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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집결지 화재, 그곳에 있던 건 ‘사람’이다

천호동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소냐의 집> 이종희 소장 인터뷰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피해자가 아니라 화재 원인이나 ‘성매매 집결지’라는 그 자체에 더 집중하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 사회가 정말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인가요?”(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 이종희 소장)


벌써 잊혀져가는 성매매 집결지 화재참사 희생자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를 코앞에 둔 지난 12월 22일(토) 아침,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위치한 성매매 집결지 한 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약 15분만에 진압됐지만 성매매 여성 한 명을 포함한 두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두 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작성되는 동안, 의식불명이던 여성 한 명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가 발생한 건물.  ⓒ일다(박주연 기자)


사건이 발생하고 강동경찰서와 강동소방서, 국가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참여해 2차 합동감식까지 마쳤지만, 화재가 1층 홀 주변에서 발화된 것 같다는 점 외에 정확한 사망 원인에 대한 발표는 아직 없는 상태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화재 발생의 구조적 원인을 비롯해, 철거 예정인 노후한 건물에서 성매매가 계속 이뤄진 점에 대한 문제 제기, 성매매 집결지라는 공간에서 이 같은 문제가 왜 계속 반복되고 있는가 등이 논의되는가 싶더니 이내 사회적 관심이 수그러드는 추세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됨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더욱 멀어져버린 이번 참사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우리 곁으로 당겨야겠다 싶었다.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라 불리는 그 곳에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곳 현장에서 25년 넘게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해 온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냐의 집은 1993년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곳으로 나가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한 수녀의 행동에서 시작됐다. 서로의 벽을 허물기 위해 수도복을 벗고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라는 폐쇄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간 그는 성매매 여성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차별받고 고립되어 있던 여성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등의 활동을 시작한 지 26년이 지났다.


현재 소장을 맡고 있는 이종희 수녀는 이번 화재 사건으로 현장을 파악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소장은 인터뷰 내내 ‘사회적 편견’, ‘묵인’, ‘방조’라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여성들을 다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화재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준 인터뷰였다.


▶ 화재사건 발생 이틀 후인 2018년 12월 24일,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중


-이번 화재 참사와 관련하여 밝혀진 사실은 무엇인지, 현재 진행 상황을 알려주세요.


“경찰에서도 다방면으로 수사 중이라고 하는데 진상 규명이 된 부분은 없습니다. 화재 원인에 대해서도 2차 감식까지 했지만 그것과 관련된 발표도 아직 없는 상황입니다.”


-재개발로 철거될 예정 지역이라 건물들이 노후하고, 그래서 쉽게 불이 번져나갔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여성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고요. 그 곳 환경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현장 감식 때 들어가 봤는데요. 거기가 40평 정도 되는 곳인데 방이 6개가 있어요. 하나는 옷방이고 5개 방이 영업장소인데 생활공간을 겸하고 있었어요. 이런 형태는 전형적인 성매매 업소의 형태이기도 해요.


비상구가 따로 있지 않았고요. 옷방에는 혹시 경찰 단속에 걸렸을 때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한데, 화재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또 애초에 업소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주택을 개조한 것이라서 큰 창문들이 있었는데, 그걸 시멘트로 막았더라고요. 대신 작은 창문을 만들어 놨고요. 그러니까 창문이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 집이 바닥 재질이 타일이 아니라 불에 타기 쉬운 카펫 형식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불이 났을 때 훨씬 더 빨리 타지 않았을까 싶어요.”


▶ 2층 창문이었던 곳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서 창문이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일다(박주연 기자)


-화재 발생 시간이 오전 11시경이니까 영업은 끝난 시간이 아닌가 싶은데, 그 시간에도 여성들은 같은 공간에 계속 있었던 거군요.


“밤 영업을 하면 아침까지도 일을 해요. 그리고 아침에 잠을 자기도 하는데, 이 분들 같은 경우엔 출퇴근 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 업소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거죠. 영업장소와 생활공간이 같은 공간인 거예요.”


-그렇게 영업장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채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나요?


“어쩔 수 없이, 자기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우면 그렇게 생활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예전에는 더 많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출퇴근 하는 그런 형태가 가능하긴 한데,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다르죠. 저희가 알기로 천호동 집결지의 많은 분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고 있어요.”


-주거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겠네요.


“그렇죠. 저희가 지원하는 분들만 봐도, 많은 분들이 가정폭력을 겪고 집에서 나왔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성매매에 노출된 경우에요. 성매매를 하느라 사채나 선불금을 써서 지금까지도 빚이 있는 분들도 많고요.


주거비를 마련하는 게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버린 부분도 있어요. 청소년 시절부터 성매매에 노출된 분들은 계속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 지내왔으니까 그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또 일 끝나고 힘든데 거기서 쉬는 게 더 편하고, 그 안에서 먹고 자는 게 해결되다 보니까 그 공간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사실 성매매라는 것 자체가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들도 있고,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피증도 있어요.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이 워낙 강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냥 그 안에서만 계속 생활하게 되는 거죠. 사회적으로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 주관으로, 2018년 12월 30일 오후 2시 천호동 화재 현장에서 희생자를 위한 추모 미사가 진행됐다.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 제공


-화재가 난 건물이 철거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영업이 계속된 이유는 뭔가요?


“철거 예정인 곳이긴 한데, 구청 측에서도 추운 겨울에 사람들을 내보내긴 어렵잖아요. 업주들도 2월이나 3월까지는 영업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업주들 중에서도 이주로 보상금 등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그런 부분을 협상하기 위해서 분주히 다니며 시간을 버는 동안 이런 사고가 발행한 거죠.”


-철거 후에, 이곳에서 생활하던 여성들은 어떻게 되나요? 주거도 따로 없는데, 이분들에게도 이주와 관련하여 지원되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이 사회적 빈곤에 의해서 성매매로 내몰려진 상황이 많고, 그 여성들이 성매매에 노출된 이후에도 사채나 선불금 문제로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전히 빈곤 속에 있다는 점이 문제에요. 업소가 폐쇄되면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니까 탈성매매를 못하고 계속 머무르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다른 (성매매 집결지) 지역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또, 이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이런 환경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고, 다른 삶을 상상조차 해보기 어려워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요.


우리 사회가 이 여성들이 ‘주거’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좀 더 도움을 주고, 이들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줄 때라야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탈성매매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들이 새로운 환경,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을 때 탈성매매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게 비단 이 지역이나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전국적으로 이런 성매매 집결지가 굉장히 많이 있어요.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고, 2004년에 성매매방지법(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이렇게 많은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건, 우리 사회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매매 산업을 묵인하고 방조한 결과잖아요.”


-성매매 집결지의 화재 사건과 희생이 지금까지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죠.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집결지를 빨리 없애라’ 혹은 ‘집결지를 양성화해라’에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집결지를 폐쇄하고 강력하게 단속하면 성매매가 없어진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성매매가 단지 제재의 방법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오히려 집결지를 양성화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는 것도 알아요. 성매매가 사회의 필요악이라느니, 양성화하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드는 생각은 이거에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는 늘 충족시켜야만 하는가?’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잖아요. 여성의 존재가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성에 대한 존중과 여성의 인격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게 되죠.


이제 여성의 인권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제, 여성혐오 문화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성매매를) 양성화하게 되면, 이 사회와 국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여성의 몸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사고죠. 그런 상황 속에서 남성이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는 성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요?


성교육과 성인지 감수성 훈련이 되지 않고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성매매에 대한 사고 역시 제한적인 수준에서 반복되는 걸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소냐의 집> 이종희 소장 활동 사진.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 집 제공


-성매매 집결지에서 여성들을 지원해 온 활동가로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사회적 편견이죠. 수녀님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거든요. 한국의 성산업은 보이지 않는 섬과도 같아요. 그런 곳이 있다는 건 알지만, 거기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죠. 관심이 없고,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옆이 성매매 현장이에요. 이번 사건이 난 곳도 주변이 주택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묵인하고 있는 거죠. 화재가 나서 조금 관심을 받았지만, 잠시뿐이고 또 사그라지잖아요. 우리라도 뭘 해야겠다 싶어서, 그 공간에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어요. 길거리 추모 미사도 진행했고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사회적 낙인’이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여성들도 스스로 이곳이 낙인 찍힌 곳이라는 걸 알고요. 작년이 소냐의 집 25주년이어서 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우리에게 주는 격려의 글들을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종이를 돌렸는데 한 분이 ‘한결같이 낮은 곳에 오셔서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기셨더라고요. 스스로 자신이 있는 곳이 ‘낮은 곳’이라고 인식한다는 거죠.


저희는 그저 언니처럼, 이모처럼, 그분들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도우려고 해요. 일을 하면서 보람도 있지만,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내쳐진 이들의 삶을 왜 사람들이 사회적인 편견 속에서 바라보는 걸까?’ 안타까움도 들어요. 나름대로 살아온 여정, 살아온 역사가 있는데, 그 자체를 그냥 이해하고 바라봐주면 안 될까. 함께 할 수는 없을까 싶고. 이들에게도 이웃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도적으로는 어떤 점들이 논의되고 개선되어야 할까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혼 후에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의 고충에 대해서도 들여다봐야 하고요. 사회 곳곳에서 소외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자발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 ‘이 일하면 돈 많이 번다’는 식으로 편견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빈곤과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봐주면 좋겠습니다.”


▶ 화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에 남겨진 메시지들. ⓒ일다(박주연 기자)


내가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애도해주지 않는다면…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많은 경우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대해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회. 이종희 소장은 사회적 편견을 고수하지 말고 이 여성들의 삶의 맥락을, 마음을 열고 세심히 봐 달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는 중에 중환자실에 있던 화재 피해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망자 2명, 중상자 2명’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중상자 중 한 분은 사고 이후 내내 의식불명이었다. 사회의 무관심과 묵인과 방조 속에 또 희생자가 늘었다.


추모 공간에서 미사를 준비하는 활동가들에게 핫팩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한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은 ‘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아무도 나를 기억해 주지 않고 애도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사실 우린 같은 삶을 살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애도 받지 못하는 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회적 낙인은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엔 ‘성매매 여성’이라고만 불려선 안 되는, 우리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좀 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며 각각의 삶의 맥락과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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