가 오로니케 오델레예(Oronike Odeleye)와 사회운동가 켄예트 반즈(Kenyette Barnes)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대상으로 알 켈리 노래를 틀지 말아 달라고 청원을 넣었고, 알 켈리의 공연장 앞에서 보이콧을 외치며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나 버크(Tarana Burke)와 타임즈업 멤버 중 흑인 여성인 숀다 라임즈(Shonda Rhimes)와 에바 두버네이(Ava DuVernay)가 이 운동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운동은 알 켈리의 소속 레코드사인 소니 측에 알 켈리와 계약을 해지하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 ‘알 켈리 음악을 끄자’(#MuteRkelly) 홈페이지 메인화면 사진 중에서. ⓒmuterkelly.org


운동은 점점 힘을 받았고, 지역 라디오 방송들이 하나둘 알 켈리 노래를 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콘서트를 취소하라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실제로 콘서트가 취소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들이 결국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방송은 2년 만에 라이프타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베니티 페어 1월 4일 기사 Surviving R. Kelly Breaks Lifetime Ratings Record 참조) 과거에 알 켈리와 협업해서 노래를 발표했던 레이디 가가, 찬스 더 래퍼, 셀린 디옹 등의 가수들이 생존자들에게 사과하며 음악 플랫폼에서 알 켈리와의 협업곡을 삭제하기로 했다.(콤플렉스 1월 16일 기사 Chance the Rapper, Lady Gaga, Ciara, and More Artists Who Have Pulled Their R. Kelly Collabs 참조)


또한 소니 레코드가 알 켈리와 계약을 해지하는 성과도 얻었다.(버라이어티 1월 18일 기사 R. Kelly Dropped by Sony Music 참조) 경찰 또한 알 켈리의 스튜디오를 수색하는 등의 수사에 나섰다.(abc 뉴스 Judge orders clean-up, new restrictions at R Kelly's West Loop recording studio 참조)


알 켈리가 오랜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을 학대하고 착취할 수 있었던 건, 물론 그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많은 증거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사회와 그의 힘을 나눠 가지기 급급했던 주변인들, 흑인 여성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회와 인종차별 이슈를 방패삼아 성폭력을 방조한 흑인 커뮤니티까지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배경이 있다. 그 문제들이 약 320분의 다큐멘터리에서 낱낱이 드러났다.


여전히 알 켈리는 학대 등의 혐의에 대한 모든 걸 부인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진실이 드러날 차례가 온 거다. 무엇보다 더 이상 학대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알 켈리를 정의의 심판대 앞에 세울 뿐 아니라 그를 지금의 ‘괴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누구인지) 구조적인 문제를 정확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 현재 이 작품은 미국 아이튠즈, 아마존 등의 플랫폼에서 구매하여 시청할 수 있지만 영어 자막만 지원되는 상황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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